‘애착, attachment’이란 한 개인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강한 감정적 유대관계, 즉 친숙한 개인과 근접성을 추구하고 접촉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애착은 아기가 태어나서 정상적으로 발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며 성인이 되어서도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 반응성 애착장애라는 질병 개념이 소개되면서 애착에 대한 관심은 더 늘고 있다. 반응성 애착장애는 증세가 심할 경우 자폐장애와 유사한 증세를 보이며 심한 경우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애착을 이루기 위해서는 돌봐주는 이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처음으로 우리나라 여성 인구의 절반이 넘는 50.1%가 경제활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돌봐주는 이의 개념이 엄마에서 다른 이, 혹은 다른 기관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애착 형성 대상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애착의 개념은 개인 차원에서도 중요하며 사회과학적 측면에서도 고려되어야 한다.
1) 애착이론
애착 이론은 반세기 전 보울비라는 영국 의사가 주창한 이론이다. 정신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동물행태학에서의 관찰 위주 연구방식을 채택한 독특한 이론이며 이후 실제 육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수많은 관련 학자들에 의해 계속 발전하고 있다.
(1) 보울비의 일생과 애착 이론의 탄생
존 보울비(Edward John Mostyn Bowlby, 1907~1990)는 영국 왕실 외과의사인 보울비경의 육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누나 둘은 음악에 재능이 있었으며 형인 토니는 다재다능하였고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 훗날 사업가로도 크게 성공하였고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작위도 물려받는다. 토니와 존은 나이와 기질이 비슷했으며 친구처럼 지냈으나 경쟁도 심했다. 쌍둥이처럼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녔다. 존이 형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어야 함을 의미한다. 남동생 짐은 능력 면에서 다른 형제들에 비해 모자라는 점이 있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농사를 지었다. 막내 여동생 에블린은 훗날 존처럼 정신분석에 관심을 가졌고 경제학 교수였던 헨리 펠프스 브라운경과 결혼했으며 에블린의 딸은 타비스톡 크리닉의 소아심리전문가가 되었다. 보울비의 아버지는 항상 일 때문에 바빠서 아이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었고 어머니는 아이들의 양육을 당시 사회적으로 다 그랬듯이 하인들에게 맡겼다. 보울비는 가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우리 가족은 솔직했고, 아주 밀접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꽤 친밀했으며 여러 명의 보모가 있는 매우 전통적인 생활방식으로 사는 전문직 계층에 속했다.’ 주중에는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거의 관여하지 못했으나 주말에는 아이들과 하이드 파크를 가로질러 교회까지 산책을 하면서 대화를 하였다. 일곱 살 나던 해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형과 함께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런던에 대한 공습 가능성 때문이기도 했으나, 훗날 존은 이를 영국 신사를 길러내기 위한 오랜 전통에 따른 일이었을 뿐 이라고 회상했다. 졸업 후 다트머스 해군사관학교로 진학하였으며 규율과 조직을 배웠다. 이 두 가지는 존에게 있어서 평생 중요한 가치가 된다. 형인 토니는 아버지처럼 유명한 의사가 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의사되기를 포기하였고 자연스럽게 존이 의과대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존은 해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으나 해군의 경직성에 회의를 느껴서 캠브리지 대학에 진학한다. 학부과정에서 우수함을 인정받았으나 임상으로 들어가기 전에 당시 개교 초기 단계였던 섬머힐 스쿨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섬머힐 스쿨은 현실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진보적인 학교였다. 그 학교에서 보울비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될 두 가지 경험을 한다. 하나는 아이들의 문제가 불행하고 혼란했던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경험은 같은 학교의 선배교사인 존 알포드라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는 보울비에게 의과대학으로 돌아가 의사가 되고 정신분석 공부를 해 보도록 권한다. 1929년, 스물 두 살 되던 해, 의과대학으로 돌아간 보울비는 1933년 의사 자격증을 받았고 이후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았으며 클라인 계열의 분석가인 조안 리비에르에게서 개인 분석을 받아 1937년 정신분석가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아동정신분석 훈련을 시작하였다. 서른 한 살 되는 해, 열 살 연하의 우르슐라 롱스태프와 결혼하였고 네 명의 자녀를 둔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통계적이고 정신분석적 방법을 사용하여 장교를 선발하는 팀에서 일하였다. 전후 정부 산하의 정신건강위원회에서 임원으로 일하였으며 타비스톡 클리닉의 부소장으로 선출되었다. 클리닉에서 연구와 진료를 병행하였고 연구 기금으로 엄마와의 분리가 아이들의 성격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보울비가 ‘애착’ 이라는 개념을 얻게 된 것은 1952년 로렌쯔와 틴버겐의 동물행동학 연구에 대한 글에서 착안하였다고 한다. 당시 정신분석계의 편협함에 회의를 느끼던 그는 나름대로 정기적인 애착 세미나를 진행하였다. 이후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3부작을 발표한다. 1969년 발표한 ‘애착’, 1973년 ‘분리’, 1980년 ‘상실’이며 전문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 제임스 로버트슨(1911~1988)
제임스 로버트슨은 모성분리에 따른 감정 변화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영화를 찍기로 결정하여 스스로 영화 카메라를 구입하여 다큐멘타리를 제작하였다. ‘A two-year-old goes to hospital’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에는 아기들이 병원에 입원하면 감염 등을 이유로 보호자의 병실출입이 제한되었으며 병실에는 아이들만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모성 박탈이 어떠한 정서 변화를 일으키는지 입원기간 내내 촬영하였다. 로버트슨은 이 다큐멘타리 외에 유아원에서의 아기들을 촬영한 다큐멘타리도 제작하였고 이 다큐멘타리들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로버트슨은 정규과정을 거쳐 아동을 돌보는 사회사업가 자격을 받았고 정신분석 훈련을 받아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3) 메리 에인스워스(1913~1999)
에인스워스는 미국인으로 어릴 때 캐나다로 이주하였고 토론토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남편을 따라 영국에 와 지내는 동안 보울비의 연구를 도왔다. 이 때 소아정신 분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우간다에서도 살았으며 그 때 원주민들의 육아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1956년 존스홉킨스 대학에 직장을 구하여 미국으로 돌아온 뒤 ‘낯선 상황 strange situation’ 연구를 시작하였다. 1960년 남편과 이혼 후 우울증으로 정신치료를 받으며 프로이트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75년 버지니아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 1999년 사망할 때까지 그 곳에서 일했다.
2) 애착 이론의 과거와 현재, 미래
보울비는 대학 재학 중 자원 봉사하던 곳에서 만난 비행청소년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어린 시절 돌봐 주던 이와의 분리였음을 알게 된다. 이는 이후 정신과 의사가 되고 정신분석을 받고 환자를 만나는 동안 평생의 주제가 된다. 보울비가 정신분석을 받던 시절에는 ‘아기는 먹을 것을 주는 엄마에게 관심이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 상식이었다. 안나 프로이트조차 이를 ‘찬장 사랑 cupboard-love’이라고 불렀다. 보울비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으며 옳지 않다고 여겼다. “모유수유와 젖병수유에 대한 환상도 많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젖병 수유하는 엄마 중에 아기를 사랑스럽게 기르는 사람이 있었으며 모유 수유하는 엄마 중에 아기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엄마들도 있었다. 이는 수유방식과 아기 사랑과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전에 발표한 모성 박탈 아동에 대해 비판론자들은 엄마의 상실로 인해 아이는 고통 받지 않으며 단지 적절한 자극이 결여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이러한 난제들의 해결은 동물 행동학으로 부터 왔다. 로렌쯔와 틴버겐의 연구에서 착안한 ‘애착’ 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 애착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긍정적 감정 유대를 갖는 것을 말한다. 주로 아기와 엄마의 유대관계에서 시작하게 된다.
일단 애착이 형성되면 몇 가지 특성을 보인다. 먼저 애착관계를 맺은 선호하는 인물에 대해 접근하려고 한다. 어린 아이에게 있어 애착인물은 우선 엄마일 경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에 아버지, 조부모, 형제자매 등의 순서로 계층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둘째, 에인스워스는 애착대상이 애착을 느끼는 사람에 대하여 만들어낸 환경을 묘사하기 위하여 ‘안전기지 secure base’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안전기지는 호기심과 탐색을 위한 본부로 활용되며 위험을 느낄 때 기지로 돌아온다. 일단 위험이 지나고 나면 애착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일하고 쉬고 놀이를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애착 대상을 다시 필요로 할 때 대상이 제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안전한 안식처가 있음을 확신하면 어떤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애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와 관련 있는 대목이다. 세 번째 개념은 분리에 대한 저항이다. 애착이 잘 형성되었는지 알아보는 방법 중 하나가 분리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다. 에인스워스는 이러한 분리저항을 이용하여 애착의 형태와 질을 분류하는 ‘낯선 상황’을 고안해냈다. 약 20분 정도가 소요되는 실험실 검사로 아이를 애착인물과 두 차례 잠깐씩 분리시키는 실험이다. 잠깐 분리는 매번 최대한 3분이다. 연구진은 이 실험을 통해 애착의 질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를 유형 별로 분류하였다. 볼티모어에서 처음 결과를 발표할 당시 미국 중산층 가정의 한 살짜리 아이들 상당수(66%)가 엄마와의 재회시 친밀함을 추구하고 안심하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이들은 안정애착 집단이다. 나머지는 불안정 애착 집단으로 회피형(20%)과 양가적(저항)(12%) 유형이 있다. 회피형 아이들은 분리시 괴로움을 뚜렷하게 표현하지 않고 재회시 어머니를 무시하였다. 두 번째 재회시 더 심해지고 놀이를 잘 못하였다. 저항형은 분리에 대해 극도로 고통스러워하였으며 재회해도 쉽게 안정되지 않고 화를 내거나 엄마에게 매달리며 놀이에 집중하지 못하였다. 이후 계속된 연구에서는 불안정 애착의 다른 유형으로 비조직화/비정향 유형이 밝혀졌다. 이들 유아는 엄마에게 이상하고 비정향적 방식으로긴밀함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엄마 뒤로 접근한다거나 숨고, 동작 도중에 갑자기 얼어붙거나 허공을 응시한다. 이러한 애착 행동은 유아기에 그치지 않고 성장과정 동안은 물론 성인이 되어도 계속된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특성을 각각 비교한 결과 부계보다는 모계의 불안정성이 세대에 걸친 불안정 애착의 전이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 일반적인 애착 체계의 발달 단계
첫 번째 단계는 출생 후부터 생후 6개월까지 기간으로 신생아가 비록 사람을 구분하여 알아보는 능력은 없지만 신체 접촉에는 잘 반응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쳐다보기이며 이는 마치 위니콧(Winnicott)이 주장한 안아주기와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생후 6개월 기간 중 후반 3개월 동안 애착관계의 시작이 두드러진다. 아기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 목소리에 비해 엄마 목소리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며, 다른 사람이 떠날 때와 엄마가 떠날 때 우는 소리가 다르고 안아달라는 신호로 엄마에게 두 팔을 들어 올리기도 한다. 아기가 엄마를 알아보는 상호작용적 매트릭스가 형성되며 따라서 엄마-아기 관계가 확고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엄마의 ‘반응성’ 이 애착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생후 6개월부터 만 3세까지 기간으로 분명한 목표에 대해 애착이 형성된다. 생후 6개월 이후에야 아기는 근접성 추구, 안전기지 효과, 분리저항이라는 애착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나타낸다. 생후 7개월경에는 낯선 인물에 대해 불안을 보이기 시작한다.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해지고 움츠러든다.
곧이어 엄마와의 분리시 심한 불안을 나타내는 시기가 이어진다. 이 단계에서는 애착 체계의 몇 가지 특성이 두드러진다. 첫째, 애착 행동은 상호작용하는 관계라는 점이다. 둘째, 아이는 엄마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지나치게 불안해하는 부모는 아이의 탐색행동을 통제함으로써 아이를 답답하게 만들 수 있으며 아이에게 소홀한 부모는 아이 입장에서 안전기지라는 안정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셋째, 아기의 자아와 애착인물의 상대적 행동방식을 나타내주는 ‘내부 작동 모델’이 내재한다. 세 번째 단계는 3세 이후 발달하는 아기와 부모가 상호관계를 형성하는 시기이다. 애착 체계가 부모와의 근접성 유지를 위한 자동 미사일 항법 장치처럼 부모라는 목표에 맞춰져 있었다면 아이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심리적으로 다양함을 띄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는 단순 설명으로는 불가한 복잡 유형이 나타난다. 부모가 자신과 분리된 인물임을 알게 되고 상호작용을 위한 관계를 형성한다. 이렇듯 세 단계의 애착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돌봐주는 이의 민감성과 유용성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연구들은 어머니의 애착 상태와 낯선 상황 검사에서 나타난 아동의 애착 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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