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에와 진괘(震卦)
요즘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가히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습니다..그리고 드라마의 중심에는 강마에(김명민 분)라는 매우 독특한 캐릭터가 자리를 잡고 있지요. 강마에는 대상관계 수업시간에도 잠깐 언급되기도 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강마에라는 캐릭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드러내는 다양한 언행이 평소 흥미롭게 여기던 주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를 아십니까?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잘 알려진 고대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의 스승이기도 했던...그는 문답법이라는 독특한 교육방식으로 당대의 유명 인사들과 논쟁을 벌임으로써 그들의 무지가 천하에 드러나도록 하였던 매우 독특한 교사로써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는 바로 그 자신의 독특한 교육방식으로 말미암아서 사람들의 모함을 받게 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 몰 정도의 극한 미움을 사도록 했던 그의 교육방식..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소크라테스가 보여주었던 아이러니적 교육방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정점을 이룬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치명적인 ‘미움’에 사로 잡히도록 하는 참으로 희한한 교육방식을 두 사람 모두 구사했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키에르 케고르는 ‘미움’이라는 어휘는 아니고 ‘실족’ 혹은 ‘상심’이라는 용어로써 이를 설명했지요.
물론 교사로써의 소크라테스와 메시아였던 그리스도가 베풀고자 했던 궁극의 것에는 확실히 어떤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두 사람이 인류에게 주려했던 선물이 무지의 자각이든, 영혼의 구원이든 간에 이에 도달하는 방법 또는 과정의 유사성을 키에르 케고르는 상심이라는 키워드와 관련해서 고찰했던 것 같습니다.
상심(=손상된 마음)에 이르도록 함으로써 구원을 이룬다? 믿기 어려운 표현이 되겠습니다만 키에르 케고르는 아마도 그렇게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키에르 케고르의 관찰이 서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동양에서 중시하는 유학 또는 성리학은 매우 정치한 형이상학인데 그 중에서 조선시대 이퇴계의 ‘이기이원론’은 그 정점을 이루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퇴계의 사상 중에 유명한 ‘사단칠정론’은 중국의 성리학을 뛰어넘거나 크게 확장시킨 이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사단(=인의예지)을 취하기 위해서 제안된 방법은 ‘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이란 공경한다, 존경한다의 경입니다. 높이 우러르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퇴계의 심성론을 연구한 현대 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결국 ‘경’의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면 문제를 일으키는 칠정을 물리치고, 사단을 취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관련된 일련의 과정에 대해 제가 언급할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경’입니다..경만 취할 수 있다면 된다(?)는 것인데...어떻게 하면 경을 취할 수 있을까가 문제입니다. 키에르 케고르는 이와 관련해서 매우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었습니다..그의 답은 한마디로 ‘파라독스’입니다. 파라독스만이 ‘경’의 태도로 가는 왕도라는 거죠.
그렇다면 또 파라독스는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에 조금 비약해서 말한다면 파라독스는 바로 ‘강마에 방식’이라는 겁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나오는 강마에가 처음부터 끝까지 파라독스의 함의를 완전하게 구현한다라고 볼 수는 없겠으나 어쨌든 까칠 강마에가 파라독스라는 개념의 분위기만큼은 올바르게 표현해 주고 있다는게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똥.떵.어.리, 치매, 귀머거리, 캬바레라고 면전에서 단원들을 일갈하던 까칠맨 강마에! 무섭지요, 정말 서늘합니다. 아마도 그에게 당한 사람은 뭔가 심히 울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울컥은 증오나 미움, 적개심같은 종류의 것이겠지요. 돌이킬 수 없는 상처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에도 일정부분 묘사되었듯이 강마에의 까칠함 이면의 그 무엇에 대한 설정은 강마에라는 캐릭터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인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마치 두루미처럼.
그러나 키에르 케고르의 가르침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같은 드러냄은 작가의 치명적 실수입니다. 따스함과 숨겨진 사랑이라는 강마에의 이면은 어쩌면 드러내어서는 안 될 금기사항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같은 드러냄의 설정이 없다면 두루미도 없었을 것이고, 그 두루미씨에 공감하는 시청자도 없었겠지요..
한편 동양의 주역에서 경은 진괘로 설명한다고 합니다. 진은 천둥과 번개 그리고 지진으로 묘사되는 혼란의 양상인데 주역의 진괘에서는 아무리 천둥과 번개가 치고 지진이 일어나도 제사 때 사용하는 그릇을 깨버리지 않는다는 설명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이같은 눈 앞의 변화를 재해로만 간주했더라면 제사 그릇을 깨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천둥 번개라는 징후는 달리보면 다음 농사에 꼭 필요한 ‘소나기’의 전조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파라독스 또는 강마에 방식일 때에만 ‘상심’ 또는 그 반대인 ‘가능성’의 극한 상태로 내 몰 수 있으며 둘 중 어느 길로 갈 것인지는 사람의 선택에 달렸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루미로 대변되는 가능성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상심의 길로 갈 것인가? 여하튼 강마에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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