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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누가 이불공주를 깨울까? - 지들이 와서 한번 그렇게 살아보라지.

반찬이 2009. 4. 4. 11:50
뉴스: 누가 이불공주를 깨울까
출처: 한겨레21 2009.04.04 11:50
출처 : 매거진
글쓴이 : 한겨레21 원글보기
메모 : [한겨레21] [노 땡큐!]
'이불공주' 얘기를 하련다. 요즘 학생들은 수업 시간마다 무릎담요를 덮어쓰고 대놓고 잠을 잔다.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를 '이불공주'라 한다. 이불공주의 행동 특성은 이렇다. 이불공주는 '본수업'이 시작되면 항상 잠을 청한다. 쉬는 시간에는 깨어 있다가 교사가 입실하면 이불을 찾아들고 본수업에 들어가면 이불을 덮어쓰고 잔다. 농담이나 곁가지로 흐르는 다른 이야기에는 잠시 깨어나 주목하는 공주들도 있다. 교사가 가진 권위의 정도와 이불공주가 교사의 입실로부터 수면에 돌입하기까지의 시간은 비례하지만, 결국은 잔다.

경쟁에서 진작에 밀려난 아이들

국토는 좁고 자연 자원은 부족한 우리나라가 살길은 '인적 자원'을 키우는 데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라는 믿음은 오랜 시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다. 이불공주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시작되는 치맛바람, 사교육, 과외 등의 살벌한 경쟁에서 진작에 밀려난 채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경쟁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은 이불공주에게 존재의 위협을 느끼게 한다. 그는 적극적으로 수업을 거부하는 전략을 취해 스스로를 방어한다. 경쟁에서 뒤처진 것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고, 그의 긴 잠을 통해 웅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불공주에게는 학교 공부가 쓸모없다. 대학 진학을 위한 준비에 총력을 집중하는 학교에서 자기 성적으로 제대로 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그도 잘 알고 있다. 자기가 진학할 수 있는 대학은 성적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 대학은 이불공주가 등록금을 낼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니 잠을 깨우며 "공부해서 대학 가야지" 하고 설득하는 교사에게 말한다. "저 대학 안 갈 건데요." 이불공주는 잠을 청한다. 잠은 심신이 지친 이불공주에게 적어도 순간의 행복을 제공한다.

이불공주처럼 대놓고 이불을 꺼내들지는 않더라도 많은 아이들이 수업 틈틈이 반수면 상태로 빠져든다. 잠이 싹 달아나게 수업하면 되지 않느냐고, 교사의 무능을 질책할 수도 있다. 맞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수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천하장사 삼손도 잠 때문에 머리카락을 잘리고 구차한 신세가 되지 않았던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곳곳에 붙어 있는 경고문이 있지 않은가. 졸음 운전은 위험하니 잠시 차를 세우고 한숨 자고 운전하라고. 맞다. 졸린 사람은 자야 한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사를 보면 '잠 안 재우기'가 얼마나 악질적인 고문인지를 알 수 있다. 졸음은 정말 힘이 세다. 1교시 시작 전부터 졸린 아이들을 7교시까지 그리고 이어지는 방과후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까지 맨정신으로 끌고 가는 것은 이미 '수업 스킬'의 문제가 아니다.

고등학교들이 등교 시간을 앞당겼다. 아침 8시 혹은 8시10분 정도에 1교시가 시작된다. 7시30분까지 모든 학생이 학교에 와서 '자율'학습을 하도록 강제하는 학교도 많다. 오후 4시도 되기 전에 7교시까지의 숨가쁜 일과가 끝나도 아직 바깥은 훤하고, 입시가 목전인 아이들을 그대로 귀가시키기에는 민망한 시간이다. 시간표에는 있지도 않은 8교시·9교시·보충수업·자율학습이 이어진다. 실은 8교시·9교시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등교 시간을 앞당긴 것이다. 하교 후에도 아이들의 일과는 끝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새벽 1시나 2시 정도가 돼야 피곤한 몸을 눕힐 수 있다.

지들이 그렇게 살아보라지

이불공주는 자꾸 늘어난다. 어른들은 말한다. 그 시간까지 공부하느라 그런 것이 아니라 집에 와서 인터넷 하느라 그렇다고.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집중하지 않고 딴짓만 한다고.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일만 하고 사나? 쓸데없는 짓도 하면서 살아야 숨통이 트이지. 아이들도 다 저 살자고 딴짓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공부가 부족하다며 일제고사 보면서 국가가 학생들 성적도 관리하고, '사교육 없는 학교'를 지정해서 보충수업을 강화하겠다는 분들께 말하고 싶다. 지들이 와서 한번 그렇게 살아보라지.

박현희 서울 구일고 사회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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