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국민 공통의 불안증
“우리 인생 전체가 아마도 어떻게 우리가 불안증을 다스리느냐 하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을 거야.” 한 번은 내가 한 친구에게 말했다. “사람들마다 제각기 그것을 다른 방법으로 다스리지만, 불안은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 같아.” 1999년에 나는 우리가 전 국민적으로 불안증에 사로잡혀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물론 그런 주장을 뒷받침 하는 통계적인 증 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졌던 증거라고 하면, 친구들, 환자들, 내 라디오 방송에 전화를 걸어주는 청취자들, 그 리고 내 자신의 체험들이었다.
1990년대 말, 공립학교들(특히 도시 변두리의 학교들)은 점점 더 경쟁이 심해지고 있었고, 요구도 많아지고 있었다. 1990년대 말 까지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력이 질적으로 달랐던 것 같다. 어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심지어 유치원까지도 점차 경 쟁적이 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90년대 동안 범죄에 대한 염려가 많아지고, 빠르게 증가하는 주택 양식 중 하나가 입구에 출입문을 만든 마을이었 지만, 폭력적인 범죄율은 낮았다. 경제적인 불안이 만연했어도, 아직 주식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내가 말했듯이, 그 칼럼은 1999년에 씌어졌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테러리즘에 노출되고, 광범위한 국민적인 불안증이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치솟기 두해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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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료에게 했던 말이 옳았던 것일까? 인생은 정말 불안을 다스리는 것이 전부일까? 이것을 잘 생각해보자. 조종자라고 비난받는 사람들은 지배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일, 청소, 알콜, 마약, 성취 등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은 불안증의 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불안전감도 불안의 형태요, 경계 심도 그렇다. 부부싸움, 도로주행 중의 분노, 대화중인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 모두가 불안이다.
매년 유월절 행사 전에, 그 축제를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나는 책을 읽는다. 작년, 유월절을 위한 연구를 하던 중에, 모세가 이집트에서 유대인들을 데리고 나올 때, 모두가 다 그를 따라 나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읽은 문헌에서는 그를 따라 나선 사람들이 약 20퍼센트라고 추산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그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우리 중 대부 분은 그것이 비록 고통스럽다 해도, 매일의 일상 속에 머물기를 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일까? 규칙들, 일상, 예측가능성은 불안 을 지배하에 두려는 방법들이다. 불안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더욱 더 매달린다. 왜냐하면 변화는 불안과 같기 때문 이다. 그것은 나에게 모, 래리, 컬리의 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모와 래리, 컬리는 오래 동안 작은 섬에 난파된 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병 하나가 해변에 떠밀려 왔다. 세 사람들 중 하나가 병을 문지르자, 펑 하고 요정이 나타났다. 요정이 말했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세 사람이 있으니, 각각 소원 하나씩을 말하십시오.” 아마도 파리 사람이었을 모가 말했다. “내 소원은 레프트 뱅크 거리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애인과 함께 앉아서, 와인을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겁니다!” 훅! 그가 사라졌다. 독일 태생인 래리가 말했다. “여기에 있게 된 이후로, 나는 매일 해 뜨는 것과 해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옥토버페스트(맥주 축제;Octoberfest)까지의 날을 손 꼽아 기다렸어요. 아, 지금 당장 뮌헨에 있는 맥주홀에 얼마나 가고 싶은지!” 그가 사라졌다. 그러자 요정은 컬리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물었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했다. “글쎄요, 나는 그 두 사람이 보고 싶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 ; 컬리의 소원은 이집트에 남은 80퍼센트의 유대인들과 같았다. 깊은 안전감을 느끼려고, 우리는 우리가 이 미 갖고 있었던 것을 원한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불평하는 만큼,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내면에는 “내가 어제 가졌던 것을 그냥 주 세요.”라고 말하는 컬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 마음의 아름다움이자 저주이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적응한다는 것이다. 그럼 저주는? 자, 우리는 어떻게 그 섬을 탈출하는가?
나 자신의 불안은 한결같은 동반자였다. 내가 그것을 결코 없앨 수도 없었거니와 심지어 거부할 수도 없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나와 불안감의 관계가 변화해 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최근 나는 3일 명상 수련에 참가했다. 그것은 매우 근사했으며, 이완하고 집중하게 해 주었다. 나는 다른 때와는 달리 큰 평화로움 을 느끼며, 일요일 밤 8시쯤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두 시간 후에 몸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 두 시가 되자, 나 는 잠에서 깨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끝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운 생각과 내가 지닌 책임감이 머리에 떠올랐으며, 그 일을 끝 내지 못할까 두려워지는 등등.. 생각이 계속되었다. 내 불안증 유령이 돌아온 것이었다.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되자, 나는 거의 밖까지 들리도록 크게 외쳤다. “아, 이런 빌어먹을! 나는 너를 잠재우는 데에 3일을 썼는데, 넌 고작 5시간 만에 돌아와 버렸단 말이냐!?” 그러고 난 다음, 나는 도망가려고 하는 시도의 헛됨에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나에게 불안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있을 것 이다. 정말 나는 단 3일의 수련이 그 오랜 동반자를 깨끗이 쫓아내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던가? 바보같이! 그것이 우리가 행하는 것의 전형이다. 우리는 우리의 불안증과 흥정을 하려고 한다. 우리는 불안에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더 많 이 성취하면 어쩔 거야? - 그러면 사라질 거야?” 또는 “범죄로부터 안전하도록 출입문 달린 마을로 이사를 가면 어쩔 건데?” 아니 면, “만일 돈을 더 많이 벌면 어쩔 거야? - 다신 절대로 걱정이 없도록 보장해 줄 거야?”
얼마 전에, 한 친구가 나에게 자기가 지니고 있던 감정에 대해 말했다. -일종의 안정을 얻으려면 그저 더욱 더 열심히 일해야 할 것 만 같다는 것이었다. “마치 악마들이 내 발뒤꿈치를 물고 늘어지는 것 같아.”하고 그는 덧붙였다. 그와 같은 악마들이 물고 늘어지지 못하게 하려면 그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앉아 보게.” 나의 대답은 그랬다. 그것은 실제로 너를 쫓아다니는 악마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주의 집중을 요구하는 네 마음의 한 부분일 뿐이다.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의 마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진정한 안정감이 생겨난다고 나는 믿는다. 만일 불안이 느껴진다면, 그냥 그것을 느껴라. 만일 네 마음이 너를 어두운 곳으로 데리고 간다면, 그냥 거기에 머물러라. 만일 지옥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 있다고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소에 가서 앉아 있어라.” 그의 어리둥절하고 잘 모르겠다는 반응에 나는 말을 이었다. ; “우리가 버스를 기다릴 때는, 버스가 올 거라는 것을 알아. 다만 언제 올 것인지를 모를 뿐이지.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네가 급하거나 상관없이, 버스는 올 시각에 와.” 그리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보라는 제안과 함께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그와 같이 언젠가 너는 천국에 있는 것처럼 기분 좋은 너 자신을 발견할 것이야. 그러니 생각해 봐, 또 거기 버스가 오고 있다구!”
그 대화는 개선해온 내 불안증과의 관계를 떠올리게 해 주었다. 최근 몇 해를 지내면서, 나는 불안을 피할 수 없었고, 그것을 거부 하거나, 심지어 잘 다스릴 수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나의 불안이 방향의 변화를 겪어왔다고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는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는 모든 대 재앙들을 확실히 두려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내가 많은 재앙 들로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서, 내가 두려움을 덜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내 회복력에 대한 믿음을 (지금으로서는) 키워왔다. 또한 확실히 그러할 것이지만, 고통이 다시 찾아올 때, 가장 깊은 차원에 서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 믿음이 내 불안을 쫓아내주지는 않는다. 내 휠체어가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낸다거나, 이상한 감각을 느낀다거나, 배뇨관 이 새면 어떡하나 걱정이 될 때, 또는 겨울에 회합에 가야하는데, 누가 나에게 겉옷을 입혀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될 때, 나 는 아직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나는 또한 나의 강의에 대해, 이 책 안의 글들에 대해 걱정을 하고, 그것들이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진정으로 반영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표현한 방식이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스럽다. 그렇게 나의 불안과 나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러나 우리의 관계는 매우 크게 발전했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그 과정 속에서 나의 불안이 나를 지배하는 힘은 약해진다.
- Daniel Gottli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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