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0년 당시에 전남대학교 학생으로, 당시 광주를 경험한 모든 분들과
마찬가지로 27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만 생각하면 오목가슴에 통증이 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외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시절의 억울함과 서러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누구 한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없더군요
나 혼자만 슬프고 아픈 것이지 다른 사람들은 5. 18에 대하여 관심조차 없으며
지겨워하는 것을 여실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여자분들이 남자들 군
대 얘기 지겨워 하듯이요...
그 이후로 20여년간 나는 가급적 5. 18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아는 척하지
않고 지내왔지만, 표시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가슴속 응어리는 항상 존재했었
지요.
그동안 5월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는 몇편 있었으나, 정면에서 다룬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라, 가족과 함께 관람을 하였습니다.
사실은 예약을 해놓고도 과연 볼 것인가 몇번이나 망서렸는데,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괜히 보는 것 자체가 두려웠습니다.
어쨋든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저 자신은 5. 18의 한쪽 당사자일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글 쓰는 것이 조심스럽고, 부담스럽습니다.(이런데 글쓰는 것이
처음입니다)
우선 5월 광주를 과감하게 정면에서 다루어준 영화관계자의 용기와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역사적으로 5월 광주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민감 할 수 밖
에 없고, 5월 광주인의 입장에서 아무리 거품물고 이야기해봐야 다른 분들은
식상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들을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던 사실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어 그동안 우리만
의 답답함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영화가 잘 만들어진 것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영화상영 내내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서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였고, 어떤 여자분은 대성통곡을 합디다만,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저는 5월 광주의
당사자로서 영화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느끼는
감흥은 다른 분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다소 아쉽게 생각했던 부분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도청앞에서 계엄군과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는 장면에서 "인봉"이
계엄군에게 여자를 소개 시켜주겠다면서 한 장면들은 5월 광주를 너무
억지스럽고, 희화화 시켜 상당히 서운하더군요..
잘못하면 시민들중 일부는 장난과 재미삼아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오해
받을 소지가 충분히 있는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였겠지만, 당시 시민들
은 진지하였고, 상황은 긴박하였었습니다.
둘째, 당시 5월 20일의 버스와 택시 등 200여대의 차량 시위는 10일간의
여러사건들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이 장면이 묘사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광주 금남로에서 약 200여대의 버스와 택시가 경적과 해드라이트를 키고 도청방향으로 계엄군을 밀어붙인 차량시위가 있었는데 당시 게엄군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밀리는 시민들은 이를 계기로 시민들이 게엄군에게 도전을 받던 상황에서 응전 상황으로 반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차량시위에 참가한 기사분들은 계엄군에게 쫏기거나 부상당한 시민들을 태우
다가 영화속 김상경씨처럼 피해를 당한 기사님들이 중심이 되어 공설운동장에
모여 시위를 계획하고, 도청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참가하신 기사님들은 5.18이 끝나고도 5.18 민주기사의 모임을 갖고
계속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차량시위 장면은 생략된 채로, 계엄군과의 대치 장소에 버스가
서있는 상황만 있음( 이 장면은 차량 시위후 그 결과로 남겨진 버스의 모습)
셋째, 계엄군 철수후 시민들이 도청을 접수한 후에 대장(안성기)의 지시로
시민들의 통제가 이루어진 모습은 너무 단편적인 모습입니다.
당시 도청앞에서 수십만의 시민들이 모여 시민대회를 여러번 개최하였고,
시민들은 누구나 발언권을 얻어 자유스럽게 자기 의견을 주장하였으며,
주장내용에 따른 시민들의 호응도를 바탕으로 대표를 뽑고, 행동방향을
결정하였으며, 정보를 교환하였으며, 당시 시국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였었
습니다.(할아버지도, 과격하고 흥분 잘하는 동네 아저씨도 한마디씩..)
마치, 그리스 시대에 있었던 시민 직접 민주정치가 이루어진 상황 또는
우리나라 개화기에 있었던 만민공동회와 유사한 상황이었지요..
네째, 김상경 등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만 시위를 한 것으로 묘사
한 것은 너무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시민들이 열받거나 흥분해서 감정적인 시위를 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가족들이나, 같은 시민들이 피해를 입은 모습을 보고 흥분하거나 억울해서 시위에 참여하신 분들도 있으셨겠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시민대회등을 통해 당시 현실 인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였었고, 이에 따라 독재권력을 반대하고 민주화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라는 인물이 박정희처럼 정권을 탈취할 야욕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던 시절임에도 "전@@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는 것은 앞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설 것이라는 정확한 시국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이 영화에는 자세하게 나오진 않았지만, 당시 시민들이 주장하였던 구호나, 프랭카드들을 보면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 열망하였음을 정확히 알수 있을 겁니다
참고로 5월 27일 계엄군과 총격전을 벌이던 마지막 도청 사수자들이 계엄군을 기
다리면서 작성한 유서를 한번 보시지요..
< 도청에 남아 있던 학생 글 >
(1)
엄마,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계엄군들이 공격을 해오면 저항하다가 죽게 되겠지
죽더라도… 이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을 폭도라고 진실을 왜곡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깨달아 알거에요
정말… 진정한 폭도가 누구였던지,
우리들의 죽음을 통해 이 땅,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확립되었으면…
정말 더 바랄게 없겠어요…
낳으시고, 이제껏 사랑으로 길러주셨는데, 이렇게 먼저 떠나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람 목숨이 파리보다 못한 것으로 생각되어
이렇게 …
엄마, 꼭 건강히 지내세요… 그리고 저를 대신하여
이땅에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폭군이 물러나는 세상을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그 때 꼭 “내 땅 장하다”라고 저를 기억해 주세요
이제껏… 부모님께 불효하여 살았던 거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 고통과 불행이 없는 천국으로 갑니다
그곳에서는 슬픔도 고통도 없으니
혹여 끔찍하게 죽은 제 시신을 보셔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이미 하늘나라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을 겁니다
엄마도 조금만 슬퍼하시고, 힘차게 지내시다
천국에 오셨을 때 만나요…
항상 엄마, 아빠, 동생을 위해 …기도할께요
건강하세요
(2)
하느님, 저는 몇 시간 뒷면 당신을 보게 되거나 저 무서운 고통의 고문장으로 끌려 갈 지도 모릅니다.
제게 부디 그 고통을 잊게 해 줄 힘을 주소서.
또한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인사도 하지 못한게 매우 가슴이 아픕니다. 나 없이도 남은 가족이 행복하게 살 길 바랍니다.
아… 하느님, 저는 지금 앞으로 다가올 공포가 매우 두렵습니다. 그 공포를 견딜 힘을 주소서…
(3)
어머니, 이제 집에 갈려면 좀 시간이 걸릴 거 같아요.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야. 공수부대가 빼라고 하는데도 안빼, 나도 남을려고.
그래도 죽기야 하겠어. 너무 걱정말고. 조금 떨어져 있다고만 생각하셔. 밥도 잘 챙겨 드시고.
분위기가 참 어수선해. 우리가 대치해야 하는게 정예 공수부대, 탱크고 하니깐 말이야. 그래도 괜찮을 거야. 사람들이 똘똘 뭉쳐 있으니까. 민주주의가 이 땅에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혹시나 혹시나 나를 다시 못보게 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마.
다 잘될꺼야, 걱정마!
마찬가지로 27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만 생각하면 오목가슴에 통증이 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외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시절의 억울함과 서러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누구 한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없더군요
나 혼자만 슬프고 아픈 것이지 다른 사람들은 5. 18에 대하여 관심조차 없으며
지겨워하는 것을 여실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여자분들이 남자들 군
대 얘기 지겨워 하듯이요...
그 이후로 20여년간 나는 가급적 5. 18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아는 척하지
않고 지내왔지만, 표시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가슴속 응어리는 항상 존재했었
지요.
그동안 5월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는 몇편 있었으나, 정면에서 다룬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라, 가족과 함께 관람을 하였습니다.
사실은 예약을 해놓고도 과연 볼 것인가 몇번이나 망서렸는데,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괜히 보는 것 자체가 두려웠습니다.
어쨋든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저 자신은 5. 18의 한쪽 당사자일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글 쓰는 것이 조심스럽고, 부담스럽습니다.(이런데 글쓰는 것이
처음입니다)
우선 5월 광주를 과감하게 정면에서 다루어준 영화관계자의 용기와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역사적으로 5월 광주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민감 할 수 밖
에 없고, 5월 광주인의 입장에서 아무리 거품물고 이야기해봐야 다른 분들은
식상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들을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던 사실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어 그동안 우리만
의 답답함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영화가 잘 만들어진 것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영화상영 내내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서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였고, 어떤 여자분은 대성통곡을 합디다만,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저는 5월 광주의
당사자로서 영화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느끼는
감흥은 다른 분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다소 아쉽게 생각했던 부분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도청앞에서 계엄군과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는 장면에서 "인봉"이
계엄군에게 여자를 소개 시켜주겠다면서 한 장면들은 5월 광주를 너무
억지스럽고, 희화화 시켜 상당히 서운하더군요..
잘못하면 시민들중 일부는 장난과 재미삼아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오해
받을 소지가 충분히 있는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였겠지만, 당시 시민들
은 진지하였고, 상황은 긴박하였었습니다.
둘째, 당시 5월 20일의 버스와 택시 등 200여대의 차량 시위는 10일간의
여러사건들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이 장면이 묘사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광주 금남로에서 약 200여대의 버스와 택시가 경적과 해드라이트를 키고 도청방향으로 계엄군을 밀어붙인 차량시위가 있었는데 당시 게엄군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밀리는 시민들은 이를 계기로 시민들이 게엄군에게 도전을 받던 상황에서 응전 상황으로 반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차량시위에 참가한 기사분들은 계엄군에게 쫏기거나 부상당한 시민들을 태우
다가 영화속 김상경씨처럼 피해를 당한 기사님들이 중심이 되어 공설운동장에
모여 시위를 계획하고, 도청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참가하신 기사님들은 5.18이 끝나고도 5.18 민주기사의 모임을 갖고
계속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차량시위 장면은 생략된 채로, 계엄군과의 대치 장소에 버스가
서있는 상황만 있음( 이 장면은 차량 시위후 그 결과로 남겨진 버스의 모습)
셋째, 계엄군 철수후 시민들이 도청을 접수한 후에 대장(안성기)의 지시로
시민들의 통제가 이루어진 모습은 너무 단편적인 모습입니다.
당시 도청앞에서 수십만의 시민들이 모여 시민대회를 여러번 개최하였고,
시민들은 누구나 발언권을 얻어 자유스럽게 자기 의견을 주장하였으며,
주장내용에 따른 시민들의 호응도를 바탕으로 대표를 뽑고, 행동방향을
결정하였으며, 정보를 교환하였으며, 당시 시국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였었
습니다.(할아버지도, 과격하고 흥분 잘하는 동네 아저씨도 한마디씩..)
마치, 그리스 시대에 있었던 시민 직접 민주정치가 이루어진 상황 또는
우리나라 개화기에 있었던 만민공동회와 유사한 상황이었지요..
네째, 김상경 등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만 시위를 한 것으로 묘사
한 것은 너무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시민들이 열받거나 흥분해서 감정적인 시위를 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가족들이나, 같은 시민들이 피해를 입은 모습을 보고 흥분하거나 억울해서 시위에 참여하신 분들도 있으셨겠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시민대회등을 통해 당시 현실 인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였었고, 이에 따라 독재권력을 반대하고 민주화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라는 인물이 박정희처럼 정권을 탈취할 야욕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던 시절임에도 "전@@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는 것은 앞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설 것이라는 정확한 시국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이 영화에는 자세하게 나오진 않았지만, 당시 시민들이 주장하였던 구호나, 프랭카드들을 보면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 열망하였음을 정확히 알수 있을 겁니다
참고로 5월 27일 계엄군과 총격전을 벌이던 마지막 도청 사수자들이 계엄군을 기
다리면서 작성한 유서를 한번 보시지요..
< 도청에 남아 있던 학생 글 >
(1)
엄마,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계엄군들이 공격을 해오면 저항하다가 죽게 되겠지
죽더라도… 이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을 폭도라고 진실을 왜곡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깨달아 알거에요
정말… 진정한 폭도가 누구였던지,
우리들의 죽음을 통해 이 땅,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확립되었으면…
정말 더 바랄게 없겠어요…
낳으시고, 이제껏 사랑으로 길러주셨는데, 이렇게 먼저 떠나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람 목숨이 파리보다 못한 것으로 생각되어
이렇게 …
엄마, 꼭 건강히 지내세요… 그리고 저를 대신하여
이땅에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폭군이 물러나는 세상을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그 때 꼭 “내 땅 장하다”라고 저를 기억해 주세요
이제껏… 부모님께 불효하여 살았던 거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 고통과 불행이 없는 천국으로 갑니다
그곳에서는 슬픔도 고통도 없으니
혹여 끔찍하게 죽은 제 시신을 보셔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이미 하늘나라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을 겁니다
엄마도 조금만 슬퍼하시고, 힘차게 지내시다
천국에 오셨을 때 만나요…
항상 엄마, 아빠, 동생을 위해 …기도할께요
건강하세요
(2)
하느님, 저는 몇 시간 뒷면 당신을 보게 되거나 저 무서운 고통의 고문장으로 끌려 갈 지도 모릅니다.
제게 부디 그 고통을 잊게 해 줄 힘을 주소서.
또한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인사도 하지 못한게 매우 가슴이 아픕니다. 나 없이도 남은 가족이 행복하게 살 길 바랍니다.
아… 하느님, 저는 지금 앞으로 다가올 공포가 매우 두렵습니다. 그 공포를 견딜 힘을 주소서…
(3)
어머니, 이제 집에 갈려면 좀 시간이 걸릴 거 같아요.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야. 공수부대가 빼라고 하는데도 안빼, 나도 남을려고.
그래도 죽기야 하겠어. 너무 걱정말고. 조금 떨어져 있다고만 생각하셔. 밥도 잘 챙겨 드시고.
분위기가 참 어수선해. 우리가 대치해야 하는게 정예 공수부대, 탱크고 하니깐 말이야. 그래도 괜찮을 거야. 사람들이 똘똘 뭉쳐 있으니까. 민주주의가 이 땅에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혹시나 혹시나 나를 다시 못보게 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마.
다 잘될꺼야, 걱정마!
출처 : 희망세상을 사는 이야기
글쓴이 : 삼류문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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