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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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비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도와 주신 전세계의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책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진정한 자아를 찾아나선 한 애벌레의 이야기입니다. 그 애벌레는 나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를 닮았습니다. '더 나은' 삶 -진정한 혁명, 그리고 진정한 혁명의 존재를 믿으신 나의 아버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지은이 : 트리나 폴러스 작가이자 조각가. 운동가이다. 국제여성운동단체인 '그레일'회원으로 활동했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1972년 처음 출간된 뒤로 30년이 훌쩍 넘는 동안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포르투갈, 일본 등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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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작은 호랑 애벌레 한 마리가 오랫동안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던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자, 자기가 태어난 곳인 초록빛 나뭇잎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먹고, 먹고, 또 먹고...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닐꺼야. 이런 삶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게 분명해. 그저 먹고 자라기만 하는 건 따분해." 그래서 호랑 애벌레는 오랫동안 그늘과 먹이를 제공해 준 정든 나무에서 기어 내려왔습니다. 호랑 애벌레는 그 이상의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온갖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것도 호랑 애벌레를 만족시켜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와 같은 애벌레를 만났지만 그들은 먹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서 이야기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저 애들은 삶에 대해 나보다도 아는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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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무척 바삐 기어가고 있는 애벌레 떼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을 보니 커다란 기둥이 보였습니다. 그 기둥은 꿈틀거리며 서로 밀고, 올라가는 애벌레 더미 - 말하자면 애벌레 기둥이었습니다. 애벌레들은 꼭대기에 오르려고 기를 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 있어서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 호랑 애벌레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내가 찾으려는 것이 어쩌면 저 곳에 있을지도 몰라." 호랑애벌레는 옆의 애벌레에게 물었습니다. "저 애들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아니?" "다들 저 꼭대기로 올라가려고 애쓰느라 바빠서 아무도 설명해줄 시간이 없나 봐." "저 꼭대기에는 뭐가 있는데?" "그건 아무도 몰라. 하지만 모두 저기에 가려고 서두르는 걸 보면 아주 멋진 곳인가 봐. 나도 빨리 가 봐야겠어! 잘 가." 호랑 애벌레도 기둥 속으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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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애벌레는 사방에서 떠밀리고 채이고 밟혔습니다. 밟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발 밑에 깔리느냐... 호랑애벌레는 밟고 올라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벌레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위협과 장애물일 뿐이었습니다. 호랑 애벌레는 그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고, 위협을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오로지 남을 딛고 올라서야 한다는 생각이 실로 큰 도움이 되었고, 호랑 애벌레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도 힘겨웠습니다. 그럴때면 불안의 그림자가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꼭대기엔 뭐가 있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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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하도 화가 나서 그림자의 속삭임을 더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나도 몰라 그런 건 생각할 시간도 없단 말야!" 그때 호랑 애벌레 밑에 눌려 있던 노랑 애벌레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습니다. "너 방금 뭐라고 했니?" 호랑애벌레는 얼버무렸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야."노랑애벌레가 말했습니다. "실은 나도 그게 궁금했어.하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른 애들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아.그러니까 우리가 가는 곳은 틀림없이 멋진 곳일거야." 호랑 애벌레는 왠지 불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집념을 잃었습니다. "방금 이야기를 나눈 그 애벌레를 짓밟고 올라갈 수 있을까?" 호랑애벌레는 노랑 애벌레를 피하려고 애를 썼지만, 어느 날 다시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노랑 애벌레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래, 네가 올라가느냐, 아니면 내가 올라가느냐, 둘 중 하나야." 호랑 애벌레는 이렇게 말하고는 노랑애벌레의 머리를 밟고 올라섰습니다. 노랑 애벌레가 슬프게 바라보는 눈빛에 호랑애벌레는 그만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짓을 하면서까지 올라갈 가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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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애벌레는 노랑애벌레의 머리에서 내려와 속삭였습니다. "미안해" 그러자 노랑 애벌레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 날 혼잣말을 하는 너를 만나기 전에는 그래도 미래의 희망을 품고 이 삶을 견딜 수 있었어. 그런데 그 날 이후로는 이런 생활을 계속할 마음이 사라졌어. 하지만 이제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생활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몰랐어. 하지만 지금 나를 바라보는 너의 다정한 눈길을 보고, 내가 이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됐어. 나는 너와 함께 기어다니며 풀이나 뜯어먹는 생활을 하고 싶어." 호랑애벌레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 보엿습니다. 기둥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호랑애벌레가 속삭였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어" 그것은 위로 올라가는 일을 포기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매우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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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깨달았습니다.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그들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아니라는 것을. 노랑 애벌레가 말했습니다. "내려가자." "그래 좋아." 그래서 그들은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수많은 애벌레가 그들을 밟고 올라갔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숨이 막혀서 답답했지만, 그들은 함께 있어서 행복했고, 눈과 배가 밟히지 않도록 서로 끌어안고 커다란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습니다. 그들은 꽤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그렇게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느덧 애벌레 기둥 옆으로 빠져나와 있었습니다. 둘은 그렇게 나와서 꼬옥 껴안아 주며 지냈습니다. "이렇게 함께 있는 건 저 무리 속에서 짓눌리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구나" 쉴 새없이 남과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한동안은 꼭 천국에 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서로 껴안는 것조차 지겨워졌습니다. 둘은 이제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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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애벌레는 또다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게 삶의 전부는 아닐꺼야. 무엇인가 더 있는 게 분명해."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잖아. 우리가 내려온 것은 실수였는지도 몰라.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까 이번에는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을꺼야." 호랑애벌레는 말했습니다. 꼭대기는 여전히 구름에 덮여 있었습니다. 하루는 기둥 주위에서 '쿵'하는 소리가 울리고 에벌레가 어디선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죽은 것 같았으나, 꿈틀거리며 간신히 중얼거렸습니다. "저 꼭대기... 나중에 알게 될꺼야...나비들만이..." 그 수수께끼 같은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마침내 호랑나비가 입을 열었습니다. "난 알아야겠어. 당장 가서 꼭대기의 비밀을 알아내야겠어." 노랑 애벌레는 몹시 괴오웠습니다. 호랑 애벌레를 사랑했고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성공하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숱한 시련을 견디면서까지 꼭대기에 올라갈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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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수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었지만 노랑 애벌레는 호랑 애벌레를 사랑하면서도 함께 갈 수는 없었습니다. 노랑 애벌레는 올라가는 것만이 꼭 높은 곳에 이르는 길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노랑애벌레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난 안 가겠어" 그러자 호랑애벌레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노랑애벌레를 떠났습니다. 호랑애벌레가 떠나고 쓸쓸한 마음으로 떠돌던 어느 날, 노랑나비는 무엇인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늙은 애벌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곤경에 빠지신 것 같은데 제가 도와드릴까요?" 노랑애벌레가 말했습니다. "아니다. 나비가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단다." "나비, 바로 그거야." 노랑애벌레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저, 나비가 뭐죠?" "나비는 미래의 네 모습일 수도 있단다. 나비는 아름다운 날개로 날아다니면서 땅과 하늘을 연결시켜주지. 나비는 꽃에서 꿀만 빨아 마시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날라다 준단다." "나비가 없으면 꽃들도 이 세상에서 곧 사라지게 돼." 노랑애벌레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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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없어요! 제 눈에 보이는 것은 당신도 나도 솜털투성이 벌레일 뿐인데, 그 속에 나비가 한 마리 들어 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시간이 흐른 후노랑애벌레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과는 다르단다." "나비가 되기로 결심하면...무엇을 해야 되죠?" "나를 보렴,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내가 마치 숨어 버리는 듯이 보이지만 고치는 결코 도피처가 아니야. 고치는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잠시 들어가 머무는 집이란다. 고치는 중요한 단계란다. 일단 고치 속에 들어가면 다시는 애벌레 생활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고치 밖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비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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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비가 되면 너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어.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사랑을 말이야. 그런 사랑은, 서로 껴안는 게 고작인 애벌레들의 사랑보다 훨씬 좋은 것이란다." 노랑애벌레는 호랑애벌레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호랑애벌레가 애벌레 더미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있어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슬펐습니다. 늙은 애벌레가 말했습니다. "슬퍼하지 말아라. 네가 나비가 되면, 날아가서 나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호랑애벌레에게 보여 줄 수 있어. 그러면 호랑 애벌레도 나비가 되고 싶어할 거야." 노랑애벌레는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습니다. "호랑 애벌레가 돌아왔다가 내가 없는 것을 알면 어떡하지? 애벌레 상태로 있으면 적어도 '무엇인가'를 할 수는 있어. 기어다닐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어. 어떤 식으로든 사랑도 할 수 있어.하지만 고치가 되면 어떻게 서로 결합하지? 고치 속에 틀어박히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해!" 날개를 가진 멋진 존재로 변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는데 하나뿐인 목숨을 어떻게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단 말인가? 노랑 애벌레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치를 만들 만큼 확신에 차 있는 늙은 애벌레를 보면서 나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을 뛰게 했던 그 야릇한 희망을 간직한 채, 노랑애벌레도 나비가 되기 위한 모험에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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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애벌레는 비단실로 계속 몸을 감았습니다. 늙은 애벌레는 마지막 남은 실로 머리를 감싸며 외쳤습니다. "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어. 우리는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노랑애벌레는 늙은 애벌레의 고치 옆에 매달린 채, 실을 뽑아내어 고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나, 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니! 내 속에 고치의 재료가 들어있다면 나비의 재료도 틀림없이 들어있을거야." 한편, 호랑애벌레는 단단히 결심하고 열심히 올라갔습니다. 다른 애벌레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습니다. 그런 인연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랑애벌레는 마음을 굳게 다잡은 정도가 아니라 무자비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호랑애벌레는 자신이 다른 애벌레들과 적대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호랑애벌레는 목적지 가까이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껏 잘해 왔지만 이 높이에서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동안 습득한 기술을 총동원하여 제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엄청난 재난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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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주고받는 대화도 없었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고치 속에 틀어박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애벌레는 자기 위에 있는 애벌레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 놈들을 없애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도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어." 이 말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압력과 진동이 느껴지고 몇몇 애벌레들의 몸뚱이가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심한 좌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고 호랑애벌레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때, 꼭대기에서 조그많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곳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자 또 다른 목소리가 대꾸했습니다. "조용히 해, 이 바보야. 밑에 있는 놈들이 다 듣겠어. 우린 지금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하는 곳에 와 있단 말야. 여기가 바로 거기야!" 호랑애벌레는 몸이 오싹해졌습니다. 그렇게 높은 곳에 있는데도, 이 곳은 전혀 고귀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밑바닥에서 볼때만 대단해 보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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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위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기 좀 봐. 기둥이 또 있어.그리고 저기도... 사방이 온통 기둥이야.이제 호랑애벌레는 실망만이 아니라 분노마저 느꼈습니다. "그토록 고생해서 올라온 기둥이 수천 개의 기둥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니! 수백만 애벌레가 꼭대기까지 올라오느라 헛고생을 하고 있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하지만... 다른 무엇이 있지 않을까? 노랑 애벌레야! 넌 무엇인가 알고 있었어. 그렇지? 기다리는 용기가 그거였니? 어쩌면 네가 옳았는지도 몰라. 아아, 노랑 애벌레와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무슨 함성과 함께 또 다른 술렁임이 일어났습니다. 눈부신 노랑 날개를 가진 생명체 하나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기둥 주위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정말 멋진 광경이었습니다. 힘들게 기어오르지 않고도 어떻게 이렇게 높이까지 올 수 있을까? 그 멋진 생명체는 호랑애벌레의 두 눈을 슬픈듯이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길을 보고 호랑애벌레는 기둥을 처음 본 뒤로 이제까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흥분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오래 전에 들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나비들만이..."저게 나비일까?" 그러면 나머지 말은 무슨 뜻일까. "저 꼭대기... 나중에 알게 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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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너무나 이상했지만 뭔가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노랑 애벌레의 눈빛과 비슷한 눈빛.혹시?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호랑 애벌레의 기쁨은 점점 커졌습니다. 어쩌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 나비가 나를 데려다 줄 지 몰라. 호랑애벌레는 방향을 바꿔서 기둥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온 몸을 쭉 펴고,모든 애벌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호랑애벌레는 그 눈들이 다양하고 아름다워 감탄했고, 옛날에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호랑애벌레는 마주치는 애벌레마다 속삭였습니다. "내가 꼭대기에 올라가 봤는데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들은 올라가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서 호랑애벌레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날 수 있어! 우리는 나비가 될 수 있어.호랑애벌레의 말은 모두에게 충격이었습니다. 호랑애벌레는 새삼 깨달았습니다. 높이 오르려는 본능을 그 동안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 '꼭대기'에 오르려면 기어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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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애벌레는 애벌레마다 내부에 나비가 한 마리씩 들어있으리라는 기쁨에 들떠, 그들을 하나씩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호랑애벌레는 그들의 눈동자에 어린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이 기쁘고 멋진 소식은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것이었고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기둥을 환히 밝혀 주었던 희망의 빛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비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끝없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나비에 대한 환상도 희미해졌습니다. 애벌레 한마리가 빈정거렸습니다. "우리의 삶은 기어다니다가 기어오르는 거야. 우리 모습을 봐! 어느 구석에 나비가 들어있겠어. 이런 몸뚱이나마 최대한 이용해서, 애벌레의 삶이나 열심히 즐기라고!" 호랑애벌레는 아픈 가슴을 안고 아래로 내려가면서도,자신의 속삭임을 들어줄 만한 눈빛을 계속 찾았습니다. "나는 나비를 보았어. 삶에는 뭔가 보다 나은 것이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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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힘들고 지친 호랑애벌레에게 노랑나비가 찾아왔습니다. 노랑나비는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이 날아갔습니다. 어느 나뭇가지에 이르러서 찢어진 자루에다 머리와 꼬리를 집어넣는 시늉을 했습니다.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러다가 조금씩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호랑애벌레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호랑애벌레는 기어 올라갔습니다. 또다시. 고치를 만들려고 하는데 순간 겁이 덜컥 났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랑나비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끝...
아니, 새로운 시작... 감사의 말 세상이 꽃으로 가득 차려면 수많은 나비가 필요합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분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는 이 책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분들, 그리고 내가 아직은 모르지만 나와 더불어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수많은 분들을 위해"썼습니다. 변화에 맞서고, 흔히 불행하기 쉬운 혁명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위대한 한국인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부디 이 책이 여러분에게 또 다른 혁명 - 애벌레 하나도 죽이지 않는 혁명 -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애벌레를 죽이면 아름다운 나비는 세상에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972년에 출판된 책에서 언급한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 분들은 대다수 아직 우리 곁에서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죽음이라는 중요하고 궁극적인 번데기 단계를 지나 소망과 믿음과 사랑 속에서만 접할 수 있는 신비 속으로 떠나 버린 분들도 있습니다. 그 모든 분들이 이 책을 이루고 있는 삶을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책을 '노래' 부르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꽃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가장 중요한 것에 시간을 씁시다.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일입니다. 돈 한푼 들지 않을 뿐 아니라,베풀수록 늘어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삶을 선택합시다!" 희망을 품고 Trina.찢어진 자루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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