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심리학과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대화
성신여자대학교 김 정 규
자기심리학과 게슈탈트 치료는 둘다 정신분석적 뿌리에서 나왔고 또한 현상학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한편, 게슈탈트 치료는 발달이론 부분에서 이론적 체계가 다소 미흡한데 이를 자기심리학과의 대화를 통해서 보완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먼저 자기심리학과 개인간 주관성이론의 이론적 배경들을 간단히 살펴본 후, 자기대상, 자기대상 욕구, 자기대상 전이, 불변적 조직화원리 등 두 이론의 주요개념들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나서 자기심리학과 개인간 주관성 이론 그리고 게슈탈트 치료 간의 대화 필요성 그리고 이들 이론의 게슈탈트 치료에의 수용에 따른 문제점들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마지막으로 자기심리학 및 개인간 주관성 이론과 게슈탈트 치료 간의 차이점에 대해, 그리고 게슈탈트 치료의 독특성 및 정체성에 대해 기술하였다.
게슈탈트 치료는 고전 정신분석 치료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등장했지만 정신분석치료의 최근의 흐름은 게슈탈트 치료와 새로운 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Kohut의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과 Stolorow와 그의 동료들의 '개인간 주관성이론(intersubjectivity theory)'은 게슈탈트 치료와 매우 유사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게슈탈트 치료는 실존적, 현상학적 관점에서 환자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환자의 문제에 대한 유기적인 이해를 가능케 했으며, 실험이나 대화관계 개념의 도입을 통해 심리치료 분야의 혁신을 주도해온 공을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게슈탈트 치료가 개체의 발달과정을 이해하는 발달이론의 개발에는 소홀히 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경계선장애 환자나 자애적 성격장애 환자들 같은 비교적 장기치료를 요하는 환자집단의 치료를 위한 발달이론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Yontef, 1988).
그런데 자기심리학과 개인간 주관성이론이 이러한 발달이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게슈탈트 치료자들은 최근 이 두 이론들과 활발한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때 자기 심리학과 개인간 주관성이론은 충동모델을 사용하는 고전 정신분석과는 달리 환자의 경험과 과정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관계모델에 보다 접근하고 있어 고전 정신분석과 게슈탈트 치료의 가교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Heiden & Hersen, 1995).
본 논문에서는 자기심리학과 개인간 주관성이론의 이론적 배경과 주요개념들을 소개한 후 이들을 게슈탈트 치료이론과 비교하고, 나아가서 이 두 이론의 관점을 게슈탈트 치료로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다.
가. Kohut의 자기심리학
Kohut는 1913년 비엔나에서 출생했고 1940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처음엔 신경생리학을 전공하였으나 나중에는 시카고 연구소에서 정신분석학 수련을 받으면서 정신분석학에 몰두하였다. 거기서 그는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미국 정신분석학회장과 세계 정신분석학회 부회장직을 역임했다. 그는 1960년대 후반에 와서 그의 환자 미스 F와의 치료작업을 계기로 전통 정신분석학으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는 이 환자의 치료를 통하여 치료자가 환자의 태도를 분석하고 설명해주는 것이 단지 환자의 더 많은 저항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 치료자의 분석과 설명은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유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더 많은 좌절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그는 고전 정신분석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신분석 이론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자기심리학이다.
그는 고전 정신분석이 복잡한 인간의 정신을 성충동이나 공격충동 같은 경험과 동떨어진 구성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자기심리학에서도 이런 충동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충동을 느끼는 환자의 심정을 공감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이런 충동의 심리적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Kohut, 1977; Wolf, 1988).
고전 정신분석에서는 모든 환자들이 다 에디푸스적 성적 갈등을 갖고 찾아온다고 가정하고서 연상과 해석을 통해 이런 충동을 자각시키는 것이 치료라고 보는데 반하여 Kohut의 입장은 에디푸스기는 정상적인 발달의 한 과정에 불과하며 부모의 태도로 인해 부차적으로 문제가 나타난다고 했다.
또한 공격성의 문제도 공격성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즉, 이는 생물학적 충동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자기와 자기대상의 관계가 파열될 때 부차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료상황에서 나타나는 환자의 분노는 공격충동의 표현이라기보다 치료자의 공감 결여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Kohut는 충동보다는 환자와 치료자의 관계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그는 환자들이 치료에서 일관되게 치료자에게 보여주는 태도를 보고 이러한 관계모델을 생각해내었다. 즉,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내적 충동이 아니라 치료자와의 특정한 관계라는 것이다. 만일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관계가 치료상황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환자는 좌절하고 분노하며, 그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치료가 호전되고 점차 문제를 극복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Kohut의 이런 입장은 고전 정신분석으로부터 과감한 방향전환을 이룬 것이었다. 즉, 충동모델을 버리고 관계모델로의 전환을 이룬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은 정신분석을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정신분석의 전통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했다(Kohut, 1977; Wolf, 1988).
자기심리학의 철학적 배경
Freud의 정신분석학은 자연과학적 인과모델 위에 서있었는데 반해, Kohut의 자기심리학은 딜타이의 해석학적 전통을 따르고 있다. 특히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개인과 환경간의 관계를 내적 현상체계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때 구조주의는 한 현상의 폐쇄적인 인과적 체계를 가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과모델과는 달리 어느 한 시스템의 인과적 설명으로 그 시스템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현상의 구조는 열려있으므로 예언 불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한 사건들의 내부구조는 서로 관련되어 어떤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를 잘 연관되게 밝혀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것이 해석이다. 이런 맥락에서 Kohut는 정신분석을 개인의 경험이나 행동을 시간과 상황을 넘어서 지속되는 불변적 구조의 차원을 밝혀내는 작업이라고 보았다. 바꾸어 말해 정신분석이란 개체가 자신과 환경과의 관계체험을 조직화하는 원리 내지는 체계를 밝혀내어 그 개체의 행동을 좀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라는 것이다.
한편, 70년대 중반 이후로 차츰 Kohut는 정확한 해석으로부터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옮아갔다. 즉, 환자 개인의 내부세계에 대한 설명보다는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가 더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개체가 환경과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항상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변해가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전환이었다. 이는 그가 환자를 치료할 때 자신과 환자의 관계를 무시하고 환자를 고립된 실체로 분석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치료과정이 방해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신의 이론적 틀을 재고하면서 이루어졌다(Kohut, 1977; Trop, 1994).
이제 그는 환자의 병리를 단순히 고립된 환자만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치료자와 환자의 상호관계의 산물로 이해했다. 즉, 환자의 병리를 환자의 행동과 그에 대한 치료자반응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똑같은 환자행동에 대해서도 치료자가 이해를 하지 못하면 환자의 반발(자애적 분노)을 사고 그 결과 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반대로 공감적인 이해로 반응하게 되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Kohut의 입장은 위니코트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나르시즘의 발생원인을 어머니의 불충분한 공감력에 의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 그렇다(Chessick, 1993).
이러한 자기심리학의 기본입장은 게슈탈트 치료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즉, 환자의 문제를 환경과 고립된 것으로 보지 않고,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성 속에서 파악하려는 태도는 게슈탈트 치료에서 취하고 있는 기본입장이다. 이는 게슈탈트 치료가 충동모델을 파기하고 관계모델을 채택하면서 고전 정신분석이론으로부터 결별을 선언한 이후 일관성있게 유지하고 있는 이론적 배경이다(Perls et al., 1951, 1969; Polster, 1973).
자기심리학의 주요개념들
Kohut의 이론은 환자의 관점에서 그들의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확립되었다. 즉, 치료자 입장에서의 외형적 관찰이 아닌 환자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 들어가서 그의 경험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시각의 전환을 이루었다. 고전분석에서 주요역할을 하는 '충동'이나 '의존' 혹은 '적응' 등의 개념은 환자의 주관적 경험과 거리가 먼 구성개념들이다. Kohut는 이런 외현적인 개념적 틀을 갖고서 환자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환자의 내적 현실을 무시함으로써 환자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초래한다고 비판하였다.
Kohut는 1977년에 '자기의 재건(The restoration of the self)'을 출간하면서부터 정신분석의 구조이론에 공식적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이 책에서 '자기(self)'는 더 이상 '자기개념' 혹은 '정신의 내용(Hartman의 입장)'으로서가 아닌 자발적인 능력을 갖춘 독립적인 기구로 대두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자기를 중심에 놓고 그것의 발생과 발달, 구성 등을 연구하는 심리학으로서 자기심리학을 출범시킨 것이었다(Kohut, 1977; Wolf, 1988). 아래에서는 자기의 형성 및 발달과 관계된 개념들을 하나씩 살펴보겠다.
자기대상(self object)
자기대상이라는 개념은 Kohut가 개체가 타인을 자신의 한 부분으로 체험하는 현상을 지칭하기 위해 고안해낸 말이었다. 그에 의하면 신체가 산소를 필요로 하듯이 개체는 자기대상을 필요로 한다. 즉, 개체는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주고 또한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만 자기자신을 응집력있는 단위로 체험할 수 있는데, 이러한 대상을 자기대상이라고 한다.
모든 개체는 자기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개체가 고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자식 관계, 부부관계, 고용주와 피고용인, 정치지도자와 국민, 사회생활, 종교생활 등 모든 인간관계에 기본이 되는 욕구다. 이때 주의할 점은 자기대상은 단지 타인에 의해 제공되는 기능이지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체는 타인과 직접 관계하기보다는 타인이 제공해주는 기능과 관계한다고 할 수 있다(Wolf, 1988; Trop, 1994).
따라서 치료에 있어서도 환자들은 치료자라는 현실적 인물과 관계하기보다는 치료자가 제공해주는 (혹은 제공해주지 못하는) 자기대상 기능과 관계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환자들이 치료자에게 애착행동을 하거나 혹은 반대로 저항행동을 하는 것은 치료자라는 실존인물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어린 시절 획득하지 못한 자기자신의 어떤 기능적인 부분을 치료자가 보상해주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어린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자기대상 기능을 치료자가 수행해줄 때 치료자에게 애착을 보이고, 그런 기능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좌절을 느끼고 분노한다. 이러한 Kohut의 자기대상 개념은 실제 타인이 아닌 타인의 대리물이라는 차원에서 대상관계 이론에서 말하는 '대상 표상물(object representation)'과 유사하다.
환자의 어린 시절 부모가 이러한 자기대상 기능을 잘 수행해주면 튼튼한 자기구조가 형성되어 안정적인 대인관계를 수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자기구조가 취약하여 독립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존적이 된다. 즉, 타인이 자기대상 기능을 계속 수행해줄 것을 기대하고 빈약하고 미분화된 자기대상 관계를 요구하게 된다. 이는 대상관계에서 전능한 대상표상을 계속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는 마치 중독과 비슷하게 나타나며 자기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Kernberg, 1984; Trop, 1994).
자기대상 욕구(selfobject need)
개체는 자기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보호자(치료자)에게 그러한 대상기능을 해줄 것을 강렬하게 바라는데 이를 자기대상 욕구라고 한다.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개체는 자아가 취약한 병리적 현상을 보인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대인관계에서 보상받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치료관계에서도 이러한 욕구가 나타난다. 이는 치료자와 '원초적 연대(archaic bond)'를 맺음으로써 자신의 좌절된 욕구를 보상받고자 하는 행동으로 표현된다. Kohut는 세 가지 형태의 자기대상 욕구를 정의했다.
1. 이상적 자기대상 욕구(idealizing selfobject need)
유아는 매우 강력하고 튼튼한 부모와의 '합병(merger)'을 통해 외부의 위험이나 곤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데, 차츰 부모의 이런 기능을 내면화함으로써 마침내 혼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유아가 만일 자기대상의 이런 불안감소 기능을 내면화하는데 실패하면, 나중에 혼란되고 막연한 불안감에 빠지게 된다. 유아는 이러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동일시의 대상으로서 강력한 자기대상을 원하는데 이를 이상적 자기대상 욕구라고 한다.
아동은 성장하면서 차츰 부모를, 특히 아버지를 이상화시키는 시도를 한다. 즉, 아버지를 멋있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아버지에 대해 이상적인 기대를 품으며 자신을 보호해주고 어려움을 해결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아버지의 행동을 모방하고 싶어한다. 만일 아버지가 이러한 이상에 근접하는 모델역할을 해줄 수 있으면 아동은 이를 내면화시키고 '이상적 자기(idealized self)'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Kohut는 아동이 아버지를 동일시하는 현상을 Freud와는 달리 아버지의 공격성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상적 측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초자아의 자아이상적 측면이라고 볼 수 있는 바, 이는 건강한 자기 존중감의 일부를 이루게 된다. 즉, 이상적 자기대상 욕구가 만족스럽게 충족되고 따라서 튼튼한 이상적 자기가 형성될수록 자기 존중감이 높아진다(Chessick, 1993).
하지만 만일 아동의 이러한 이상적 자기대상 욕구가 좌절되면 아동은 그러한 욕구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평생 완벽한 부모상을 찾아 헤매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약물이나 알콜중독, 성적 문란행동에 빠진다. 하지만 과도한 자기대상 욕구의 자극도 지나치게 흥분수준을 높임으로써 불안을 야기시킬 수 있다.
이러한 욕구가 성장과정에서 좌절된 환자는 치료자와의 관계에서 다시 이런 기대를 나타낸다. 즉, 치료자를 이상화시키면서 치료자가 완벽한 보호자로서 역할해줄 것을 기대한다. 경험이 없는 치료자들은 환자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당황하면서 이를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좋지 않다. 치료 초기에는 환자들의 이러한 자기대상 욕구가 나타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런 일이므로 최대한 그러한 욕구에 부합되는 자기대상 기능을 수행해주는 것이 필요하다(Kohut, 1977).
2. 반영적 자기대상 욕구(mirroring selfobject need)
아동은 자신이 하는 행위가 중요하고 멋있는 행위이며 그것을 잘해냈다는 것을 부모로부터, 특히 어머니로부터 인정과 지지를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데 이를 반영적 자기대상 욕구라고 한다. 어머니는 아동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아동의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면 이로부터 '과대적 자기(grandiose self)'가 형성된다. 이는 생후 8개월에서 3살까지 형성되는데 주로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성취행동에 대해 지지받음으로써 형성된다. 이는 건강한 나르시즘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이 핵심 자기를 이루어 자기 존중감의 원천이 된다(Kohut, 1977).
아동이 자신의 성취적 활동에 대해 부모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면 원초적 과대자기에 고착되어 병적이 된다. 이때 원초적 과대자기가 억압되어 개체는 자기존재의 중요성을 부정하고 억압하여 낮은 자기 존중감과 무력증을 체험하거나(horizontal split) 혹은 반대로 과시적인 행동을 하고 잘난체하며 무분별한 행동을 하지만 정작 본인 자신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내적으로 자신감이 없다(vertical split). 이런 환자들에게는 억압된 과대자기를 다시 나타나게 하고 이를 공감하고 지지해줌으로써 자기 존중감을 회복하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Chessick, 1993).
한편, 이상적 자기와 과대자기를 합쳐 '두개의 자기 극(bipolar self)'이라고 부르는데, 이 둘 중에 어느 한 쪽이 약하면 다른 쪽을 강화시킴으로써 약한 쪽의 자기를 보상할 수 있다. 이것이 심리치료에서 자주 이용되는 접근법인데 이를 '기능적 재활'이라고 부른다. 만일 두 가지가 다 결여된 경우에는 동반적 자기대상과 연대함으로써 이들을 보상할 수도 있다.
치료과정에서 환자들은 치료자가 자신의 과대자기 욕구를 좌절시키면 즉,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지지해주지 않으면 실망하여 '자애적 분노(narcissistic rage)'를 보이는데 이런 현상은 특히 치료 초기에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분노는 건설적인 공격성과는 달리 상대방에 대해 분노표현을 한 뒤에도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왜냐면 이는 자기에 대한 손상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치료자는 환자의 분노에 대해 공감해줌으로써 원래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Kohut, 1977).
3. 동반적 자기대상 욕구(twinship selfobject need)
동반적 자기대상 욕구는 4-6세 사이의 아동에게서 나타나는 행동으로서 타인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말한다. 예컨대, 부모와 같은 옷을 입거나 행동하는 것,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 혹은 자신과 똑같은 생각과 욕구를 가진 상상의 동물을 꿈꾸는 것 등의 행동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는 과대자기의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전생애를 걸쳐 유지되는 욕구인데, 자신이 타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한다. 성공적인 부부나 친구들의 경우 대개 생각이 비슷하고 가치관이 비슷한 것은 이런 욕구 때문인 것 같다.
동반적 자기대상 욕구는 전통적으로 자기심리학에서 앞의 두 가지에 비해 그렇게 많이 강조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이 욕구가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주로 심한 정신병리에 초점을 맞춘 자기심리학에서 덜 중요시된 것 같다. 하지만 게슈탈트 치료는 대등한 개인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 욕구에 좀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Hycner, 1990).
자기대상 전이(selfobject transference)
환자는 자신의 정서상태를 잘 파악하여 공감적으로 반응해줄 수 있는(attuned responsiveness) 자기대상을 필요로 하는데, 치료자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줄 것을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면서 치료자를 대한다. 이를 자기대상 전이라고 부른다. 치료가 되기 위해선 우선 환자가 치료자에게 이러한 자기대상 전이를 일으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환자가 치료자의 자기대상 기능을 내면화시키고 그 결과 차츰 독립적인 자기구조를 형성하게 되어 마침내 더 이상 외부적인 자기대상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그렇게 되기 위해선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튼튼한 정서적 유대 즉, '자기대상 연대(selfobject tie)'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때 치료자의 공감적 이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만일 치료자가 환자의 행동이나 감정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면 자기대상 연대가 파열되고, 환자는 자애적 분노를 보이게 되어 치료관계가 깨어진다.
치료 초기에는 대개 환자들은 자기대상 전이의 형성에 대해 상당히 저항한다. 이는 자기구조에 손상을 많이 입은 환자들일수록 더욱 심하며, 따라서 이런 환자들일수록 치료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차츰 치료자에게 라포(?)가 형성되면 먼저 이상적 자기대상 욕구가 발생하고 다음으론 과대자기가 나타나면서 반영적 자기대상 욕구를 표현한다. 물론 처음엔 이런 욕구가 나타나면서 당황스럽고 불안해하지만 차츰 큰 목소리가 나오면서 '보상적 자기구조(compensatory self structure)'가 형성된다. 과대자기가 먼저 나타나서 반영적 자기대상 전이가 형성된 뒤에 이상적 자기가 출현하여 이상적 자기대상 전이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사람에 따라 순서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Kohut, 1977; Chessick, 1993).
자기심리학의 병인론
자기심리학은 어릴 적 성적 외상경험보다 주로 부모의 병적인 성격과 그로 말미암은 자기대상 기능제공의 실패를 정신병리 발생의 원인으로 꼽는다. 즉, 건강한 부모는 자식의 자기대상 욕구를 자연스럽게 충족시켜 주는데 반해 그렇지 못한 부모는 자신의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식의 자기대상 욕구를 좌절시키거나 아니면 자신의 미해결 과제를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자식의 자기대상 욕구를 회피해버리며, 그 결과 '자기장애(self disorder)'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장애에는 두 가지가 있다(Kohut, 1977).
1. 일차적 자기장애
정신증 환자들이 보이는 장애로서 환자들은 종종 자기가 용해되거나 와해될 것 같은 위협을 느낀다. 이는 신경증 환자들이 경험하는 거세공포나 분리불안과는 다르다. 경계선장애 환자들도 자기장애를 보이지만 그래도 정신증 환자에 비해 다소 자기방어 능력이 있어 어느 정도 자기를 유지 할 수 있다. 자애적 성격장애 환자들은 경계선장애 환자들보다도 좀더 융통성이 있다. 즉, 그들은 일시적으로 와해 위협을 느끼기도 하지만 치료자와 자기대상 전이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응집력이 있는 자기구조를 갖고 있어 조심해서 접근하면 분석(치료)이 가능하다.
2. 이차적 자기장애
에디푸스기의 외상적 자기대상 경험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며 신경증 환자들의 경우에 해당한다. 증상으로는 불안, 우울, 공포, 강박증상 등이다. 이 집단은 정신증 환자나 경계선장애 환자 그리고 자애적 성격장애 환자들에 비해 훨씬 더 응집력있는 자기구조를 갖고 있어 분석이 가능하다. 한편, 정신증 환자와 경계선장애 환자들은 자기가 너무 취약하여 일반적으로 분석하기 힘들지만 치료자의 능력 그리고 환자와의 좋은 궁합에 따라 분석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자기장애의 양태들
1. 과소 자극된 자기
반영적 자기대상 경험이 심하게 결핍된 경우 개체는 활기가 없고 무감정하며 냉담한 성격이 된다. 이들은 자극을 추구하기 위해 신체를 흔들거나 머리를 벽에 부딪치기도 하며 강박적 자위나 자해행위를 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난잡한 성행위나 도박, 약물, 알콜중독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공허한 기분을 달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2. 와해되는 자기
자기가 와해되어 무너지는듯한 경험을 한다. 환자들은 흔히 치료자가 공감에 실패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주지 않을 때 일시적으로 이런 기분을 느낀다. 심하면 신체가 분열되는 느낌을 가지며 심한 신체염려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3. 과잉 자극된 자기
부모가 자식의 과대자기나 이상적 자기를 과잉으로 자극할 경우에 나타난다. 이들은 어떤 성공을 하게 되면 과잉으로 흥분한 나머지 심한 불안을 체험한다. 이들은 이런 불안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개 부모 자신의 미해결된 욕구 때문에 일어난다.
4. 과부하된 자기
어릴 때 이상적 자기대상과 합병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경우 강한 감정이나 불안이 엄습할 때 이를 진정시키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이들은 세상을 적대적이고 항상 경계의 대상으로 지각함으로써 과도한 짐을 지고 살게 된다. 치료자와의 연대를 통해 짐을 벗은 가벼운 자기가 출현할 수 있다(Kohut, 1977).
자기심리학에서 치료자는 단지 환자의 과거 미해결된 성적, 공격적 갈등을 투사하는 백지 투사판이 아니라 환자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대상이다. 환자는 치료자와의 관계에서 공감적 유대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치료자를 자신의 일부로 체험하며, 또한 이를 내면화시킴으로써 안정적인 자기를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치료자는 환자에게 단순한 투사판을 넘어서는 중요한 심리적 기능을 제공한다.
자기심리학의 치료방법론
Kohut에 의하면 심리치료에서 환자는 치료자와의 연대를 통하여 치료자의 자기대상 기능을 내면화시킴으로써 새로운 자기구조를 습득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변형적 내면화(transmuting internalization)'라고 불렀다. 이때 환자들은 치료자와 자기대상 전이를 일으킴으로써 치료자의 특정 자기대상 기능을 내면화시키면서 과거에 결여되었던 자기구조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다.
한편, 치료는 '이해'와 '설명' 두 과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둘은 각각 독립적이면서 또한 상호 의존적이다. 이 두 방법은 모두 공감적 이해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데 초기에는 주로 이해에 치중하지만 치료가 진전될수록 차츰 설명 쪽으로 무게의 중심이 옮아간다. 이때 중환자일수록 이해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
이해과정에서는 치료자와의 강한 자기대상 연대 형성이 중요하지만 설명과정으로 가면 차츰 환자의 통찰이 더 중요해진다. 이처럼 자기심리학에서는 치료의 방향을 정서적 연대에서 점차 객관적인 심층분석 쪽으로 이동시킨다. Kohut는 이러한 방향전환을 어린 아이에게 처음엔 안아주거나 미소를 보내는 방식에서 차츰 말로 애정표현을 하는 것에 비유했다. 하지만 그는 역시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해부분이라고 했다.
1. 이해
환자의 순간순간 경험을 치료자가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껴보고, 환자에게 이를 이해했다고 말해주는 과정이다. 이때 '경험에 근접한(experience near)' 공감적 이해가 중요하다. 즉, 환자가 실제로 경험하는 감정을 공감함으로써 그의 심정을 이해해주는 것이다.
Kohut는 공감을 통해서만이 환자의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 공감은 '타인의 내면세계에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심리학이 '경험에 근접한' 곳에서 자료를 모으던 Freud 이후의 전통에서 벗어나 점차 경험과 동떨어진 '외관적(extrospective)' 자료 수집법으로 옮아가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그는 자연과학의 방법을 참고할 필요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심리학은 '내관법(Introspection)'과 '공감(empathy)'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은 '타인의 경험에 근접하게 다가가서 타인을 경험하는 것'을 뜻한다.
흔히 해석이나 설명은 환자의 경험과 거리가 있으므로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공감은 환자의 경험세계에 이입하여 환자를 이해해주므로 저항을 일으키지 않는다. Kohut는 과거 고전분석에서 저항이라고 불렀던 환자의 행동들은 대부분 치료자가 공감에 실패했기 때문에 나타난 환자의 정당한 반응이라고 보았다.
Kohut에 따르면 심리치료란 공감적 가정에 의해 타인의 내적 과정에 접근하여 그의 복잡한 정신과정을 이해하는 과정으로서 이는 1) 환자의 방어분석 2) 자기대상 전이의 개발촉진 3) 성숙한 차원에서 자기와 자기대상 간의 공감적 일치관계를 확립하는 것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전에는 분열되고 억압되었던 자기가 다양한 자기대상들과 공감적으로 관련을 맺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한편, 공감은 타인의 상태를 알아맞추거나 직관하거나, 마술적으로 지각하거나 또는 그 사람의 상황이라면 내가 어떻게 느낄까를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공감은 타인의 경험에 빠져들어 함께 허우적거리는 상태도 아니다. 공감의 의미는 환자와 치료자 사이에 지지적 연대를 형성함으로써 환자가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내면세계를 개방하고 또한 특정한 발달욕구를 표출시키도록 해주는 데 있다.
또한 공감한 것을 전달할 때는 치료자가 환자의 무의식을 해석하여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공감표현은 환자가 이미 '전의식 수준에서 느끼고 있는 것(experience in ascendancy)'을 해야 한다. 만일 환자가 아직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앞질러 말하면 환자는 오히려 오해받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특히 경계선장애 환자들의 경우는 아직 '핵심 자기(nuclear self)'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기개입으로 인한 공감실패는 쉽게 자기대상 연대의 파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은 보완적 자기구조보다는 방어적 자기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Kohut, 1977).
2. 설명
이는 환자의 경험의 의미를 역동적으로, 경제적으로, 발생학적으로 해석해줌으로써 치료하는 과정이다. 이때 분석가는 환자의 현재와 과거의 심리적 과정을 상호 관련지워 설명해줌으로써 환자의 자신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켜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환자는 어린 시절의 트로마를 훈습하고 고착을 해소하여 치료자와 새로운 자기대상 전이를 통하여 마침내 건강한 자기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자기심리학의 중요한 공헌은 자기경험을 치료이론의 핵심으로 부각시킨 점이다. 즉, 환자의 주관적 경험과 그것의 조직화를 정신분석의 주요영역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때 자기경험이 환자의 고립적인 자기체험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경험을 의미하는 점이 특히 자기심리학의 새로운 발상이다.
자기심리학에서 치료란 공감을 사용해 약한 자기를 강화시켜주는 것으로서 이를 Wolf는 '파열의 회복과정(disruption-restoration process)'이라고 불렀다. 이때 먼저 자기대상 욕구가 나타나서 치료자와의 관계에서 자기대상 전이가 형성되고 충족된다. 가끔 불가피하게 좌절을 겪으면서 자기대상 전이가 와해되는데 이때 치료자는 과거의 트로마 상황과 대비시키면서 설명과 해석을 해줌으로써 다시 전이를 회복시킨다.
이렇게 회복된 전이관계는 이전보다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상호 공명적인 관계로 발전하면서 자기가 강화된다. 그래서 치료자와의 성공적인 자기대상 체험은 환자의 자기를 강화시켜서 차츰 사회적인 맥락에서 좀더 쉽게 자기대상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이때 원초적 자기대상 욕구가 치료자와의 공감적 공명관계로 발전, 대치되는 것이 중요하다(Wolf, 1988).
나. 자기심리학의 새로운 흐름 (개인간 주관성이론)
'개인간 주관성이론(intersubjectivity theory)'은 Stolorow 등이 주도하는 자기심리학의 한 새로운 흐름으로서 자기심리학을 좀더 정교화시킨 이론이다. 이 이론은 충동보다는 정서를 더 중시하고, 따라서 환자의 경험에 대한 공감적 탐색과 이해, 치료자의 내관 등을 강조하는 점에서는 자기심리학과 입장을 같이 한다. 하지만 동기이론에서는 자기심리학과 다소 차이가 있다. 즉, 자기심리학은 자기대상 개념을 중시하는데 반하여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는 개체가 자신의 경험을 조직화하여 하나의 체계화 원리를 구성하여 유지하고 이를 통해 현실을 지각하고 판단하려는 동기가 있음에 더 주목한다(Stolorow, 1994).
Stolorow는 개체가 갖고 있는 이러한 체계화 원리를 '불변적 조직화 원리(invariant organizing principle)'라고 불렀는데 그에 따르면 아동은 성장과정에서 양육자와의 상호관계 체험을 이러한 조직화 원리에 따라 파악하고 기억하며, 이는 차후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여 개체의 모든 경험을 조직화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모든 심리적 문제를 아동기의 부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불변적 조직화 원리가 이후의 현실지각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치료도 환자가 자신의 무의식적 조직화 원리를 자각하여 그것이 자신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깨닫도록 돕는 행위라고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는 자기심리학에서와는 달리 치료자가 환자에게 단지 자기대상 기능을 제공해주는 것만으론 부족하며, 좀더 적극적으로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무의식적 동기인 '불변적 조직화 원리'룰 자각하고, 그것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지각에 어떻게 영향미치는지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Stolorow, 1994; Alexander et al., 1992).
또한 자기대상 욕구나 자기대상 전이에 대해서도 이들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이들은 여러 '불변적 조직화 원리'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치료자의 주된 과제는 '공감적 탐색(empathic inquiry)'을 통해 환자의 무의식적 불변적 조직화 원리를 조사하고 밝혀내는 것이 된다. 그리고 Kohut가 공감을 그 자체로 치료적으로 사용하였는데 반해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는 공감을 개체의 조직화 원리를 찾아내고 조명하는 수단으로서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Trop, 1994).
그리고 치료자의 자기대상 기능제공의 의미도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통합하여 조직화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본다. 즉, 환자들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자신의 감정상태에 적합한 공감을 받지 못하고 상처를 받음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통합하지 못하고 해리시키거나 분리시킨 상태에 있는데 치료자로부터 적절한 공감을 받음으로써 이러한 감정들을 다시 통합하게 되어 치료된다는 것이다(Stolorow & Brandschaft, 1987).
여기서 개인간 주관성이론은 개체의 정서를 무척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정서가 개체의 모든 지각, 인식활동 그리고 불변적 조직화 원리의 형성과정에 결정적으로 관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인간 주관성 이론에서는 치료를 1) 자기대상 차원과 2) 반복적 차원으로 나누는데, 치료는 이 두 차원 사이를 왕복하게 된다. 전자에서는 환자가 과거 성장기에 형성되지 못한 혹은 불충분하게 형성된 자기대상 체험을 치료자가 충족시켜줄 것을 기대하는 차원이고, 후자는 어릴 때 좌절받은 것처럼 치료자도 자기를 좌절시킬 것이라는 공포를 느끼는 차원이다. 즉, 환자의 무의식적 불변적 조직화 원리가 작용하는 차원이다. 그런데 이 두 차원 모두 환자의 무의식적 조직화 원리를 조명하는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이때 치료자와의 좋은 경험을 통해 신뢰가 형성되면 후자를 밝히는 힘이 더욱 강해지고 마침내 대안적 조직화 원리를 개발함으로써 치료가 된다.
치료에서는 자기대상 차원과 반복적 차원이 모두 중요하다. 만일 후자가 문제가 되는데 전자에만 초점을 맞추면(자기심리학에서 처럼) 오히려 환자의 방어적 측면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 후자가 더 큰 문제가 될 때는 무조건 환자의 자기대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데만 치중해서는 안된다. 이때는 환자의 불변적 조직화 원리를 조명해줌으로써 새로운 조직화 원리를 형성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편,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는 치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고전 분석이론에서 처럼 단지 환자의 심리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해한다. 즉, 치료자와 환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장을 형성한다고 본다. 즉, 치료자와 환자는 서로 각자 불변적 조직화 원리를 갖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의 저항도 고전분석 이론에서와는 달리 단순히 환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자와 상호작용에 의해 유발된 합작품으로 본다.
예컨대, 치료자가 치료 도중에 시계를 보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하품을 하는 등의 행동은 환자로 하여금 버림받는 느낌이 들게 하는데, 치료자는 이를 단순히 투사나 저항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실제로 환자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 인정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치료자는 솔직히 자신의 실수를 시인하고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환자는 자신의 지각에 대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 치료자가 만일 환자의 주관경험을 이해해주지 않고 무리한 해석을 가하면, 환자는 과거에 양육자로부터 자신의 주관세계가 무의미함을 선언받음으로써 받았던 상처를 다시 받게 된다.
주요개념들에 대한 개인간 주관성이론의 입장
무의식
고전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이란 '고통스런 기억이 차단되어 있는 것'으로 봤다. Stolorow는 무의식이란 어릴 적 아이-양육자 관계에서 양육자로부터 반응받지 못하거나 부적절한 반응을 받은 정서상태가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재트로마화를 방지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격리된다. 따라서 무의식은 억압된 충동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그에 의하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또한 유동적이다. 즉, 어릴 적 정서경험에 환경이 얼마나 잘 동조적으로 반응했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치료자가 자신의 현재 감정상태를 얼마나 잘 공감해준다고 느끼는지에 따라서 환자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입장이다(Stolorow, 1994).
이는 고정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가정하는 고전 정신분석이론과 상당히 다른 입장으로서 치료자와 환자의 상호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무의식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게슈탈트 치료의 입장과 유사하다. 즉,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무의식을 배경으로 물러난 상태의 욕구나 감정 혹은 기타 의식내용들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따라 시시로 달라지는 것으로 본다(김정규, 1995).
방어
고전 정신분석과 현대 정신분석들은 모두 주로 방어와 저항분석에 치중해왔다. 고전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은 감염된 고름주머니에 그리고 방어는 이를 둘러싼 세포조직에 비유했다. 따라서 치료란 방어를 뚫고 고름을 뽑아내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이때 분석가의 태도는 감정을 배제한 채 냉철한 의사로서 과학자로서 해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Freud, 1912).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는 방어는 충동의 억압이라기보다는 공감받지 못한 그래서 통합될 수 없어서 소외된 감정상태를 지키려는 행동을 뜻한다. 따라서 억압이란 개념도 '조직화하기 힘든 경험들을 의식화시키지 않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이는 '부적 조직화 원리(negative organizing principle)'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억압이 일어나는 이유는 개체가 고통스런 감정이나 기억, 체험 등을 조직화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조직화 원리들 자체는 무의식적이다. 이들은 환자들에게는 마치 자신과는 무관한 사건들 속에 들어있는 객체로 생각된다. 치료에서는 환자의 이러한 무의식적 조직화 원리를 반성적으로 자각하고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데 많은 시간을 투여한다. 그래서 고전분석에서는 증상분석에 치우친데 반하여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는 이러한 조직화 원리의 분석을 강조한다. 이때 두 입장은 모두 무의식을 의식화시킨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무의식의 내용에 있어서는 서로 매우 다르다고 하겠다.
개체는 어릴 때 경험에 의해 경험을 조직화하는 방식(구조)이 정해지고 이 구조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경험들을 정리하는데, 만일 이 구조를 변화시키면 성장에 변화가 온다. 건강한 개체는 통합성을 유지할 정도의 튼튼한 구조를 가지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융통성을 지녀야 한다. 너무 고정된 구조를 갖고 있어 새로운 상황을 잘 통합하지 못하거나 또는 구조가 너무 약하게 형성된 경우가 문제다. 치료는 구조를 변형시키거나 새로이 생성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저항
자기심리학에서는 저항을 '환자가 자애적 상처(narcissistic injury)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기를 싫어하는 마음상태'로 보았는데, 이는 치료 초기에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이때 자기심리학에서는 저항이란 표현보다는 '방어적(defensiveness)'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자기의 응집력을 보호하기 위한 동기라고 하였다. 이는 저항이 성충동과 공격충동이 의식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자아의 역동적 힘이라고 보는 고전분석적 입장과 상당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Kohut가 저항을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개체가 구사하는 창조적 심리적응기제라고 본 점이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라고 하겠다.
자기심리학에서 저항은 환자가 분석가가 자신의 감정을 공감해주지 못할 것이라 예상해서 분석가에게 자기대상 전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자애적 상처가 심한 환자의 경우에는 치료자가 공감을 정확히 해주어도 종종 저항한다. Kohut는 처음에는 저항을 순전히 환자의 내적인 압력과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발생하며 치료자는 단지 이를 외부에서 관찰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차츰 그것이 환자의 내적 구조 뿐만 아니라 치료자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상호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저항은 방어기제의 사용을 통해 나타나기도 하고 방어적 태도를 통해서 혹은 기타의 사고작용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자기대상 전이형성을 방해하는 모든 현상을 저항이라고 부른다. 환자에 따라 이상적 자기대상 전이, 반영적 자기대상 전이 혹은 동반적 자기대상 전이의 어느 한 쪽에 더 많은 저항을 한다. 어느 곳에 문제가 있는지를 진단하는 것이 치료에서 중요하다.
Stolorow는 저항이란 '환자가 과거 보호자에게서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지 못했던 것처럼 치료자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심리에서 치료관계를 조직화하여 지각하고 반응하는 것'으로 정의했는데, 저항은 항상 치료자의 어떤 특징이나 행동이 환자의 과거 발달과정에서의 실패를 연상케하는 상황에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따라서 저항은 자기의 응집력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보아야 하며 치료상에 나타나는 저항은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자와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환자의 저항이 나타날 때는 환자의 조직화 원리 뿐만 아니라 치료자의 무의식적 조직화 원리와 이론적 틀이 어떻게 환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동시에 살펴봐야 한다(Gill, 1984).
환자들은 어린 시절 자기대상 욕구가 거부당함으로써 상처받은 경험들이 있는데 치료자로부터 이러한 욕구를 또다시 거부당하거나 공감받지 못함으로써 새로운 상처를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환자는 치료자에 대해 분노하고 치료에서 마음을 열지 않는데 즉, 저항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치료관계가 파열된다. 이런 실수는 치료에서 불가피하게 되풀이되는데, 중요한 것은 치료자가 이러한 치료적 실패를 시인하고 환자의 분노를 공감해주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노력이 성공하면 관계가 회복되고 새로운 자기대상 연대가 맺어지고 치료가 진전된다.
저항은 치료자의 실수를 깨닫게 해주는 사건인 동시에 환자의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므로 이를 잘 해결함으로써 치료의 진전을 도모할 수 있다. 이때 어디까지나 환자가 중심이 되어야지 치료자의 문제를 다루는 쪽으로 기울어서는 안된다.
전이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 전이는 환자가 치료상황에서의 관계체험을 어떻게 조직화하는가 하는 의미로 정의할 수 있으며, 또한 역전이는 치료자가 이 상황을 어떻게 조직화하는가 하는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 따라서 분석은 이러한 환자의 조직화 원리를 조사하고(공감을 통하여), 동시에 치료자의 조직화 원리를 알아내어(내관을 통하여) 치료자와 환자 간의 장을 탐색하는 것이 된다(Stolorow, 1994).
이러한 전이는 1) 환자가 과거에 없었거나 부족했던 자기대상 경험을 치료자를 통하여 충족받고 싶은 마음과 2) 과거경험에서의 자기대상 실패가 치료자와의 관계에서 다시 되풀이 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바탕으로 무의식적으로 치료관계를 조직화하는 활동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때 치료자가 환자의 욕구나 감정상태에 잘 동조했느냐 여부에 따라 환자는 이 두 가지 차원을 교대로 왔다갔다 하게 된다. 즉, 치료자가 잘 공감해주면 자기대상 경험에 대한 희망과 갈망이 나타나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거부받을 것이라는 공포심 때문에 환자는 부정적 전이를 보이면서 치료에 저항을 하게 된다. 만일 환자가 치료자와의 정서적 연대 안에서 전이를 바로 통찰하면 경험을 조직화하는 새로운 대안적 원리가 형성됨으로써 치료가 된다(Stolorow & Lachmann, 1984/85).
고전 정신분석에서는 전이와 관련하여 치료자의 중립성을 강조했다. 즉, 환자에게 직접적인 욕구충족을 시켜줘서는 안되며 오로지 기술적인 중립성을 견지하여 억압된 충동의 산물들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만일 환자의 충동을 만족시켜버리면 원초적인 충동을 찾아내어 해결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기심리학에서는 분석가의 중립성이 허구임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소위 중립적인 행동마저도 하나의 - 고의적으로 환자의 욕구충족을 좌절시키는 인위적인 -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치료자의 행동은 환자와의 대화를 인위적으로 왜곡시키며, 그 결과 환자는 적개심이 생기고 갈등을 겪는데 이는 환자의 고유한 내적 갈등이라기보다는 치료자가 갖는 태도 때문에 발생하는 '가공품(artifact)'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의 필수요건으로 간주되는 '퇴행적 전이 신경증'도 '절제규칙(abstinence rule)'의 무분별한 남용으로 인한 인위적인 결과물이며 이는 분석과정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자기심리학에서는 중립성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논의하고 있다. 즉, 환자의 주관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의미에서 중립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완벽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면 치료자가 자신의 조직화 원리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지 치료자가 자신의 조직화 원리 그리고 사용하고 있는 이론적 배경이 치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각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만족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해석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의 해석은 고전분석의 입장처럼 치료관계를 떠나 환자의 외부에서 치료관계(전이)에 대해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즉, 환자와의 정서적 연대와 무관하게 정신적인 통찰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통찰은 환자와 치료자 사이의 새로운 정서적 체험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므로 분석가의 전이에 대한 해석은 바로 치료자-환자 연대의 일부분으로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는 분석과 해석 그리고 해석과 제안(suggestion)을 구분하는 것도 인위적이라고 본다. 예컨대, 분석가가 해석적 개입을 할 때마다 환자는 이를 자신이 가야할 길을 치료자가 제안하는 것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Gill, 1984).
과거 고전분석가들은 환자들의 시각에서 문제를 보기보다는 이론이나 자신의 견해를 중심으로 환자들의 현실을 파악하려 했다. 그래서 환자들의 시각은 흔히 왜곡되고 방어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치료자가 환자보다 환자의 경험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치료자가 이런 입장에 서게 되면 환자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되며 환자의 현실을 왜곡시켜서 마침내 환자와의 관계가 파괴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치료자는 자신의 행동이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야 한다. 즉, 치료자 자신의 이론적 배경과 성격적 취약성 그리고 방어기제가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자각해야 하며, 또한 치료자 자신의 미해결된 자기대상 욕구가 환자의 희생을 요구할 가능성과 그러한 욕구의 투사를 통하여 환자를 왜곡지각할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
지난 20년간의 추이를 보면 치료에서 해석을 통한 통찰의 의미보다는 치료자와의 정서적 연대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즉, Kohut는 '자기대상 전이연대(selfobject transference tie)'를 재건하는 것을 강조했고, Modell은 분석상황에서 치료자의 '받쳐주기(holding)'기능을, Emde는 환자의 어린 시절 결핍을 교정해줄 수 있는 치료자의 정서능력을, Weiss와 Sampson은 환자의 부정적 전이기대를 불식시킬 수 있는 치료자와의 새로운 대인관계 경험을 중시했다(Stolorow, 1994).
이처럼 고전분석에서의 통찰의 중요성은 현대 정신분석에서는 차츰 퇴색되어 가는 경향이 있고, 통찰의 의미도 순수한 지적인 통찰보다 치료자와의 새로운 정서경험을 통한 정서적 통찰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Stolorow의 견해로는 통찰은 지적 통찰과 정서적 연대가 함께 이루어질 때 이상적이다. 그것은 전이에 대한 통찰도 치료자와의 새로운 정서적 체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해석의 목적은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무의식적 조직화 원리를 자각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일 해석이 치료자와의 정서적 연대와 무관하게 행해진다면 별로 설득력이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Stolorow, 1994).
다. 자기심리학과 게슈탈트 치료의 대화
자기심리학과 게슈탈트 치료 이론은 둘다 경험을 중시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즉, 고전 정신분석이 충동이나 메타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두 이론은 모두 현상학적 토대 위에서 경험을 중시한다는 점이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은 두 이론 모두 장이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둘다 경험을 개체와 환경의 상호교류적 차원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보는 점이 동일하다. 이는 개체를 환경과 고립된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성 속에 있는 존재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요소주의와 매우 다른 입장이다.
이 밖에도 두 이론은 많은 부분에서 공통적인 시각과 견해를 보인다. 예컨대, 두 이론 모두 감정을 중시한다. 즉, 개인간 주관성이론을 포함한 자기심리학의 입장은 감정이 자기구조의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는데, 게슈탈트 치료에서도 자각과 접촉 그리고 접촉경계 혼란에서 감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과정이론적인 측면도 동일하다. 즉, 두 이론 모두 정신병리를 유기체의 변화과정에 대한 장애로 정의하는 점이 같다. 또한 두 이론 모두 환자의 저항행동을 이해하는 관점에서도 일치한다. 즉, 저항을 억압된 충동에 대한 방어로 보지 않고 환자의 자기보호적 조치로 보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치료적 접근방법에서도 두 이론은 중요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즉, 자기심리학 특히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는 치료자와 환자의 새로운 관계체험에 의해 환자의 무의식적 조직화 원리가 변화된다고 말하는데, 게슈탈트 치료에서도 환자가 치료자와의 대화적 접촉에 의해 고정된 게슈탈트를 깨뜨리고 새로운 관계체험을 이룬다고 보는 말함으로써 서로 매우 유사한 시각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두 이론은 서로 광범위한 공통기반 위에 서있기 때문에 서로 간의 건설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하겠다.
자기심리학의 도입 필요성과 가능성(게슈탈트심리학입장에서)
게슈탈트 치료는 실존적 현상학적 기반 위에 서있으면서 개체와 환경간의 유기적 관계를 고려하는 매우 효과적이고 유용한 치료기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발달이론 부분이 미흡하며 이와 관련된 치료자 역할에 대해서 아직 이론정립이 덜 되어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즉,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단지 치료자가 환자행동을 관찰하여 자아기능 상실로 인한 접촉경계 혼란을 찾아내어 자각시켜 주어야 한다고만 말할 뿐 치료자-환자의 관계에서 환자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주로 접촉경계 혼란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환자의 발달과정에 결여된 자기대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Breshgold & Zahm, 1992).
여기서 이러한 게슈탈트 치료이론의 취약한 부분에 자기심리학을 접목시킴으로써 게슈탈트 치료 이론을 보강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타진하게 된다. 이러한 시도의 필요성은 취약한 자기구조를 갖고 있는 환자들의 게슈탈트 치료와 관련하여 더욱 진지하게 대두된다. 예컨대, 게슈탈트 치료의 특정방법을 특정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 시의성을 판단하는 데 자기심리학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자애적 성격장애 환자에게 자기책임을 지나치게 요구하거나 무분별하게 여러 가지 실험기법들을 쓰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 환자에게는 우선 자기대상 욕구를 충족시켜줌으로써 튼튼한 자기구조를 형성하도록 돕고 나서 차츰 자기를 분화시키는 쪽으로 치료해나가야 할 것이다.
과거 게슈탈트 치료는 주로 비교적 자기구조가 튼튼한 내담자들을 중심으로 실시되었는데 장기치료를 필요로 하는 경계선장애 환자들이나 자애적 성격장애환자들에 대한 치료법은 자세히 연구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 중에는 이런 환자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게슈탈트 치료에서도 이들 집단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자기심리학이 제공하는 치료기법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장기치료를 요하는 경계선장애 환자나 자애적 성격장애 환자들에게 본격적인 게슈탈트 치료를 시행하기 전에 자기심리학적 접근법을 활용하여 이들의 자기구조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치료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자기심리학의 게슈탈트 치료에 대한 기여가 가능한 또다른 분야는 치료자 행동의 영향을 밝히는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게슈탈트 치료는 장이론에 서있으면서 치료자와 환자의 상호관계를 강조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환자의 접촉경계 혼란에 더 비중을 두었지 치료자의 환자에 대한 영향 부분은 세밀하게 다루지 못했다. 그러므로 자기심리학의 새로운 연구성과를 접목함으로써 치료자 변인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치료자에 대한 내담자의 지각차원을 고려함으로써 상호간에 치료적 접촉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특히 자기장애(Self disorder)를 겪고 있는 환자집단의 치료에 유용할 것이다.
한편,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치료자가 환자와의 관계에서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자기를 개방하면서 서로 함께 만나는 것을 높히 평가하는데 반하여 자기심리학에서는 환자의 감정상태에 공감하고 환자의 자기대상 욕구에 동조하여 자기대상 기능을 제공해주는 데 역점을 둔다.
이 두 입장은 서로 장단점이 있는데 게슈탈트 치료적 접근법은 자기가 튼튼한 환자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자기장애가 있는 환자들에게는 자칫 위험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적용시켜야 한다. 그런 환자들에게는 자기심리학적 접근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런 환자들은 아직 미성숙한 단계에 있어 독립된 개체로서 치료자를 지각할 수 있는 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치료자를 자신의 자애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대상으로서만 필요로 하기 때문에 치료자가 섣불리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표현하고 자기주장을 하면 치료관계가 깨어질 수 있다. 치료가 많이 진전되고 환자가 치료자를 독립적인 타인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치료자의 자기개방이 의미있게 느껴질 수 있다(Jacobs, 1992).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기심리학은 게슈탈트 치료의 취약한 부분을 보강할 수 있는 좋은 이론적 그리고 경험적 자료들을 제공해준다. 특히 자기심리학은 자기장애를 겪고 있는 경계선장애 환자나 자애적 성격장애 환자의 게슈탈트 치료에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하겠다.
자기심리학의 수용과 관련된 문제점들
그동안 자기심리학을 게슈탈트 치료에 통합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들이 있어왔는데 이러한 시도들에 대해 아래와 같은 문제점들도 제기되었다.
1. 주로 자기심리학의 공감적 해석에만 치중한 나머지 게슈탈트 치료의 '지금 여기' 의 생동감을 잃어버렸으며 또한 환자의 책임행동을 감소시킨다(Alexander et al., 1992).
2. 환자의 주관경험과 치료자의 공감적 동조를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차원이 흐려져버린다(Yontef, 1991; Hycner, 1990).
사실 그동안 몇몇 시도들은 자기심리학의 새로운 측면을 게슈탈트 치료에 통합하려는 데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게슈탈트 치료의 고유한 특성을 희석시켜버리는 감이 없지 않았는데 위의 비판은 그런 시도들에 대한 반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자기심리학의 수용이 반드시 '지금여기'의 생동감이나 치료자의 자기개방, 실험의 사용, 대화관계 등 게슈탈트 치료의 장점들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즉, 자기심리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면서도 얼마든지 게슈탈트 치료의 고유한 속성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다.
예컨대, 게슈탈트 치료의 통합성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자기심리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에는 ① 환자의 자기대상 욕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② 환자의 자기대상 전이 및 자기대상 연대를 회복하려는 동기를 이해하는 것 ③ 치료적 개입이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민감성을 기르는 것 ④ 게슈탈트 치료기법들을 사용함에 있어 좀더 실수 가능성에 대해 민감해지는 것 ⑤ 실수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는 것 등이 있겠다. 이처럼 자기심리학에서 유용한 것들을 통합적으로 수용하되 반드시 자기심리학 방법을 다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게슈탈트 치료는 자기심리학이나 정신분석보다도 넓은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더 관계중심적, 과정중심적이며, 더 현상학적이다. 그리고 항상 환자의 병적인 부분보다는 건강한 부분을 더 보도록 강조해왔다. 따라서 자기심리학을 통합하는 하는 것이 결코 게슈탈트 치료의 노선을 수정하거나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것을 섭취함으로써 더 안정된 기반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Breshgold & Zahm, 1992).
자기심리학과 게슈탈트 치료의 상이점
자기심리학과 게슈탈트 치료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공감과 관련된 입장일 것이다.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전통적으로 접촉을 강조함으로써 자기심리학에 비해 공감을 소홀히 취급해 왔다. 그런데 성공적인 치료를 위해선 접촉과 공감이 모두 중요하다. 환자에 대한 예민한 공감없이 환자와 깊이 있게 접촉할 수 없으며, 반대로 환자와 잘 접촉하지 못하면 공감이 제대로 치료적 효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의 게슈탈트 치료자들은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과거에 비해 공감을 더 많이 강조한다(Polster, 1995; Hycner, 1995).
한편, 최근 게슈탈트 치료자들은 공감개념에 있어서 환자가 현재 표현하거나 자각하는 감정에만 국한시켜서는 안된다고 말함으로써 오히려 전통적인 공감 개념을 더욱 확장할 것을 요구한다. 즉, 단순히 환자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만 공감해준다면 이는 기계적인 공감이며, 그것은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현재 접촉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자기를 발견하도록 이끌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울증 환자의 우울감정에만 공감하는 것은 너무 기계적이며 이는 무모하기조차 하다는 것이다. 치료자는 한편으로는 환자의 현재 우울감정을 공감해주어야 겠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그가 현재 접촉하고 있지 못하는 자기의 다른 측면에 대해서도 공감적으로 접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환자의 숨은 재능에 대해 질문해줌으로써 그의 '자신감에 찬 자기'가 드러나도록 해주고 이를 공감해줌으로써 그가 이제껏 접촉하지 못했던 자기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 공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사용되는 질문은 공감적 질문인데, 이러한 과정은 치료자가 환자의 억압된 자기와 접촉할 수 있어야 가능해진다. 따라서 공감과 접촉은 서로 뗄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고 하겠다(Polster, 1995).
자기심리학과 게슈탈트 치료의 또 다른 중요한 차이는 치료자와 환자간의 관계에 관한 입장차이다. 자기심리학에서는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를 자기와 자기대상의 관계로 보는데, 이때 자기대상은 단지 하나의 기능일 뿐이므로 치료자의 실존은 치료관계에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즉, 치료자는 환자의 정서상태에 대해 정서적으로 동조해주는 자기대상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취약한 자기구조를 보강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따라서 치료자가 실제로 환자에 대해 어떤 개인적 관심을 갖든 호감을 느끼든 그런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치료자의 존재가 환자에게 더 이상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자로서가 아니라 환자의 존재와 실제로 만나는 자연인으로서 인정된다. 즉,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개인간의 만남(interhuman meeting)'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이때 두 사람 간의 '만남'은 상대편의 감정에 대한 정서적 동조의 의미를 넘어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참여하는 것이다. 게슈탈트 치료적인 '만남'에서는 치료자와 환자가 서로를 '포함(inclusion)'하는 관계이며 이는 서로가 상대의 욕구에 주의를 기울이는 관계다. 이러한 만남에서는 치료자가 환자의 상태에 '정서적 동조'를 할 때도 치료자의 현전(presence)이 동반적으로 인식되는 점이 특징이다.
자기심리학이나 개인간 주관성 이론에서 치료자의 자기개방에 대해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글은 없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연구도 아직 개발되거나 발표되지 않았다.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치료자와 환자가 명실공히 대등한 관계에서 상호 교류한다. 그래서 치료자와 환자는 함께 환자의 경험에 대해 탐색할 수도 있지만 치료자 경험에 대해서도 함께 탐색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치료자와 환자는 서로 접촉을 향상시킬 수 있다(Hycner & Jacobs, 1995).
마지막으로 '자기'개념에 대한 입장 차이인데, Kohut의 자기심리학에서는 세 개의 자기를 가정하였는데 반해서 게슈탈트 치료자인 폴스터는 하나의 '본질적 자기(essential self)'를 중심으로 수 많은 '성원 자기(member self)'를 가정하는 등 자기개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그는 '자랑스런 자기' '행복한 자기' '우울한 자기' '쾌활한 자기' '솜씨 좋은 자기' '반항적 자기' '심미적 자기' '놀기 좋아하는 자기' '친절한 자기' 등등 개체의 성격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특징적 속성들을 여러 자기들의 군집으로 이해한다. 이런 접근은 고전적 게슈탈트 치료의 '상전과 하인' 개념과 '양극성(polarity)' 개념을 확장시키려는 시도로서 개인을 훨씬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Polster, 1995).
논의 및 결론
게슈탈트 치료와 자기심리학의 목표는 상당부분 서로 일치한다. 예컨대, Stolorow는 정신분석 치료의 목표를 '자기경험의 변화'로 보았고, Fromm도 게슈탈트 치료의 목표를 '새로운 자기의 체험'이라고 봤다. 그리고 개인간 주관성이론은 치료적 개입의 중점을 감정의 통합에 두는데 게슈탈트 치료에서도 소외된 자기의 부분들을 통합하는 것을 치료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Hycner & Jacobs, 1995).
그리고 방법론에서도 게슈탈트 치료와 자기심리학은 매우 많은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즉, 자기심리학이 '경험과 근접한(experience near)' 자료에서 이해와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게슈탈트 치료에서 스토리의 발굴을 통해 환자 경험의 원자료에 접근할 것을 강조하는 부분과 일치한다(Polster, 1995).
또한 Stolorow의 '불변적 조직화 원리' 개념은 게슈탈트 치료의 '고정된 게슈탈트(fixed gestalt)' 개념과 서로 상통한다. Stolorow가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무의식적 불변적 조직화 원리를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게슈탈트 치료에서도 환자로 하여금 '행위 알아차림'을 통하여 자신의 행동방식을 자각하고 새로운 지각방식을 학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김정규, 1995; Breshgold & Zahm, 1992).
이처럼 두 이론은 많은 부분에서 유사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이론과 경험을 발전적으로 통합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이 논문의 주 관심사는 자기심리학의 성과물들을 게슈탈트 치료에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들에 대한 논의다.
이러한 논의에서 가장 먼저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자기심리학의 발달모델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이는 우선 게슈탈트 치료이론이 발달이론 부분에서 취약하기 때문이었고, 또한 최근의 심리치료 이론들이 대부분 충동모델에서 발달모델로 옮겨가고 있는 경향에 자극받은 측면도 있었다.
한편, 충동모델에서는 직면을 많이 사용하지만 발달모델에서는 공감적 이해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 게슈탈트 치료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발전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Hycner 같은 이는 게슈탈트 치료의 가장 중심에 공감을 놓고 시작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즉, 공감적 바탕 위에서 대화의 다른 요소들 예컨대, 치료자의 현전, 만남, '관여(commitment)' 등이 발전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Yontef 같은 게슈탈트 치료자는 지나치게 공감을 중시하는 경향에 대해 경고하기도 한다. 공감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게슈탈트 치료의 접촉과 실험에서 오는 생동감과 새로움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Yontef, 1988).
저자의 견해로는 게슈탈트 치료에서 공감 사용을 언제 얼마만큼 사용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일률적으로 기준을 마련하기보다는 치료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더 많이 더 자주 공감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① 치료 초기 ② 환자가 저항을 보일 때 ③ 환자가 불안해할 때 ④ 환자가 자기대 상 전이를 나타낼 때 ⑤ 환자가 자신의 상태나 경험을 공감받기 원할 때 ⑥ 치료자가 환자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고자 할 때 등
반면에 비교적 건강하고 치료자와 라포형성이 잘된 환자가 치료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과거경험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관계형성을 위한 적극적인 시도를 보일 때는 굳이 공감적 접근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자각과 접촉, 대화, 실험 등의 다양한 게슈탈트적 접근법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만일 게슈탈트 치료에서 자기심리학이 밝혀놓은 공감의 가치와 효용성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적절히 사용한다면 이는 분명히 게슈탈트 치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치료적 도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무분별한 공감의 남용 내지는 기계적 공감은 게슈탈트 치료의 고유한 색깔을 흐릴 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혼란마저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자기심리학과 개인간 주관성이론의 다양한 발달이론 지식을 게슈탈트 치료에 활용하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자기심리학의 자기대상 욕구나 자기대상 전이개념을 이해함으로써 게슈탈트 치료에서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개체의 발달욕구 부분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부분은 바로 게슈탈트 치료에 응용될 수 있다. 예컨대, 해결되지 않은 자기대상 욕구는 미해결된 게슈탈트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기심리학적 현미경을 갖지 못했더라면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이부분에 대한 미해결 게슈탈트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또한 불변적 조직화 원리의 개념도 게슈탈트 치료에서 응용가능하다. 즉, 환자 또는 치료자 자신의 무의식적 행동패턴을 이해하는 틀로서 이를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게슈탈트 치료이론에서도 고정된 게슈탈트라는 개념으로서 이러한 현상을 언급하긴 했지만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 처럼 깊이 있게 연구하고 실제 임상에 적용시키는 단계에 까지는 가지 못했었는데 이러한 연구성과를 게슈탈트 치료의 이론틀에 자연스럽게 통합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기심리학을 게슈탈트 치료에 수용하는 작업은 매우 활발히 검토되었고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게슈탈트 치료의 정체성을 흐리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게슈탈트 치료자들은 자기심리학과 게슈탈트 치료를 차별화시키는 대목들에 대해 주목하고 이를 부각시켰다.
먼저 치료목표와 관련하여 자기심리학에서는 치료의 궁극적 목표가 환자의 자기구조를 확립하고 공고히 하는 것인데 반해,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개체가 심하게 혼란되었을 때는 그것이 목표가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체가 독립적인 개체로 타인들의 세계에 참여하는 것, 곧 접촉을 목표로 삼고 있다.
자기심리학에서는 개체와 환경의 관계성보다 주로 개체의 자기경험의 조직화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즉, 자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타인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게슈탈트 치료는 실존주의적 입장을 바탕으로 '타인과의 관계됨(relatedness with others)' 그 자체를 목표로 한다.
이는 다른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표가 된다. 자기구조가 약한 사람, 혼란된 사람들에게 자기대상 연대를 사용하여 자기구조를 복원시켜주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지만 그 자체가 치료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그러한 작업은 복잡하고 다차원적 관계성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는 존재로 돌아가도록 도와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본다(Hycner & Jacobs, 1995).
자기심리학과 개인간 주관성이론에서는 관계성 속에 있는 '자기'가 관심사이지만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관계성 속에 있는 '사람(person)'이 초점이 된다. 자기는 어디까지나 심리학적 구조물이지만 사람은 존재다. Stolorow는 사람은 직접 만날 수 없고 단지 자기경험만이 경험적 연구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오히려 자기는 단지 심리학적 구성개념에 지나지 않으므로 직접 체험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사람은 직접 만날 수 있고 서로의 심정을 공감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고 본다(Hycner, 1995).
이처럼 자기심리학이나 개인간 주관성이론은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만남이라는 차원을 포용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정신분석은 결국 한 개인에 관한 심리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만 고전 정신분석이 치료자의 관점에서 본 것이라면 자기심리학은 환자의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환자의 문제를 보는 관점을 좀더 정교화시키고 세련화시켰다는 공은 인정할 수 있다.
Buber는 "(타인과의) 만남은 리비도보다 더 강한 본능으로서 우리가 세계에 나아가서 알려지는 것처럼 세계가 우리에게 다가와 알려지고, 우리가 세계를 선택하듯이 세계가 우리를 선택하고, 우리가 세계에 의해 확인되듯이 세계가 우리에 의해 확인되는 과정이다."(Hycner & Jacobs, 1995, p.200; 재인용)라고 했다.
하지만 자기심리학과 개인간 주관성이론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인 타인을 만나고 서로 확인해주고 확인받는 욕구를 고려하지 않는다. 즉, 자기대상 욕구나 내적인 조직화 원리 개념만으론 설명될 수 없는 타인과의 만남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전이나 심리 내적인 현상을 넘어서 우리 자신의 독특성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확인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단순히 어느 한 쪽이 상대에게 무엇을 해주는 관계가 아니다. 이는 서로 상대로부터 확인받고 싶은 마음과 상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상대에게 '나아가서(reach)' 서로를 확인해주는 관계이다. 치료상황에서 종종 환자들이 치료자의 개인적 삶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데 이것이 좋은 예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을 떠나서 우리의 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 타인의 존재를 순수하게 만나고 그들의 존재를 확인해 주고, 우리도 타인으로부터 인식되고 확인받는 과정을 통해 존재할 수있다. 자기심리학에서는 타인을 단지 자기를 성장시키는 대상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자기는 나와 타인이라는 두 축의 하나에 불과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와 타인 '사이(between)'이다. 통상적으로는 나와 타인이 먼저 있고 나서 그 부산물로서 '사이'가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사이'가 더 본질적인 것으로 본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게슈탈트 치료는 자기심리학과 구별되는 인간관계 개념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자기심리학과 융합될 수 없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게슈탈트 치료는 정체성 상실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기심리학의 성과물들을 성공적으로 통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Abstract
Self psychology and gestalt therapy are similar in that both theories stem from the common roots of psychoanalysis and have also phenomenological background. A group of gestalt therapists have pleaded for the necessity of dialogue with self psychology hoping to compensate the developmental theory of which the gestal therapy still lack.
This article surveyed the major issues of self psychology and intersubjective theory, which is a new stream of self psychology, and introduced such concepts as selfobject, selfobject need, selfobject transference and invariant organizing principles. After this the author discussed the necessity of dialogue among these three theories together with the problems that arise in the reception of these theories into gestalt therapy.
Finally the differences between gestalt therapy and the other two theories were pointed out and the uniqueness and identity of gestalt therapy were descri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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