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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람의 깊이

반찬이 2007. 9. 6. 21:38
 

사람의 깊이

                                                                                                    장성숙/ 가톨릭대학교, 심리학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사람의 깊이는 인품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품을 이루는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사람에 대한 존중이지 싶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존중받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반대로 무시당할 때는 정말 마음이 상한다. 그리고 어찌 보면 자기와 똑같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도 누군가로부터 함부로 취급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 그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되지를 않아 애써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해볼수록 참 이상하다.

  

  좀 전에 어떤 부모가 와서 호소하는 내용은 암담하기 그지없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아버지가 뭐라고 한마디 하면 폭발하듯 달려들어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때린다는 것이다.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런 일이 생기게 되었느냐고 의아해 하자, 그들은 우무우물 하고 만다. 그래서 내 쪽에서 먼저 짚어 물어보았다, 혹시 아버지가 아들을 무차별적으로 때리지는 않았느냐고. 그러자 부인이 남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모질게 자수성가한 남편은 아들을 무척 사랑하면서도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때때로 코너로 몰아 마구 두들겨 팼다는 것이다.

  

  세상에! 아들을 그렇게 다루어 놓고 이제 와서 그 아들이 부모를 때린다고 걱정을 하다니… 짐승도 그렇게는 때리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을 그렇게 다루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도대체 이 일을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몰라 막막한 심정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부부를 바라보며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느 젊은 남자가 들려준 이야기 인데 아직도 그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농가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학업을 지속하느라 고생을 꽤나 한 편이라고 했다. 어려운 형편에 아들인 자기가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부모님은 더욱 긴축을 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겨우겨우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잡아 결혼을 하고보니, 그때껏 아버님께 버젓한 생신 상 한번 차려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더란다. 그래서 고향에를 들리게 된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산에 가서 일을 하다 잠깐 쉴 때, 넉넉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전보다 살만하니 아버지께 칠순잔치 상을 차려드리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단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사양을 하시는데, 그냥 한두 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강하게 거부를 하시더란다. 그래서 설득을 하는 과정에서 그만 언제까지 그렇게 고집불통으로 사실 거냐며 도대체 아버지로서 자식의 체면을 생각이라도 해보셨느냐며 버럭 성질을 부렸다는 것이다.

  

  그러자 극구 안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아버지가 “누님도 칠순잔치를 못했는데, 동생인 내가 어떻게….” 라며 말끝을 흐리시더란다. 울먹임이 썩힌 아버지의 음성에 놀라기는 했지만 이미 짜증이 나있던 상태여서 아버지의 그런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 고모님이야 출가외인으로 그분의 칠순잔치는 그 집 자손들이 신경 쓸 문제이지, 왜 우리가 그것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라고 되받고 말았단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그래도 누님이 인근에 사시는데, 그럴 수야 없지!” 라고 읊조리며 먼 산을 망연히 바라보시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며 그 당시에는 그런 아버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고리타분하기 이를 데 없는 고집불통의 노인으로만 여겼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러한 아버지에게 점점 고개가 숙여지게 되니 자기가 뒤늦게 철이 드는가보다 라고 말했다.

  

  나 역시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 아버지는 먼 산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오래 전에 함께 힘들게 살았던 가족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있지 않았을까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보기는 하는데…

  

  제도교육을 가까이 하지 못해 비록 까막눈으로 평생 땅만을 일구며 가난하게 살았어도 그 아버지는 함께 고생한 형제간의 우애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적어도 그분에게는 퇴색되지 않은 사람 본연의 색깔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분보다 많이 비우고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떠한 모습인가. 더 참되고 더 아름다운 것에 근접해 있어야 마땅하거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많은 것을 지닌 사람일수록 더 치열하게 세속적 가치에 몰두해 있는 듯 하다. 여유가 생겨 보다 격상된 삶을 살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이다. 아들에게 맞고 온 그 아버지 역시 남보다 더 성공해야 한다는 오기 어린 욕심을 아들에게 부과하다 이토록 비참한 상태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오늘은 막막하다 못해 우울하기까지 하다. 혹시 무슨 묘책이 있나 해서 도움을 청하러 온 이들 앞에서 마냥 나락으로 떨어지는 심정이기만 했으니 말이다.

출처 : 가톨릭대 상담심리 대학원 원우회
글쓴이 : 장성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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