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병리와 상담자 과업
장성숙/ 가톨릭대학교, 극동상담심리연구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늘 있었겠지만, 극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최근에 부쩍 늘었다. 특히 벼랑 끝에서 씨름하는 부모와 중고등학생인 자녀들이 무수히 많다. 경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누구보다 푸릇푸릇해야 할 청소년들이 부모를 폭행하는가 하면 폐인처럼 무기력하게 널 부러져 있거나 아예 자살을 시도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땅의 부모들은 사교육 열풍에 휘말렸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모든 것을 자녀교육에 쏟아 붓는다. 그렇기 때문인지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자녀들을 그런대로 봐주지를 못한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해야 할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오히려 가장 팽팽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까? 우선적으로는 욕심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과도한 경쟁 때문이지 싶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 경쟁에 둘러싸여 있다. 이제 누구든 남보다 더 많은 지식이나 기술을 갖추고자 안간힘을 쓴다. 이에 더하여 연고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좀 더 나은 학연을 만들고자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는다. 명문학교를 나와야 살아가기가 한결 수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의 결과는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신통치가 않다. 설사 우위를 점했다 할지라도 그들은 마치 정기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푸석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자기 나름의 보람이나 재미를 구축할 사이 없이 획일화된 목표만을 향해 질주한 결과다. 그나마 승자의 대열에 끼이기도 못한 자들은 각양각색으로 뒤틀려가고 있다. 한마디로 미처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지만 특히, 적응적인 삶을 도모하는 우리 상담자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화두다. 그렇다고 상담자들이 철학자나 사회학자처럼 거시적인 관점에서 경쟁으로 점철된 우리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어렵다. 상담에서는 사회개혁이 아니라 개인의 적응에 초점을 두며, 이러한 적응은 본질상 사회와의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 거대한 사회의 흐름을 도외시 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경쟁에서 선두주자가 되도록 지지하는 것도 곤란하다.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쨌든 진을 다 빼야 하기 때문에 그것 또한 바람직하지가 않다. 물론 당사자의 선택이 중요하겠지만, 어떤 방향에서든 상담자는 개개인에게 활력을 되찾아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환경보호단체에서 어느 지역의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며 격렬하게 시위를 벌린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역의 주민들은 생태계 보호가 자신들의 생계보다 우선하냐며 일자리를 달라고 아우성쳤다. 이렇게 대결하는 양측을 바라보며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 적이 있다. 일자리 창출은 어느 정도의 환경 파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개인 간의 조율 즉, 적응을 도모하는 위치에 있는 상담자는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사회적 흐름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경쟁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은 자기가 남보다 낫다고 여길 때 살맛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경쟁 속에서 나동그라지지 않도록 받혀주는 그 무엇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진되거나 매몰되어 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살맛을 느낄 수 있을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최소한의 자존감은 유지된다. 마지막 보루인 자존심만 지켜지면 좌절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목표를 앞세워 열등하다고 짓밟아대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과열된 경쟁사회, 이 속에서 우리 상담자에게 부과된 과업은 다른 무엇보다 저마다 지니고 있는 각자의 고유성을 발굴해내는 일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경쟁의 품목을 다양화시켜 내는 일이다. 그렇게 해야 각자가 자기만의 품목에서 우월감을 느껴 자존감을 유지하게 된다. 자기만의 강점을 찾아주기, 그것을 개발하기, 그래서 나름대로의 재미나 보람을 만들기…. 바로 이런 작업들이 가장 절실하고 필요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각도에서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각자마다의 장기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똑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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