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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 부부가 사는 법 -`큰산에 기대어` 에서-

반찬이 2009. 5. 3. 21:34

 

우리 부부가 사는 법

-심연회원-


 

   부부가 살아가는 방법이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남남이 만나서 일생을 함께한다는 것은 살아보니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라. 옛말이 이르기를 부부란 백년손님 같다고 했다. 혼자만 잘한다고 화합이 되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노력과 사랑으로 가능한 것이 부부의 조화가 아닌가 싶다.

 

  부부사이에는 촌수가 없다는 것도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보기 때문일 것이라 여긴다. 옛말에 부부란 잘 살면 본전이며 잘못되면 지옥이란 말이 있다. 살면서 느끼는 것은 부부문제에 관하여 왕도가 없다는 것이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 부부관계가 이렇게 편안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요즘은 너무나 평온하고 행복하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내가 상담공부를 하면서 철쭉님을 뵐 수 있었던 덕택이다. 물론 누구나 거쳐가는 통과의례인 직면의 아찔함이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분을 뵈면서 나의 고지식한 틀이 깨지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울 수 있었고, 생각이 바뀔 수 있었다. 어느 덧 결혼한 지 20년째. 눈썹 치켜뜨며 살다보면 별것도 아닌데, 내일이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처럼 미친 듯 살았지 싶다.

 

  어느 집이고 간에 그러하겠지만, 20년을 살다 보니 스스로가 황야에 무법자가 됐다. 우리도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사는 동안 제법 부딪히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토닥토닥 싸우면서 사는 것도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때로는 숯덩이가 불에 타듯, 내 가슴은 동짓달 팥죽 끓듯 부글부글 끓는 날이 한 평생 살면서 어디 한 두 번이던가? 우울하고 허망한 가슴 달랠 길이 없어 찬물 한 바가지 벌떡벌떡 퍼 마시고나면, 어제도 오늘 같고, 오늘도 어제 같은 마음인지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함께 살아야 하니 순풍에 배 떠나가듯 쉬운 일은 아니더라. 서로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다르고 각자가 경험하고 익숙한 습관대로 떠들다 보면 울고 웃는 게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하던 시절, 남편은 내게 편지를 많이 했다.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외롭고 혼란스럽다’는 둥, ‘점심밥을 굶으면서 베에토벤의 운명을 듣다가 그만 울고 말았다’라는 남편의 표현들이 날 꼬드기기 위한 밑밥인 줄도 이젠 알겠다. 그래도 모래알 같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나였을까? 별 볼일 없는 나를 선택한 남편의 부드럽고 섬세한 성정에 마음이 동해서 이판사판으로 사랑을 했었다. 그리곤 ‘그래 이정도 사람이라면 세상을 함께 해도 후회 따위는 않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결혼을 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해서 살아보니 심성은 나쁘지 않지만, 남편은 도무지 남을 배려할 줄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었다. 고기를 구워 먹을라치면 아내를 위해 고기를 구워주기는커녕, 구워준 고기를 열심히 먹고는 자기배가 부르다며 ‘이제 그만 구워’ 라고 한다. 상대가 제대로 먹었는지, 상황이 어떠한지, 남을 배려하는 보살핌은 안중에도 없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가 잘못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갖은 짜증과 인상을 쓰며 내 탓이 되기도 한다. 아이고! 내 신세가 왜 이렇게 꼬이는가. 한탄도 해봐도 아무 소용없는 짓이더라.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예쁜 새끼는 아장거리고 내가 선택한 일에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남편을 보듬고 살겠다는 강열한 오기가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위로 4명의 누나와 형 하나를 두고, 몸이 약한 막내로 태어났다. 그러다보니 늘 애지중지 보호받으며 자란 탓에 남의 입장을 헤아릴 줄도 모르고 남을 생각하는 방법도 몰랐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나의 서운한 감정이 간장이고 된장이고 간에, 몸이 약한 남편을 위해 봉사 아닌 희생해야겠다는 각오로 나의 꿈 많은 인생을 작심하고 묻어버렸다. 의사남편 만나서 팔자가 상팔자라는 친구들의 입방아 소리를 뒤로하고, 사랑으로 헌신하느라 심청이 보다 더 놓은 혈압으로 살아왔음을 우리 남편은 아시려나.

 

  사람은 누구나 어릴 때 지지와 보호 속에서만 성장하면 자기중심적인 습관을 갖기 쉬우므로 한편으로는 그런 남편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런 반면, 나는 어려서부터 자립적으로 살아온 터라 남의 눈치 살피며 소심하고, 그래서 스스로의 주장이나 표현도 억누르고 가슴에 묻어놓는 성격이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까탈을 부리는 남편의 성격, 그리고 마음약한 나의 성격이 서로 맞물려 시간이 갈수록 나는 남편에게 상처받는 일이 많아졌고 답답하고 우울한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 차에 집단상담을 참여했다.


   효부상을 받아도 서운타할 나에게 철쭉님은 아니꼬운 듯 자기표현을 못하고 늘 부당한 상황을 감수하는 나를 탓하셨다. 나에게 일언지하에 그게 무슨 대단한 것처럼 논공행상의 열변으로 수다를 떨고 있다는 것이다. 한 순간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남편의 그런 모습들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내가 계속 허용을 하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고, 이는 서로의 관계를 일그러지게 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심기가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남편을 허용한 이유가 도대체 뭐요?” 정말 말문이 막히고 환장할 지경이다. 선생님의 말씀은 계속되었다. “설령 남편이 지지와 보호 속에서만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함께하는 대상이 현명하고 지혜롭다면 모두가 변하고 아름다운 것이오. 사람의 관계란 반드시 상대적이란 것을 모르오?” 하시며 선을 그으신다. “굴욕적인 자존심을 참고 견디며 수용하는 이런 당신의 못난 성향은, 남편과 당신 모두에게 해가 될 뿐이오. 그러한 남편이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당신은 동반자로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한번 양심에 물어보시오.” 생각지도 못한 철쭉님의 질타에 억울한 감정을 호소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날더러 운수가 대통하여 좋은 남편 만났고, 남편은 재수가 없어 나 같은 부인을 만났다는, 당시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모욕적인 힐난도 서슴지 않으신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의 참담한 심정이란 표현 할 길이 없었다.

 

 “그래, 소심하게 남의 눈치나 살피면서 살아온 것이 자랑이라고 떠들고 있냐.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그렇게 굼벵이처럼 살아라” 하시며 혹독하게 내 등을 떠미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곰곰이 생각하니 철쭉님의 비난을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었다.

 

  종내는 나의 숨은 오기가 발동하였다.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무지막지 하시던 철쭉님이 집단을 마친 뒤 어느 날 불쑥 전화를 하셔서는 나에게 남편이 변해야 천하를 얻는다며, 남편에게 최선을 다 하여 짧은 인간사를 재미나게 사는 것이 바로 선택받는 삶의 즐거움이라 하신다.

 

  사람이 하는 일에 노력하여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빨리되고 늦게 된다는 차이 뿐이며, 노력 없이 대가만 바라는 사람들의 주특기인 핑계나 변명은 청산하라는 것이다. 나는 점차 내 감정을 남편에게 표현하려고 애쓰고 또 애썼다. 이렇게 작심한 나의 연습과 노력이 계속되자, 남편도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마치 자신의 까칠한 고집이 내가 허용했기 때문에 유지되었던 습성임을 몸소 입증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남편의 직업 특성상 하루에도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터라 남편의 변화는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전해져왔다. 원장님께서 좋은 일 있으신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둥 요즘 왜 이렇게 잘 웃으시냐, 원래 그렇게 유머있으신 분인지 몰랐다는 둥 한 동안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남편에 대한 인사를 듣는 게 당연한 일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쑥스럽게 그런 인사를 들을 때 기분은 참으로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나의 감정조차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하고는 남편을 자기 중심적인 사람으로 단정하고 서운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니... 나 자신은 변하기를 두려워하면서 남편이 변하기를 바랐다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두 부부사이에 옥신각신할 일이 벌어졌다. 남편은 본래 허투루 돈을 쓰는 법 없이 검소하며 성품자체가 소박한 사람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의사선생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소형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나 역시 성장시절부터 근검절약이 몸에 베여 있었고 그래서 우리 두 부부는 돈은 꼭 필요한 때에 알맞게 써야 한다는 데 항상 의견일치를 보아 왔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큰 차를 갖고 싶다고 여기저기 승용차 시장을 알아보며 슬그머니 나의 의중을 떠보는 눈치였다. 남편은 말하기를, 나이도 중년으로 치닫고 의사회에서 주체적인 역할도 있으며, 주변의 친구들도 모두가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단다.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차는 이동수단으로 충분하지 필요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사치나 허영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렸다. 그러자 남편은 차를 사고 싶으면서도 나를 적절히 설득시키지 못하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고민을 철쭉님께 여쭈며 아무래도 나의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한참이나 듣고 계시던 철쭉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자동차는 고급차일수록 안전하다고, 자동차는 체면이나 멋으로 남에게 내보이기 위한 것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다면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적인 도구라 꼭 그렇게만 치부할 수는 없다고 하신다. 가능한 한 안전성을 고려하는 것이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하신다. 또한 남편이 사회생활을 하는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맞는 매무새와 품위를 지켜는 것도 자기관리에 속하는 일이란다.


   나로 인해 남편이 다듬어지고,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가 가꾸어진다면 그것을 두고 바로 부창부수라 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부부가 가꾸고 다듬고 만들어 간다는 본뜻이 바로 이러한 것이란다. 철쭉님께서는 “사람은 스스로가 선택한 일에는 죽든 살든 책임지는 멋이 있어야 한다” 하시며 부부가 아름답고 즐겁게 사는 것도 책임지는 과업이니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는 동반자가 되라고 당부하신다. 나는 내 경험만을 통한 협소하고 단편적 기준을 벗어나 남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었고 남편은 아내가 왜 이리 갑자기 변했는지 어리둥절해 했다. 그리고 나서부터 남편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과 입장을 이해해주려고 용쓰는 나에 대해 고마워했다.

 

  요즘 우리 부부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속에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즐거움을 영원히 공유하며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유로움을 발견하게 해 주신 철쭉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제 나는 옥신각신 일이 생길 때 마다 마음속 장롱에 깊이 새겨 둔 철쭉님의 말씀을 펼쳐 보고 또 펼쳐볼 것이다.

 

‘못난 남편이 못난 부인을 만들고, 못난 부인이 못난 남편을 만든다.’


 “선생님, 부창부수하는 우리 부부를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Music - Musings




출처 : 가톨릭대 상담심리 대학원 원우회
글쓴이 : 장성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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