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논의를 마치며
오늘날 인간은 유전자를 조작하여 생물종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생물종을 만들어내는 일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생명에 관한 논의는 유전자와 관련한 것이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에 대한 논의도 유전자와 관련한 논의가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생명체와 유전자의 관계에 대해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생명은 유전자의 구조에 기초하여 주체가 대상과 관계를 맺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생명현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까닭은 유전자의 구조에 따라 관계맺음의 주체가 성격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맺음의 양상을 좇아서 주체를 구분함으로써 생명현상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생명을 분자결합에 따른 유전자 구조로써 이해하는 것은 생명현상을 물질의 법칙으로 환원하여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생명현상을물리적 단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이해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생명현상은 ‘생명체’라는 전체적 구조를 바탕으로 주체가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물리적 단위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생명적 관계맺음으로 나타난다. 이로 인해 ‘생명체’라는 전체적 구조와 연결되어 있는 주체를 물질의 법칙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인간이 생명체라는 전체적 구조를 바탕으로 생명현상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이해하기 이전까지는 물질의 법칙이 형명형상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연역해 내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인간이 생명과 물질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생명현상이라는 현실태를 전제로 물질의 작용 방식을 경험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심을 이룬다. 예를 들어 분자들이 결합하여 유전자를 형성하지만 특정한 유전자가 생명현상으로 드러나 어떠한 성격을 드러내기 이전에는 그것이 생명체 속에서 향하는 역할을 분자 결합으로부터 연역하는 것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생명현상 속에서 유전자를 구성하는 분자결합은 ‘생명체’라는 전체적 구조에 기초할 때에만 생명적 관계맺음으로 드러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생명체’에 대한 이해는 유전자의 차원보다 생명적 관계맺음의 차원에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한편 인간이 생명으로서 대상과 관계를 맺는 것은 주체의 성격에 따라 대사 감각 지각 생각으로 구분될 수 있다. 대사는 몸에서 감각하는 몸이 분화되어 나오고, 감각하는 몸에서 지각하는 마음이 분화되어 나오고, 지각하는 마음에서 생각하는 마음이 분화되어 나와서 하나의 전체적 구조 속에 독자적인 속성들로 존재한다. 대사하는 몽, 감각하는 몸, 지각하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은 앞의 것을 기반으로 뒤의 것이 존재하는 분화와 의존에 따른 중층적 관계에 있다. 이런 까닭에 생각하는 마음이 아무리 독자성이 강하다고 할지라도 지각하는 마음에 의존하지 않으면 성립이 불가능하다. 지각하는 마음이 감각하는 몸에 의존하는 것, 감각하는 몸에 의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몸과 마음을 이분법에 기초하여 설명해 온 것은 대사하는 몸과 생각하는 마음을 극단적으로 대비하는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사하는 몸을 땅이나 흙에서 근거를 구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하늘이나 신성에서 근거를 구하여 몸과 마음의 근거를 이원적으로 분리해 왔다. 이로써 인간이 감각하는 몸과 지각하는 마음 이 수행하는 매개적 역할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게 되어 몸과 마음이 연결될 수 있는 자연스런 고리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간이 생명체계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데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인간과 그렇지 못한 다른 생명체를 연결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되었다.
몸과 마음의 이분법은 생각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인간의 독자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체계의 전체적 분화과정에서 볼 수 있는 생명적 관계맺음의 다양성과 부합하지 않는다. 생명의 세계에는 아메바처럼 대사의 단계에 머무는 것부터 인간처럼 생각의 단계에 이른 것까지 갖가지 종류들이 생명적 관계맺음의 연속적 분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도 수정을 통해 생명이 시작되는 단계에서는 오로지 대사하는 몸으로 존재할 뿐이다. 인간의 성장과 발달과정을 통해서 감각하는 몸, 지각하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이 독자적 영역으로 분화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세상살이는 유전자의 차원에서 대상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차원에서 대상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생활 속애서 대상과 관계맺음은 주로 마음에서 욕심을 형성하고 실현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다양한 욕심, 즉 식욕 ․ 성욕 ․ 탐욕 ․ 정욕 ․ 애욕 ․ 권력욕 등을 형성하고 실현한다. 그러데 학자들이 이러한 욕심을 학문의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학자들은 그것을 생활 이전의 차원으로 환원하여서 본능 ․ 필요 ․ 충동 등과 같은 개념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이로 인해 생활의 차원에서 볼 수 있는 욕심들과 그것에 기초한 욕망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인간이 생활의 차원에서 형성하고 실현하는 욕심은 관계를 맺는 대상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즉, 인간이 물질로 이해된 대상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물질욕, 인간으로 이해된 대상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인륜욕, 초월적 존재로 이해된 대상과 관계를 맺고자하는 초월욕으로 구분될 수 있다. 또한 인륜욕은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목적에 따라서 다시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즉, 인간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친애욕,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맺고자 하는 권력욕, 성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성애욕으로 구분될 수 있다. 또한 친애욕 ․ 권력욕 ․ 성애욕은 다시 관계의 속성에 따라 여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즉, 친애욕은 혈연에 기초한 혈친애와 교제에 기초한 상친애로 구분될 수 있고, 권력욕은 자발에 기초한 권위욕과 강제에 기초한 권세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성애욕은 이성에 기초한 이성애와 동성에 기초한 동성애로 구분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욕심들에 대해 체계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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