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종교, 이단 조심/안티-나주성모상(이단)

나주 교주 윤홍선의 괴변과 그 측근들의 변태적인 행위

반찬이 2010. 6. 24. 13:42

광주대교구 홈페이지에서...

 

 

윤홍선의 괴변과 그 측근들의 변태적인 행위

 

윤홍선이 세상을 향해 지껄인 온갖 잡탕 언어 중 오류와 괴변, 몽상일기나 요행수를 바라는 꿈도 야무진 뜬구름식의 논리에 대해 고찰해보고 그 측근들 중 희한한 인간들에 대해 각종 자료를 인용해서 여러분들에게 명명백백하게 밝혀보고자 하오니 절대 참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주님 성모님 찬미찬송에 매진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해 봅니다. “필자 등대지기 올림.”

 

결론부터 밝혀두고자 합니다.

성모님을 빙자한 윤홍선은 “불순명의 대명사”이고, “교만의 극치”이며, 나주만을 사랑하는 윤홍선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마터면 화순을 사랑하는 윤홍선이 될 뻔했는데 어째 일이 빌빌 꼬여서 나주의 잡신이 되었는지 정중히 되묻고 싶습니다. 성모님은 모든 사제를 사랑하시는데 “나주의 성모님은 나주를 찬성하는 사제만을 사랑하며, 나주를 사랑하지 않은 사제는 혐오의 대상, 증오의 대상”이라는게 말이나 되는 것인지요. 성모님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시지만 윤홍선교주는 “자신의 영광과 신격화에만 혈안”이고 성모님은 청빈함에도 기꺼워하시지“윤홍선교주는 부귀영화와 천상에 반열에 들기를 즐기시는 악마와 같은재”라는 사실입니다. 아마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옥야(玉耶)와도 같은 인물이 윤홍선이라면 이해가 빠르실 것 같습니다.

 

1985년을 전후하여 나주 메시지 속에서 사제는 하해와 같은 사랑을 받는 존재,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존재로 표현됩니다. 누구에게요? 그야 하느님이시고 성모님이시지요. 그런데 윤홍선교주의 뜻대로 안 되는 94년 10월 이후는 책망의 대상, 저주의 대상이라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메시지 말씀을 일례로 들자면(● 공지문 발표전, ○ 발표 후)

● 1994. 8. 15. “사랑하는 내 사제들아!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사제들아! 너희는 나의 아기들이다. 아기들은 엄마의 목소리를 잘 알아듣고 기쁘게 따른다. 피 흘리는 이 엄마의 성심의 상처에 사랑의 향액을 발라주어 위로해 주기 바란다.”

 

○ 1994. 11. 24. "이렇게 많은 사제들이 불성실 속에서 미사집전을 하기에... 세계적으로 나의 사제들에게서조차 오류가 선언되어 퍼져가고... 너희를 높은 성성으로 이끌어 입으로는 쌍날의 칼로써 오류의 가면을 벗기고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까지도 인준 받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내 사랑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많은 거짓말까지 합하여 독성죄를 짓고 있으니 그들을 따르는 양들은 어찌 되겠느냐..."

 

이는 수많은 괴변 중에 변화된 몽상일기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이 외에도 나주메시지 중에 윤홍선교주의 말을 듣지 않는 사제는 오류의 존재이고 이단의 집단에 속한 사제들로 묘사되고 협박대상이며 독설을 들어 마땅한 파렴치한 존재라고 묘사되어 있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에 참으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교황청에 낙인찍혀 범법자가 될 번하신 최창무 (전)교구장님.

2000년 11월 30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8대 교구장에 최창무안드레아 대주님께서 착좌하시게 됩니다. 2001년 5월 5일 최대주교님의 1차 공지문이 발표되고 그로부터 4년 후인 2005년 5월 5일 2차 공지문이 발표가 됩니다.(이 후에는 교구의 입장문이 2차에 걸쳐서 대주교님의 명의가 아닌 교구명의로 발표하게 됨.)

 

런데 나주의 병자들은 존경하올 최창무안드레아 대주교님을 교황청에 ’05년 11월 22일 등 2차에 걸쳐 “이단(異端)이라는 명목아래 형사고발”을 하게 됩니다. 죄목은 이단이지만 그 실체는 자신들이 만행을 저지르는데 동조하지 않았다고 공갈협박죄나 불경죄로 고발을 하게 된듯한데 천주교 역사상 평신도 집단이 장상이 괴 논리에 순명하지 않는다고 교황청에 엄벌을 요구한 사건은 전무후무한 아이러니한 희대의 해프닝이 아닌가. 조소(嘲笑)를 금할 수없는 정신병자적인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론은 교황청은 나주의 이런 돌출행동을 간파하고 피고발인은 물론 고발인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그 사본을 최대주교님께 우송되었고 광주교구로부터 이 사건을 전해들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전 주교님들이 공분(公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로써 율리아 자매와 열성분자들은 무뢰한(無賴漢) 내지 패륜아(悖倫兒)라는 인상을 남긴 채 한국 가톨릭교회의 전 교구장과 영향력 있는 사제들로부터 철저한 고립(孤立)을 자초함은 물론 자멸(自滅)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때부터 발악은 극에 달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결국 이러한 좌충수를 둔 덕분에 웃음거리로 전락한 나주성모님인 윤홍선과 김동명이라는 작자 등은 오기가 발동하고 정신착란증이 크게 발작하여 최후의 발악을 하게 된 작금의 현실에 직면하게 된 단초를 제공했다 할 것입니다.

 

윤홍선이 자행하고 있는 기인적인 행위들

신앙의 본질은 믿음이며 생명입니다. 그 믿음은 강요에 의해서나 기망에 의해서 삶에 접목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런데 윤홍선의 행태를 보거나 그들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우상화, 교주화, 신격화의 3단계로 나누어진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어느 정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우상화, 교주화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지금은 신격화하는 과정 중”이라고 여겨집니다.

 

주된 이유는 나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성모님이 아닌 윤홍선교친히 행하는 사기이기 때문이고 입으로 조잘대는 괴변, 이른바 메시지 말씀도 우리가 존경하고 흠숭하는 성모님이 아닌 “윤홍선이 여타 메시지나 성서를 인용하거나 도용한 말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윤홍선의 우상화, 교주화, 신격화의 저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소위 나주 성모님 메시지라는 몽상일기가 주축이라는 것이며, 자칭 나주 성모님메시지의 주된 목적격은 “나주의 인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윤홍선이 왜 사기꾼이고 선동가이며, 악마인가는 그가 입으로 내 뱉은 저질 악담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메시지 중 ’10. 3. 31일 내용을 살펴보면 “...내 아들 예수와 이 엄마를 닮고자 피나는 노력을 다하는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딸아!” 먼저 여타 메시지를 인용하거나 도용한 죄는 둘째치더라도 돼먹지 않게 자신을 예수님과 동격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천주신앙을 빙자한 가장 위험한 독성죄에 해당된다 하겠습니다.

 

교구장인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님은 이단이고 대주교님을 고발한 것은 지극히 잘한 일이라는 자찬하고 있는 윤교주의 허세에 대해 기술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윤홍선의 몽상일기인 자칭 메시지와 그들이 주장하는 여러 자료를 보면 윤홍선을 마치 예수님과 동일 시 하고 있으며,


두 번째,
적법절차에 의해 검증되어 인증된 각종 메시지 말씀 등이 도용되거나 윤홍선의 입맛에 맞게 수 없이 짜깁기된 사례가 이미 밝혀졌으며,


세 번째,
윤홍선 마음대로 교구장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상을 이단으로 매도하고 또한 교황청에 형사고발을 하였다는 사실은 정신 나간 성모님일 수밖에 없다는 데에서 심히 우려된다 할 것입니다. 그 존재가 윤홍선입니다.


네 번째,
교구는 윤홍선의 퇴행적인 행보에 대해 지적하고 바른 신앙을 갖길 권고 했으나 오히려 교구장님을 악마나 사탄으로 매도하는 우(愚)를 범하고 자가당착에 빠져 회개는 물론 교만의 극치를 보이는 현실이 우려스럽기 이를 데 없다 하겠습니다.


다섯 번째,
윤홍선은 자칭 교주화되어 있고 존경과 흠숭의 대상에 놓여 있다는 것이고 현재는 나주의 추종자들에 의해 천상모후의 반열인 “엄마” 또는 “어머니”로 지칭되는 현실에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섯 번째,
윤홍선 자신의 과오나 오류를 희석시키기 위해 자화자찬과 미담, 치적을 과대포장하는 괴변을 즐겨한다는 사실이고, 어리석은 추종자들은 그 자체를 가감 없이 맹신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현상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 윤홍선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현상이기도 합니다.


일곱 번째,
천주교 특히 한국천주교는 타락의 온상이고 악마나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제들로 넘쳐난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주대교구 사제들이 그 주된 타깃이고 그중에서도 나주를 싫어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그 중요대상이라고 합니다. 또한 나주만이 선명하고 윤홍선이 그 대안이라는 그들의 논리에 박장대소를 짓다 못해 헛웃음이 저절로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덟 번째, 또한 윤홍선의 사주에 의해 그 추종자들은 나주 순례자들에게 사제대다수 성직자들을 증오하도록 조종하고 있으며, 윤홍선은 마치 성녀의 반열놓인 인물로 홍보, 묘사시켜 사기행각에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녀(聖女)라기 보다는 타락한 음녀(淫女)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홉 번째, 한국천주교를 부정하게 만드는 윤홍선에게 올바른 신앙을 기대하는자체가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교황청에만 순명하라. 나주를 반대하는 교구에는 순명할 필요가 없다.”라는 논리는 “내가 곳 신이고 성녀이니 내말만을 듣고 실천하라”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지하고 폐쇄적인 사고의 소유자인가? 아니 무지하다 못해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독선과 아집의 단세포적인 존재라 할 것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윤홍선에게 적합한 상징적인 비유법이라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열 번째,
말로는 예수님, 성모님이라 지껄이지만 그 실체는 텅 비어있고 단지 있다면 과욕과 허세, 자기도취, 자가당착, 허황된 현실만을 쫒고 설파한다는 사실이며, 이 모두는 자신의 영달과 안위 신격화에 최후의 목적이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추종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맹신한다는 것이고, 머지않아 그 실체가 밝혀진 후에 일어날 혼란에 대해 필자 역시 두렵기까지 한 현실입니다.

 

현시점에서 광주대교구의 책임성 소재

임교구장이신 최창무안드레아 대주교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나주의 정신병자에 의해 교황청에 형사고발을 당하셨다 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정신과 사고를 겸비한 천주교의 본산인 교황청은 일언지하에 묵살해버렸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교구의 교도권이 적법했다는 논리일 것이고 쓸데없는 논리에 신경쓰기 싫다는 교황청의 단호함도 내재되어 있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들의 논리에 언제까지 소극적인 행태로 일관하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현실이 우려스럽기까지 하다는 진중한 제언을 해봅니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구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어떠한 용단을 내려야 할까요?

그것은 단호한 척결입니다. 순간의 고통 때문에 뼛속에 들어있는 암 덩어리가 다른 곳으로 전이되게 놔둬서는 안 됩니다. 더 큰 불행의 씨앗을 키워 독초가 뿌리내리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아마 저들은 존경하올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님도 교황청에 고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존경하올 대주교님을 이단이라 매도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사탄이나 마귀로 지칭할 것은 두 말할 나위없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교구의 사제들이 저들의 구린내 나는 둥이에서 회자되고 대포 집 안주 감으로 질겅질겅 씹어대는 현실이 더욱더 발전될 것이고 더 악랄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단언하는 바입니다.

 

결 론

나주의 어리석은 이들의 지향점은 단하나입니다. 그것은 “인준”입니다. 나주의 인준은 거짓이 승리하는 것이고 기만이 승리는 하는 것입니다. 비 양심이 승리하는 것이고 사이비 교주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상화, 교주화는 이미 과거의 얘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윤홍선이 추구하는 결실의 단계인 신격화에 골몰하고 그러한 논리에는 걸림돌도 있을 수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어지럽게 했던 과거의 살인조직 “막가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함이라 단언합니다.

저들은 죽기 살기로 덤비는데 소수인 저들의 논리에 교구가 뒷짐 지고 있는 사이에 다수의 선량한 신자들은 병들어가고 있음은 알아야 합
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이제는 나서서 전면적인 척결을 단행해야 합니다. 윤홍선의 기행적인 행보에 철퇴를 가해야하고 신격화놀음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광주대교구는 저들이 참 신앙 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과 애정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교구가 신자들과 함께 한다는 공동체 정신이며 참 모습이라 감히 주장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