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효과적인 강의법

강의평가항목

반찬이 2011. 8. 23. 16:05

"시간을 가장 서투르게 쓰는 자가 그것이 짧다고 불평한다." -- J. 라브뤼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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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평가 항목 2. 교수님께서는 강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셨다.

교수님께서 강의실에 2~3분 늦게 들어오셨습니다. 칠판을 지우고, OHP 기구를 준비시키고, 책가방에서 강의 노트와 프린트물을 꺼내서 정돈하는데 다시 2~3분 걸렸습니다. 출석을 부르고 드디어 "오늘 강의는 무엇 무엇에 대해서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강의를 시작하실 때는 시간이 이미 10분이나 허비되었습니다. 학생들은 교수님께서 의례 10분 정도 늦게 강의를 시작하시는 점을 고려했는지 다음 시간부터 강의실을 아예 10분이나 늦게 들어오는 지각생들도 제법 되었습니다. 지각생들이 빈자리를 찾아 비좁은 강의실을 이리저리 헤집고 들어 올 때마다 삐꺽 삐꺽 책상 걸상 움직이는 소리가 나고 학생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잡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강의를 계속하려고 애쓰지만 지각생이 들어올 적마다 교수님의 말소리가 순간적으로 머뭇거려집니다. 강의실이 차분해지고 강의가정상 궤도에 올라갈 때까지는 적어도 15분이 경과되었습니다.

제가 여러 신임교수님들의 강의를 비디오를 촬영해서 분석해본 결과 위에 묘사된 사례가 결코 희귀하지는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한 시간 강의에 첫 20분에 나온 내용을 가장 오래 기억한다는 연구결과를 볼 때 첫 15분을 무의미하게 쓰거나 낭비하는 것처럼 교수님의 강의 효과를 낮추는 것도 없겠지요.

이렇다해서 강의시간 내내 강의 내용으로 가득 채우라는 뜻은 아닙니다. 교수님께서 강의를 일초의 빈틈이 없도록 진행했어도 강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예는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칠판에 가득 써내려 가는 경우입니다. 칠판 내용 따라 적기는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가장 지겨워하는 행동 중에 하나입니다. 따라 적자니 따분하고 안 적자니 (따로 할 일 없어) 어정쩡하니 말입니다. 강의 시간은 충실하게 보냈지만 효력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한 예로 강의 내용이 너무 빽빽하게 많은데다가 그 내용이 꼬리를 물고 줄줄이전개되는 상황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학생들은 어떤 내용이 주요 개념인지 소개념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그냥 모든 것을 같은 차원의 내용으로 무분별하게 취급하게 됩니다. 마치 사막을 헤매는 기분일 것입니다. 사방팔방 모래알만 잔뜩 쌓여 있고 어디가 어딘지 영 구분이 안 되지 않습니까. 열심히 걷기 걸었는데 도달한 곳이 없듯이 수업 시간에 무언가 열심히 배웠다는 생각은 들지만 효과는 없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주요 내용(큰길)을 전개해 나가다가 부차적인 내용(샛길)으로 장시간 빠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주요 내용을 부각하거나 추가 설명하기 위해 잠깐 잠깐 샛길로 빠지는 것은 필요하지만 한참 동안 빠져버리면 다시 주요 내용으로 되돌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다시 큰길로 되돌아서기 전에 수업시간이 끝나버리면 학생들은 마치 막다른 골목길에서 길 잃은 기분이 들것입니다.

"수업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의 기준은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가 아닙니다. 교수님의 수업 진행으로 인하여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무엇을 했는가 입니다. 학생들이 얼마나 확실하게 강의의 목적을 알고, 내용의 부분적 관계를 파악하고, 주의력과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입니다.

<잔소리 코너>

* "강의는 지식이 교수나 학생의 머리를 거치지 않고 교수님의 노트에서 학생의 노트로 곧바로 이동하는 행위다."라는 지나친 판서를 비꼬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을 효과적으로 쓰시려면 일단 판서를 최소한으로 줄여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