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ssion/스크랩자료

[스크랩] 노후대책 사례1-와인전문가

반찬이 2006. 11. 3. 09:51
특집 2005.11.21. 1880호
“와인은 내 인생의 동반자”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 | 전두환 조흥은행 카드사업부장
"좋은 취미는 노후를 위한 최고의 친구"...단독주택 마련, 와인과 함께하는 제2인생 준비

▲ 전두환 부장이 단골 와인바에서 와인 고르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선배나 친구들이 은퇴 후에 무료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똘똘한 취미 하나 있으면 전혀 외롭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조흥은행 전두환(52) 카드사업부장은 매달 은행 VIP고객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의를 펼치는 ‘와인 전도사’다. 그에게 와인을 배우는 사람은 연간 500명이 넘는다. 중년 고객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그는 “노후(老後)에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와인을 시작해 보라”는 조언을 꼭 곁들인다. 현역에 있는 친구나 후배를 만나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와인을 취미로 삼아두면 제2의 인생이 두렵지 않을 것”이라며 권한다.

“다들 은퇴하기 전에 돈만 많이 모아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골프나 바둑처럼 복잡하고 어려워서 금방 질리지 않는 취미가 필요합니다. 와인은 종류만 수백 가지가 넘기 때문에 평생 동안이라도 전부 마시지 못합니다. 그래서 장기(長期) 취미로 삼을 만한 거죠.”

전 부장이 와인에 눈을 뜨게 된 건, 1990년 룩셈부르크 조흥은행 부사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당시만 해도 룩셈부르크엔 한국식당은커녕 한국사람조차 자주 만날 수 없는 외딴곳이었다. 와인은 그의 생활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한다. “아내랑 간만에 외식하러 나가면 웨이터가 ‘음료는 뭘 하겠느냐’고 묻더군요. 그런데 맥주랑 물이랑 와인이 전부 값이 똑같은 겁니다. 물을 돈주고 마신다는 게 도저히 정서에 안 맞았죠. 어차피 돈을 내야 한다면 와인이 낫겠다 싶었죠.”

당시 살던 곳이 와이너리(와인을 만드는 농가)와 가까워서 와인을 접할 기회도 많았다. 그는 스페인, 독일 등 이웃 나라를 여행할 때도 와이너리만 찾아다녔다. 한번은 큰맘 먹고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에서 열리는 ‘와인 주말농장 체험’에 참여해 와인 양조 과정을 직접 보고 배우기도 했다. “현지 와인 애호가들을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와인을 매개로 하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누구와도 금방 친구가 된다는 걸 직접 체험했죠.”

그는 밤잠을 아껴가며 독학해서 와인에 대한 지식을 넓혔다.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와인의 이름, 여운, 산도, 당도 등을 담아 ‘와인 시음 노트’를 꼼꼼히 적었는데 그런 노트가 벌써 10권이 넘는다고 한다.

전 부장은 와인을 노후대비용 취미로만 즐기지 않는다. 그는 “와인 덕분에 일과 고객을 다 얻었다”고 했다. 우선 지난해 와인 애호가를 위한 신용카드를 국내에서 첫 출시했다. 카드사업부로 발령받자 경쟁이 치열한 카드업계의 블루오션(경쟁 없는 시장) 카드로 어떤 게 있을까 고민하다가 와인에 주목했다. “지점장 시절 때 와인 마케팅으로 고객을 많이 유치했거든요. 여성 VIP 고객에게 술 마시자고 말할 순 없지만 좋은 와인 대접하고 싶다는 말은 무난하잖아요.”

▲ 와인을 시음하는 모습.
전 부장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CHB 와인클럽카드’는 출시 14개월 만에 가입고객 6만9000명, 평균 이용액 하루 1억원을 기록하면서 효자 카드로 자리잡았다. 와인 구입시 할인혜택은 물론, 각종 와인 시음회 참가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전 부장은 “와인 애호가들은 신용이 좋은 사람이 많기 때문인지, 한 달 이상 연체율이 0%에 가깝다”고 자랑했다. 보통 일반카드는 연체율이 4%대다.

지난해엔 ‘조흥은행 와인 동호회’를 만들어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은행 내에 와인 열풍이 일면서 벌써 회원 수가 70명이 넘는다고 한다. ‘와인통(通)’으로 불리는 그에게 은행지점장들은 VIP고객에게 와인 선물을 할 때마다 어떤 와인이 적당할지 자문을 구한다. “와인은 비즈니스를 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사실 진짜 프로들은 식사하면서 일 얘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주로 골프나 와인, 그림, 음악 같은 소재를 화제로 올리죠. 통상 미국인은 골프, 유럽인은 와인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더군요.”

서울 외곽의 한 아파트에서 살던 그는 지난해 ‘노후 준비 프로젝트’ 1단계를 완성했다. 도회지를 떠나 용인에 단독주택을 마련한 것이다. 나무를 키우며 사는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미리 노후준비를 하겠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와인 셀러(저장고)를 꼭 하나 만들고 싶었어요. 집 지을 때 한 삽만 더 푸면 된다고 아내를 설득했죠. 지하에 3평 정도로 만들었는데 넓지는 않지만 아끼는 와인 500병을 보관할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 와인 셀러는 전 부장에게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매일 저녁마다 와인 셀러의 온도와 습도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해보는 일이 일상이 됐다.

전 부장은 “(청계천 광교) 직장까지 출퇴근길은 좀 멀어져 고달프긴 하지만 얻는 게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오전 7시쯤 회사에 도착하면 1시간 가량 회사 지하 헬스클럽에서 땀흘리며 운동까지 한다는 것. “부서직원 60여명 중 1등으로 출근할 때가 많아요.”

열흘에 한 번꼴로 이웃이나 친구들과 함께 조촐한 와인 파티를 여는 것도 즐거움이다. “꼭 비싼 와인으로 대접할 필요는 없어요. 자기 형편에만 맞으면 되죠. 1만원짜리 와인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주위 사람과 와인을 즐기고 선물도 많이 한다는 전 부장. 그런데 와인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진 않을까. “막걸리를 마시는 거나 와인을 마시는 거나 다를 게 없어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와인을 찾을 수 있죠. 비빔밥 같은 한국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도 많으니까 꼭 레스토랑에 가서 비싼 요리와 함께 마셔야 하는 건 아닙니다.”

와인을 알기 전까지 소주와 막걸리로 스트레스를 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는 전 부장. 전 부장은 “와인을 처음 접한다면 독일계 화이트 와인을 추천해주고 싶고, 그 다음 단계로는 3세계(칠레, 호주) 와인이 무난하다”고 했다.

얼마 전 전 부장은 큰맘 먹고 70만원을 주고 2000년산 ‘샤또 팔머’(1500㎖) 와인을 한 병 샀다. “일종의 와인 재테크예요. 와인은 주식이나 복권처럼 한번에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특급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오릅니다. 샤또 팔머는 워낙 귀한 술이라 잘만 보관하면 10~15년 뒤에 값이 10배 가까이 뛸 수도 있답니다. 값이 오르면 현금화해서 1만~2만원짜리 저렴한 와인을 왕창 사서 즐길 생각이에요.” 와인을 잘 알면 취미와 재테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귀띔이다.

“플라톤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로 와인을 꼽았어요. 그만큼 와인은 역사가 오래된 특별한 음료입니다. 유럽에서 은퇴한 노인들은 노화방지에 좋다면서 와인을 약(藥)처럼 마실 정도죠.”

은퇴 이후 전 부장의 계획이 궁금해졌다. “지금 항공사 마일리지를 12만마일 정도 모아놨어요. 14만마일을 모으면 세계일주 공짜 항공권을 얻을 수 있답니다. 아내와 함께 유명 와이너리 투어를 하는 게 꿈이에요.”

이경은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diva@chosun.com)


출처 : 문화와 유머와 삶의 여유
글쓴이 : vichy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