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지에서의 터득
장성숙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 시간이 흘렀어도 좋을 때나 나쁠 때는 으레 그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두 분 모두 가신지 10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기억은 생생하다. 아마 내가 살아있는 한 잊혀질 수는 없는 그리움인가보다.
이번 여름에는 동남아 지역의 멋진 휴양지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에 참석을 했다. 빡빡한 학회일정을 마치자 일행들은 이왕 이곳까지 온 김에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바닷가의 호텔에서 배를 타고 또 다른 섬으로 갔다. 세상과는 선을 그은 듯한 그 자그마한 섬에서 물속에 얼굴을 묻고 고기들이 무리지어 노니는 것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놀았다. 시간이라는 것을 잊고 그렇게 즐기던 중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돌아가시기 전에 이곳에 와보셨으면 퍽 좋아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아련하게 피어올랐다.
바로 그 순간 작은 오빠네 아이들인 조카들의 얼굴이 스쳤다. 세수를 다 누리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이렇게 수시로 그리워할 진데, 아직은 절실히 필요로 하던 학창시기에 어머니를 놓친 조카들의 가슴은 오죽하겠나 싶은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내가 부모님을 아쉬워하는 것은 일종의 그리움 때문이겠지만, 조카들이 어머니를 기억하는 것은 슬픔을 동반한 아픔으로 일종의 한(恨)일 테니 말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마다 울컥 올라올 평생 가셔지지 않을 상처를 그들은 안고 살아간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였다.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아직 자녀들의 뒤를 봐주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올케는 이 세상을 하직하는 바로 그날 아침까지 암을 이겨내고자 마음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어도 결코 어머니를 포기할 수 없었던 조카들은 교대를 서가며 어머니를 살리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이미 기울은 뒤였다. 마침내 어머니를 놓치고 말자 그들은 그야말로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그 후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애써 지켜갔지만, 얼굴에는 원통함을 어쩌지 못해 야기되는 무표정함이 언뜻언뜻 배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고모라는 나는 주변머리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다. 상실의 아픔이 오죽하겠는가 싶어 나도 그만 막막해져 시선을 돌리고 말뿐이었다.
그런 조카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주위의 모든 것은 그냥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들이었지 생생하게 살아있는 정경은 아니었다. 그 아름다운 적도 근처의 바다 한가운데서 낙하산 같은 것을 타고 보트에 매달려 물살을 가로지르며 다른 이들과 함께 연방 웃음을 터트렸지만 마음은 조카들의 상처를 더듬고 있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느지막하게 다시 배를 타고 돌아와서는 타박타박 걸어 호텔로 들어왔다. 널찍한 로비는 휴가차 들고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홀의 저쪽에서는 가수들이 반주에 맞추어 흔들흔들 몸동작을 반복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별로 주목하는 이들이 없어서 인지 그들의 율동은 왜 그리 기계적으로 보이던지....... ‘아. 저들은 밥벌이를 위해 저렇게 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스치자, 갑자기 미끄러지듯 아득함에 떨어졌다. 삶이 지닌 복잡성에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재미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여러 가지 해양놀이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를 설명하느라 한참을 떠들었다. 그렇게 하는 순간에도 마음을 짓누른 묵직함은 여전했지만 그것은 전혀 별개였다. 뿐만 아니라 가수들에 의해 느끼진 삶의 고단함 또한 마음 한쪽에서 자리를 잡고 피어나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곳에 와서도 온전히 기쁨에만 머무르지 못하고 이것저것에 의해 마음이 다중 적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는 몰라도 왠지 순일하게 활짝 웃으며 지내는 단순성은 이미 상실했다는 찹찹함이 엄습했다. 어느새 꽤 나이가 들어 이 세상의 쓴맛 단맛이 다 내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어느덧 이 세상살이에는 전적인 행복이나 전적인 불행이 있지 않다는 것을 그 찹찹함 속에서 막연하게나마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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