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종교, 이단 조심/안티-나주성모상(이단)

소위 바티칸 소식이라는 나주 이야기 감상법(5)

반찬이 2010. 5. 21. 17:31

소위 ‘바티칸 소식’ 감상법(종합)

  이태호 로물로



그녀는 외국에서 나주 성모동산에 순례온 대주교님, 주교님, 신부님들을, 자신의 집에
상주하는 한국인 신부님들을 양 옆이나 뒤에 거느리고 중심에 서서 십자가의 길을 오
른다. 그녀는 최근 바티칸을 방문하여 주님께서 주신 성체기적을 자신을 부각(浮刻)시
키고 광주대교구장님을 비하(卑下)하는 방향으로 DVD와 유인물로 제작해 국내외에 대
대적으로 살포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윤홍선 율리아다.
 


1. 교황청, 율리아 자매의 연기 무대

그것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감동적’이라는 표현은 드라마의 내용이 거룩했고 진실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각본이 정교하고 주연 배우의 연기가 현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극의 제목은 ‘바티칸 소식’이다. 세계를 통틀어 12억 명이 넘는 가톨릭 신앙인들의 지휘부 바티칸은 지리적으로는 이탈리아의 로마 시내에 있지만 종교적, 외교적으로는 독립된 국가로 존재한다.

바티칸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은 가톨릭이라는 종교의 위력과 교황이라는 가톨릭의 수장의 명성으로 인해 가톨릭 매체들 뿐 아니라 대중매체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기자들은 이 좁은 지역에 분포된 교황청과 그 부속 건물을 누비며 취재원과 접촉하여 기사거리를 찾는다.

그러나 바티칸의 공식 매체는 물론 전 세계의 주요 대중매체들이 전혀 다루지 않은 연극 기사가 음성적으로 지구촌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바티칸 소식’이라 명명한 이 기사는 메이저 언론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기사의 비중이 낮거나 비공식적으로 일어난 이야기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함축한다.

‘바티칸 소식’이란 것은 4막짜리 드라마의 각본이요 그것을 알리는 홍보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특별한 이목을 끌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이 연극의 주연을 맡은 여우('여자 배우'의 약칭)의 면면에 있다.

그녀는 연극계에서 거의 무명에 가깝지만 미모에 달변을 갖추고 출중한 연기 실력까지 뽐내며 제한된 범위에서 나름으로 탄탄한 기반을 쌓아왔다. 그녀의 이름은 율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윤홍선. 한국의 남쪽에 있는 나주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60대 중반의 한국인 주부다.

한국에서 이름이 있는 텔런트 내지 여우인 이효리나 김태희와는 차원이 다르게 사람들의 넋을 빼는 연기를 잘하기로 유명한 율리아 자매. 그녀가 교황청을 무대로 당당하게 주연 배우(또는 주인공)로서 능숙한 연기를 하는 동안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비롯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이반 디아스 추기경, 은퇴한 외교관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 마귀떼가 조연 배우(또는 보조자)로 등장한다.

그밖에 성직자로서는 드물게 주연 여우를 수행한 장홍빈 알로이시오 신부,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를 거드는 미모의 외국인 수녀들과 율리아 자매를 수행한 한국인 남성 김재석 베드로, 김동명 알비노, 서경원 베드로와 한국인 여성 안젤라와 독일 국적의 한국계 여성 등은 엑스트라로 출연하여 글로벌한 분위기를 돋운다.

제1막은 2010년 2월 26일 로마에 도착해서 여장을 푼후 28일 오전 10시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의 숙소가 있는 건물의 소성당에서 그와 장홍빈 신부가 공동 집전한 미사 중 일어난 특별한 사건을 주제로 한다. 가톨릭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는 성체(聖體 : 외형상으로는 사제가 축성한 면병)을 블라이티스 대주교로부터 율리아 자매가 영한 직후 입안에서 살과 피로 변화하지 않은가!

율리아 자매는 미사 도중 가까이 있던 김재석 베드로를 불러 성체기적이 일어났다는 신호를 보낸다. 김재석은 미사가 진행중임에도 자기 자리에서 율리아 자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입안을 관찰한 후 미사를 집전 중이던 블라이티스 대주교에게 어서 와서 보라고 손짓한다. 그것은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모독하고 미사를 훼방한 신호탄이었다.

블라이티스 대주교는 미사 진행을 중단한 채 제대에서 여우 쪽으로 가서 놀란 표정으로 그녀의 입을 살핀다. 그 순간 공동으로 집전한 장홍빈 신부는 제대 뒤에 앉아있었다. 따라서 미사는 주례자가 없이 공중으로 뜨고 만다. 미사를 주례한 블라이티스 대주교가 율리아 자매에게 성체를 분배한 후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하여 미사 분위기가 흔들린 후 다른 미사 참례자에게 성체를 영해주었는지의 여부는 각본상으로는 나타나 있지 않다.

율리아 자매는 대주교 앞에서 입을 최대한으로 벌리고 혀 위에 번진 피를 보여준다. 혀 위에 놓인 핏덩이는 꿈틀대기도 한다. 대주교와 그를 수행하는 외국인 수녀들이 깜짝 놀란다. 검정 수도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중노년의 외국인 수녀들은 주연 여우를 에워싼다.

여우의 남성 수행원들은 미사 중에 여우 쪽으로 우루루 몰려가 미리 준비해간 비디오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그녀의 입 쪽으로 들이대며 “더 벌려!” “더 벌려!”라고 요청하며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댄다. 그 동안 나머지 수행원들은 성가를 부르며 거룩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동작이 각본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성체기적을 처음으로 목격한 듯한 블라이티스 대주교는 제대를 비워놓은 채 사람들 앞에서 입을 이리저리 벌리는 자매의 턱을 받쳐주며 한참 궁리한 끝에 삼키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로써 바티칸에서의 두 번 째 성체기적으로 호칭되는 피 묻은 성체는 율리아 자매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결정적인 증거를 인멸시키고 만다. 그 대신 대주교는 율리아 자매의 입안을 살피고 입안을 수건으로 닦아준다.

블라이티스 대주교는 율리아 자매가 성체를 영한 직후 살과 피로 변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입을 수시로 벌리는 동안 그 모습을 관찰하고 거드르느라 거룩한 미사를 3분여 동안 진행하지 못한 데 이어 사제의 신분을 몰각한 듯 주연 여우의 시중을 들기 위해 몇 차례 제대를 떠나 주례석을 비워둔다. 그러므로 이 미사는 거룩한 전례에서 일탈하여 주연 여우의 행동을 보조하고 뒷받침해주기 위한 요식행위로 비친다.

블라이티스 대주교의 이러한 자세는 고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청 소성당에서 집전한 개인미사 중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했을 때 이 사실을 보고받은 교황청 몬시뇰이 미사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 율리아 자매에게 “조용히 뒤에 가서 기다리라”고 엄명하고 교황에게는 미사가 끝난 후 보고한 자세와 극명(克明)하게 대비된다.

화제의 주인공 율리아 자매는 자신이 입술이나 혀를 깨물어서 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수시로 중단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엄연한 미사 중에 왼손가락과 오른손가락을 번갈아 입에 넣어 입술 가장자리를 휘저어 입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하는 등 세련된 연기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만족한 듯 “헤헤헤” 웃기도 한다.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나온 블라이티스 대주교는 미사가 끝난 후 감격스런 표정으로 율리아 자매의 손을 잡고 교황청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수녀들에게 성체기적을 설명하면서 “얼마나 이 집의 큰 은총이며 영광인가!”라고 탄성을 연발한다.

제2막은 2월 28일에 있었던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삼종기도와 강복하는 장면, 3월 3일에 있었던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이반 디아스 추기경과 그가 귀여워하며 적극 지지하고 있는 율리아 자매,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 그리고 통역 등 4명이 회동하여 2시간 반 동안 이야기하는 장면을 클로즈업 시킨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매일 높은 자리에서 베드로 광장을 내려다보며 삼종기도를 진행하고 광장에 모인 전 세계에서 온 신자들에게 강복한다.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은 멀리서나마 교황을 뵙고 감격해 한다. 이것을 일반 알현이라 한다. 율리아 자매는 교황청을 무대로 연기를 할 바에야 교황까지 단독으로 뵙고 싶었지만 각본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아 유감이었다.

사람들이 멀리서 교황을 바라보면서 “비바 파파” “비바 파파”라고 외치기도 하고 손을 흔들기도 하는 시각에 율리아 자매는 갑자기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국식 큰 절을 하며 시멘트 바닥에 입술을 댄다. 그것은 교황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하는 친구(親口 : 친히 흙에 입을 맞추어 그 나라와 겨레를 사랑함을 표시하는 것)를 모방한 것이다. 교황이 손을 흔들 때 “윤 율리아!”라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고 율리아 자매의 수행원들은 전한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그들 말고는 한 명도 없다.

3월 3일 오후 4시 반경부터 2시간 30여 분간 진행된 이반 디아스 추기경의 율리아 자매 면담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두 사람과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 그리고 통역 등 4사람이 수군수군 이야기하다가 “하! 하!” 웃기도 하는 동안 무대는 암흑으로 변한다. 비밀 요담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기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란 점을 알리듯 가끔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요담이 끝나자 여우는 숙소로 돌아와 침대 위에 편하게 앉아 추기경을 감동시키고 교황에게 올릴 선물을 전하는 데 성공한 무용담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엑스트라들 앞에서 털어놓는다.

제3막은 마귀의 활약편이다. 율리아 자매의 수행원들이 나중에 주연 여우의 연기를 찍어 제작한 DVD와 뉴스레터는 그녀가 교황청 구내와 숙소에서 마귀의 공격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피 흘리는 사진과 함께 대서특필하고 있다. 목이 할퀴고 옷이 찢어진 모습은 보이지 않는 마귀가 그녀를 공격했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당시 피해자로서의 여우의 연기는 매우 역동적이며 섬세하여 동정심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해석하면 율리아 자매가 거룩한 교황청에 들른 시각과 머물렀던 그 장소에 마귀들이 동행했거나 그녀를 표적으로 갑자기 출현하여 득실거렸음을 보여준다.

드라마의 각본은 마귀들이 조연급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어서인지 그 정체를 표면에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만 마귀떼는 율리아 자매를 넘어뜨리고 교황청 구내와 그녀의 숙소를 가리지 않고 그녀의 몸의 주요 부위를 파상적으로 공격함으로써 흉악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여우는 마귀가 시커멓다고 주례 사제에게 말할 뿐이다. 다만 드라마 작가는 타락한 천사요, 그리스도의 적인 마귀가 죽이려고 달려드는 인간은 거룩한 존재임을 암시하면서 피로 얼룩진 피해 현장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킨다.

그런데 주연 여우 율리아 자매는 블라이티스 대주교와의 만남, 이반 디아스 추기경과의 만남 등 중요한 시간마다 이마와 머리에서 피가 흐른다. 두 외국인 성직자는 적이 놀란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준다. 추기경이 준 손수건에는 여우의 피와 추기경의 이니셜인 IVAN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여우의 엑스트라들은 “여기 추기경님 이름이 적혀 있네!”라고 감격해 한다. 드라마 각본이 여우의 머리에서 피가 흘리는 현상만은 ‘예수님의 가시관 고통’이라고 미화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여우가 예수님과 일치함을 암시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러나 여우의 머리에서 이마로, 이마에서 눈과 코로, 코에서 턱으로 흐르는 핏줄기가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상징적 의미의 피인지, 마귀가 흉기로 찔러서 흐르는 피인지 증명해줄 사람은 없다. 다만 여우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만은 ‘가시관 고통’이라고 역설하는 각본은 한국의 성모동산에서 수시로 사용한 방법의 재판(再版)이다. 그것은 율리아 자매의 상처 부위에 따라 예수님과 마귀가 활동 영역을 구분하는가라는 흥미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과연 마귀들이 여우의 전신을 예리한 흉기로 찌르고 목을 조이기도 하며 때로는 죽여 버리려고 책동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필 머리만 예수님의 고통 몫으로 남겨둘 것인가? 마귀들의 잔학성에 비추어 추리하면 머리에 난 상처도 마귀의 행패의 소산일 가능성은 대두된다. 다만 각본은 마귀떼의 행패보다는 여우가 2월 28일부터 3월 5일까지 바티칸과 로마 숙소에 머무는 동안 5차례나 받았다는 ‘가시관 고통’을 강조한다.

제4막은 여우 일행과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의 인터뷰 장면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블라이티스 대주교는 “나주는 40억 아시아인의 회개와 구원 및 전 세계를 위한 빛이다”라고 여우의 고향을 치켜세운다. 여우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여우는 “제가 하고 있는 일(주 : 이것은 밥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 생활의 기도, 보속의 고통, 성모동산 산책 등에 철야기도회도 살짝 끼워넣은 애매하고 두루뭉술하지만 순간적으로 의표를 찔러 동의를 받아내려는 지능적인 표현임)을 계속해도 됩니까?라고 이반 디아스 추기경님께 물었더니 그래, 하라고 말씀하셨어”라고 전한다.

이 때 침대 가까이 있는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쩍 벌린 채 만면에 희색을 띠고 그 말을 경청하는 김재석 베드로는 재빨리 화사첨족(畵蛇添足)하여 “자신 있게 엄마를 모시고 기도드리고 전하라고 허락하셨단 말이지? 최고 수장이 해도 된다는데 일개 교구장이 안 된다. 말이 안 되는 거지. 그건 끝난 거지”라고 엑스트라답지 않게 목에 잔뜩 힘을 주고 호령쪼로 일갈한다. 한국의 고위 성직자를 비롯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그 모습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세계인이 주시하는 바티칸을 무대로 열연(熱演)을 끝낸 이 여우는 3월 6일 당당한 모습으로 귀국한 이래 교황청 기관지가 자신의 활약상을 단 한 줄도 써주지 않아서 서운하지만 이 기회에 자신의 위상을 완전히 굳히려고 결심하고 정교한 각본과 자신의 현란한 연기솜씨를 DVD와 한글판 소식지에 담아 '바티칸 소식'이라 칭하면서 극성 팬들을 동원하여 그것을 해돋에서 해넘이까지 대량으로 배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빛의 고을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출처 : 야후 블로그 ‘작은영혼’ 2010. 5. 3)


2. 비공식 자료의 공식화

공식과 비공식이라는 개념은 사회나 종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공식이란 영어로 formular나 official의 뜻으로 통용된다. 전자는 ‘계산의 법칙이나 방법을 문자와 기호를 써서 나타낸 식’이다. 수학, 화학, 물리학 공식 등이 여기에 속한다. 후자는 ‘국가적으로 규정되었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공식 기구, 공식 논평, 교계 제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와 반대되는 비공식이란 공식적인 권위로 인정받지 못하는 생각과 행태와 기구 등을 의미한다. 개인적 몽환(夢幻), 짝퉁(진짜를 모방하여 만든 가짜), 임의 또는 불법단체, 반도(叛徒) 등이 비공식의 대열에 낀다.

그러나 공식과 비공식이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두 개념을 상대화(相對化)하여 응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 하나는 공식(公式)의 비공식화(非公式化)다. 국가, 사회, 종교계에서 공식라인에 있는 인물이 상대 국가, 사회, 종교의 공식 라인에 있는 인물과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비공식적으로 접촉하여 공식 안건을 사전에 조율(調律)하는 방법이 그 예에 해당된다. 이것은 구체적 성과를 얻기 위한 예비동작(豫備動作) 또는 한시적 처방(限時的 處方)으로서 긍정적인 의의를 함축한다.

다른 하나는 비공식(非公式)의 공식화(公式化)다. 국가, 사회, 종교계에서 공식 라인 밖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세상이 오면 자신들의 힘에 세진다고 암시하면서 공식 직함을 가진 것처럼 가장(假裝)하거나, 객관적으로 공신력이 없는 사람들이 공식 라인에 있는 일부 인사와 내통하여 호가호위(狐假虎威) 즉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하는 방법이 그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이것은 주위 사람들의 환상과 기대를 불 지르는 기망(欺罔) 내지는 어떤 결과를 임의로 도출하기 위한 과욕(過慾)으로서 부정적인 행태로 꼽힌다.

가톨릭의 공식적인 인준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나주 경당과 성모동산에서 주님과 성모님을 앞세워 그곳을 성지(聖地)라고 선포했고, 가톨릭의 교계제도와 상관이 없는 전국 규모의 단체(마리아의 구원방주회, 마리아꿀룸 등)를 결성했으며, 지역별로 사무실까지 두어 수시로 돈을 거둬들이고 사조직을 확장하면서 그 돈의 일부를 이재(理財)의 수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상당히 어긋난 길을 가고 있는 율리아 자매와 그녀를 추종하는 열성분자들은 지난 2월 26일 돌연히 로마로 비행하여 비공인(非公人)의 신분으로서 7박 8일 동안 수시로 교황청을 드나들면서 주목할 만한 활동을 했다.

율리아 자매 일행이 교황청에서 올린 획기적 업적은 1995년 10월 31일 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집전한 소성당에서의 미사 중에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하는 성체기적(聖體奇蹟)을 교황 앞에서 보여준 이래 이번에는 은퇴 외교관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가 집전한 미사 중 그녀가 영한 성체가 다시 살과 피로 변화하는 두 번 째 성체기적을 블라이티스 대주교가 이반 디아스 추기경을 통해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보고함으로써 성체기적을 교황청에 확실하게 각인시켰다는 점에 있다.

공적계시로써 교회를 세우신 주님은 1985년 사적계시 또는 특별계시로 나주에 발현하신 이래 일어난 숱하게 행하신 기적 중에서 핵심 중의 핵심에 속하는 성체기적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율리아 자매를 통해서 교황청에서 보여주심으로써, 나주에는 율리아 자매와 협력자, 봉사자란 이름으로 불리는 한 줌도 안되는 인간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그녀의 생각과 안목을 흐리게 하여 스스로 문제 집단으로 낙인찍는 지극히 부정적인 요소들이 엄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조건(條件)에는 문제가 있지만 본질(本質)은 옳다는 인식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심어주셨을 가능성이 크다.

주님과 성모님의 나주 발현 25년 역사에서 주님께서 당신의 몸인 성체를 통해 가장 중요한 곳에서 이처럼 확실하고 분명하게 은총을 베풀어주신 적이 언제 있었던가? 주님과 성모님으로부터 간택 받아 생살을 도려내는 보속의 고통을 수시로 받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험담과 비난을 ‘내 탓’으로 돌리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해온 율리아 자매가 주님과 성모님의 승리를 위해 결정적인 기여를 할 물실호기, 아니 마지막 기회가 언제 있었던가?

율리아 자매에게 주어진 기회의 의미는 단순하다. 율리아 자매는 바티칸에서 두 번 째로 일어난 성체기적 소식을 지역과 국경을 초월하여 대대적으로 뿌려 자신을 널리 홍보(弘報)하는 방법으로 인준을 쟁취(爭取)하려고 불쌍한 순례자들을 들볶기보다는 자신의 혀 위에서 일어난 성체기적이 자신의 존재가 두드러져서가 아니라 도구로 쓰이는 자신의 몸의 일부인 혀가 주님의 밑에 있다는 사실, 그 세치 혀로 언제 어디서나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는 지극히 원리적인 주님의 원의를 함축하고 있음을 꿈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율리아 자매는 사인(私人)이지만 기적의 시현자로서 공인(公人)이라는 신분을 아울러 갖고 있기 때문에 언행을 지극히 조심해야 마땅하다. 과연 자신을 미화 예찬하는 도구로 삼은 ‘바티칸 소식’이란 이름의 12쪽 짜리 한글판 소식지와 교황청을 무대로 주연 배우 역할을 톡톡히 한 자신의 활약상을 담은 '바티칸에서 일어난 두 번째 성체기적과 징표들'(The second Eucharistic Miracle & other Signs in the Vatican)이란 제목의 50분 짜리 DVD가 주님과 성모님을 주인공으로 하여 제작된 성물인가? 아니면 율리아 자매 자신을 드높이는 속칭 '짜라시'나 개인 홍보 영상물인가? 율리아 자매가 자신을 우상화하고, 교주화하고, 신격화하는 측면이 있는 자료에다 ‘바티칸 소식’이란 렛텔을 붙여 호도(糊塗)하는 행위가 교황청을 우롱(愚弄)하고 수많은 신앙인을 기만(欺瞞)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율리아 자매는 자신의 문제점 때문에 나주의 기적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주저하는 광주대교구와 한국 가톨릭 신앙인들과 한국인들을 향해 이반 디아스 추기경이 “그들은 뭘 몰라서 그런다”고 말했다고 의기양양하게 소개함으로써 그의 위신을 높여주었는가? 아니면 인도인인 그가 신앙교리성 장관이라는 직위를 남용하여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인을 비하(卑下)한 건방진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는가? 나주의 홍보 자료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동서와 고금을 통해 확립된 도덕률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율리아 자매는 교황청 구내의 소성당에서 봉헌된 거룩한 미사 중에 성체기적이 일어났다 해도 조용히 있다가 미사가 끝난 다음에 그 사실을 주례 사제에게 알리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미사 중에 성체기적이 일어났다고 바람을 잡으며 입을 쩍쩍 벌리고 혀를 내밀거나,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어 입천장과 어금니 안쪽을 휘저으며 “헤헤헤” 웃는 등 주님을 모신 자로 보기 어려운 무례(無禮)한 행동으로 미사를 수시로 중단시키는 것이 바람직한가? 유감스럽게도 율리아 자매 측이 만든 자료는 사적계시(私的啓示)가 공적계시(公的啓示)를 압도(壓倒)하고 지배(支配)하려 한다는 인식을 전 가톨릭과 전 세계에 심어주고 있다.

말을 못하고 생각도 못하며 움직일 수 없는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 하물며 만인의 존경을 받아야 할 기적의 시현자가 현명하고 겸허한 결단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인류의 역사상 결정적인 국면에서 대세를 잡고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은 하나같이 멀리 보고 겸손하며 관대했다. 율리아 자매는 말을 극히 아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톨릭의 기본적인 덕목인 순명(順命)을 실천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만일 그녀가 제자들의 발까지 씻어주신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겸허한 자세를 본받아 광주대교구에 순명하고, 다음으로 한국 가톨릭에 순명하며, 마지막으로 교황청에 순명하는 자세를 취하면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영적 교만에 빠진 여자’, ‘무당’, ‘생쇼에 능한 연기자’, ‘불순명의 왕초’, ‘마녀’란 말들을 한 순간에 씻어버리고 거룩하고 지혜로운 시현자요, 광주대교구와 한국 가톨릭과 교황청에서 두루 호감을 갖는 신앙인으로 자신의 위상(位相)을 굳건하게 정립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식견이 얕고 인격이 부족한 필자는 주님과 성모님의 인준이 가시화되고 있는 시점에 율리아 자매가 사적계시에 몰입해온 종래의 자세를 수정하여 사적계시를 공적계시를 보완하고 승화하는 역할로 한정하며, 그것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중대한 결심을 하고 이를 실현하면 순례 초기의 자세로 돌아가 그녀를 존경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기대를 안고 있기 때문에 지인을 통해 전달받은 나주의 DVD와 소식지를 “수거하여 폐기”하지 않고 아쉬운 마음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매만지고 있다.

(출처 : 야후 블로그 ‘작은영혼’ 2010. 5. 5)


3. 미사 중단과 교도권 용훼를 중심으로

가톨릭의 수뇌부이자 심장부인 바티칸 관저에서 가톨릭 전례의 알파요 오메가요 핵심인 미사가 성체성사 도중에 중단(中斷)되는 가톨릭 2천년 역사에서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하늘에서 바티칸으로 거대한 유성이 떨어진 것도 아니요, 전쟁이 일어나 폭도들이 바티칸을 대대적으로 공습한 것도 아니요, 야수적인 이교도들이 바티칸을 부수고 약탈한 것도 아닌데, 정상적으로 진행된 미사가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시는 시간에 중단되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2월 28일 오전 10시 교황청 은퇴 외교관 숙소의 소성당에서 전 주한 교황청대사요 은퇴한 후 은퇴 외교관 숙소에 머물고 있는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와 사적계시와 관련하여 교회의 인준을 받지 못해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율리아 자매를 따른다 하여 광주대교구장으로부터 제명조치를 받은 장홍빈 알로이시오 신부가 미사를 공동으로 집전했다.

주례를 맡은 블라이티스 대주교가 축성하여 면병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실체변화한 성체를 율리아 자매에게 영해주었다. 잠시 후 율리아 자매가 입으로 영한 성체가 혀 위에서 살과 피로 변화하는 성체기적(聖體奇蹟)이 일어났다. 이것은 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시절 소성당에서 교황이 집전한 개인미사에서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한 기적이 일어난 이래 교황청에서 일어난 두 번 째 성체기적이다.

성체기적이란 주님이 성체가 당신의 몸임을 살과 피로 보여주시어 성체의 성스러움, 존귀함을 일깨우시기 위한 특별한 기적에 속한다. 이것은 주님이 사적발현(私的發顯) 또는 특별발현(特別發顯)의 형식으로 어떤 사람에게 임하시어 주시는 은총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적발현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교회를 통해서 친히 주신 공적발현(公的發顯)을 보충하는 의미에 그친다.

이 때문에 1995년 10월 31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집전한 미사 중에 율리아 자매의 입을 통해 주님께서 성체기적을 일으키셨다하더라도 이를 보고받은 교황청의 몬시뇰은 “뒤에 가서 기다리라”고 명령하고 미사를 방해받지 않게 했다. 그는 미사가 끝난 후에 그 때까지 혀 위에 살과 피로 변화한 성체를 모시고 있던 율리아 자매의 입을 벌리게 하여 교황에게 성체기적의 실체를 보여드렸다. 이것은 마땅하고 옳은 조치였다.

그러나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는, 미사 중에 벌떡 일어나 성체기적이 일어났으니 와서 보시오라는 율리아 자매의 심복의 손짓에 따라, 제대를 떠나 율리아 자매 앞에서 관찰하고 이를 은퇴 사제관에서 근무하는 서양 수녀들에게 설명하고 놀라며 탄성을 지르느라 미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공동으로 미사를 집전한 장홍빈 신부는 미사가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사를 진행할 생각을 못한 채 제대 뒤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일어서서 율리아 자매 곁으로 가서 그녀의 용태에만 관심을 집중했다.

율리아 자매는 거룩한 미사 중에 자신이 연극이나 영화의 주연 배우인 양 입을 쩍쩍 벌리고 혀를 내밀기도 하면서 혀 위에서 살과 피로 변화한 성체를 블라이티스 대주교를 비롯한 서양인 수녀, 자신의 수행원들에게 보여주는 일에 열중했다. 또한 그녀는 블라이티스 대주교의 지시로 살과 피로 변화한 성체를 목구멍으로 삼킨 후 갑자기 목청을 돋워 우리말로 “주 하느님 영광 받으소서. 사랑의 주님, 용서의 주님 영광 받으소서. 오 나의 주님, 예수님 영광 받으소서”란 노래를 부른 후 “Amen! I Love You”라고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더구나 율리아 자매는 블라이티스 대주교와 서양 수녀들에게 자신이 입술이나 혀를 깨물어 피를 내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손가락을 입술 안으로 집어넣어 이리저리 휘저으며 구강과 인후의 내부 상태를 샅샅이 공개한다. 이어서 그녀는 모종의 성취감 때문인지 “헤헤헤” 웃는 것이 아닌가! 가톨릭의 전통적인 전례를 체현해온 신앙인들은 이 장면에서 실소(失笑)를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이로써 거룩한 미사를 중단한 이 소성당은 짧은 시간이나마 율리아 자매의 능란한 연기장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율리아 자매의 수행원들(장홍빈 신부를 포함한 6명)은 비록 수시로 중단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엄연한 미사성재 중에 율리아 자매에게 일어난 일들을 블라이티스 대주교에게 영어로 자세히 설명하거나, 율리아 자매에게 “더 벌려!” “더 벌려!”라고 막말로 요청하며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가톨릭의 공식 전례에 없는 그들만의 성가와 나주에서 연습해온 그레고리안 성가를 임의로 합창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거나, 미사가 속행된 다음에도 의자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지성인들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5세기에 야만적인 반달족이 교황청을 파괴하고 약탈했으며 성직자들에게 해를 끼쳤고, 14세기에 중국의 홍건적이 원나라 황실을 유린한 기록을 접하면서 폭도(暴徒)들의 만행에 몸서리를 친다.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은 교회와 사회에 뼈아픈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율리아 자매와 그 심복들은 교황청 구내에서 가톨릭의 가장 중요한 전례인 미사를 웃어가면서 중단시켰다. 미사를 경시하고 훼방하면서까지 성체기적의 도구에 불과한 자신을 부각시키려는 율리아 자매와 그 수족들의 저의(底意)와 기행(奇行)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 후 율리아 자매가 이러한 모습을 담아 제작한 ‘바티칸에서 일어난 두 번째 성체기적과 징표들’이라 제한 DVD와 한글판 소식지를 받아본 국내외의 신앙인들은 미사를 중단(中斷)시킨 저들의 폭거(暴擧)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성직자는 “이것은 교계제도상 아무런 직책을 갖지 못한 일단의 무리가 교황청으로 들어가 사적계시(私的啓示)로 공적계시(公的啓示)를 구축(驅逐)한 일대 사건”이라고 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율리아 자매는 자신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인류복음화성 장관 이반 디아스 추기경을 만난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의 전언을 통해 이반 디아스 추기경이 “(광주대교구장의) 파문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특히 “그는 그렇게 할 권한이 없다”(He has no authority to do)는 말을 이반 디아스 추기경이 했다면 이것은 교회법 상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교회법은 교구장에게 교도권을 부여하고 있다. 최창무 대주교는 당시 광주대교구장으로서 교도권의 차원에서 교령을 발령했음은 물론이다. 다만 신앙교리성은 그 내용의 일부(특히 ‘자동처벌의 파문제재’)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1년 이상 조사했지만 아직 그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사도좌 법원은 교령을 발령한 최대주교에 대한 형사고소가 없었으므로 이에 대해 관여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교회법상 교구장이 교도권의 일환으로 발령한 사항은 사도좌 법원의 확정판결이나 신앙교리성의 결정에 의해서만 무효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인류복음화성 장관이 자신의 업무와 관련이 없는 교리 문제에 관해 “터무니없는 것”이라든가 “그는 그렇게 할 권한이 없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교구장에게 합법적으로 부여된 교도권에 대한 용훼(容喙)요, 광주대교구장 및 교구의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 대한 폭언(暴言)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교회법을 잘 알 것으로 믿는 이반 디아스 추기경이 자신이 선교지역으로 분류된 한국 가톨릭의 복음화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표현을 썼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짐작한다. 그렇다면 그의 말을 옮긴 조반니 블라이티스 대주교가 착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 경위야 어떻든 율리아 자매는 이반 디아스 추기경이 이렇게 말했다고 성모동산에서 역설하는가 하면 그 내용을 DVD에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소식지에 사진과 함께 대서특필한 후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한국 가톨릭 신앙인들은 물론 행인들과 지구촌 곳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대대적으로 살포하고 있다. 교계제도의 한 축을 이루는 광주대교구를 깔아뭉개는 자세로 경당과 성모동산에서 자신을 우상화, 교주화, 신격화해온 율리아 자매. 그녀는 가톨릭에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여자 메시아로 군림하려고 작심한 것 같다.

사적계시(私的啓示)가 무엇이기에 미사를 중단시킴으로써 공적계시(公的啓示)를 지배(支配)하고 압도(壓倒)하려하며, 시현자(示顯者)가 무엇이기에 질서를 중시하는 가톨릭에서 홀로 우뚝 서서 밑에서부터 위로 오르는 순명(順命)의 전통을 유린(蹂躪)하려는가?―율리아 자매와 그녀의 추종자들이 제작한 소위 ‘바티칸 소식’의 역기능(逆機能)은 바로 이점을 확연하게 보여준 데 있다.

(출처 : 야후 블로그 ‘작은영혼’ 2010. 5. 7)


4. ‘오메가’의 의미를 묵상하며

성체기적(聖體奇蹟)은 하늘에서 성체가 내려오든, 율리아 자매가 영한 후 혀에서 살과 피로 변화하든, 성체에서 성혈로 변화하든, 성혈에서 성체로 변화하든 간에 당신의 몸인 성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시기 위해 주님이 내려주시는 무상의 은총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체기적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자주 성체조배를 함은 물론 성체기적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야 마땅하다.

1985년 성모님과 함께 전남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은 교황청에서 보속의 도구인 율리아 자매를 통해서 두 번이나 성체기적을 보여주셨다. 특히 2월 28일 주님께서 교황청 은퇴 외교관 숙소의 소성당에서 봉헌된 미사에서 율리아 자매가 입으로 영한 성체를 혀 위에서 살과 피로 변화하게 하신 성체기적에 대해 성모님은 메시지를 통해 “오늘 너(율리아 자매)를 통하여 성체의 기적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로구나. 걱정하지 말고 오메가를 잘 묵상하고 실천하여라”고 말씀하셨다고 율리아 자매는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교황청에서 두 번 째이자 마지막인 이 성체기적은 율리아 자매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가톨릭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관심을 집중해야 할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이어 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이르는 2대 교황의 시기에 주님께서 주신 이 지고한 은총에 대해 성모님이 '마지막'이라 표현하신만큼 뜻있는 신앙인들은 배수의 진을 치는 심경으로 주님을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게 흠숭하고, 생각과 말과 행위를 경건하고 경건하고 경건하게 갖추어야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2.28 성체기적과 그 이후에 일어난 일련의 현상들은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듯이 기능(機能)과 역기능(逆機能)을 낳았다. 성체기적의 본질(本質) 자체는 완전한 신(神)의 소관 사항이므로 인간이나 마귀가 조작할 수 없다. 하지만 성체기적과 관련되는 일련의 현상들에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의지를 오용 내지 남용하는 인간이나 진리를 가리고 사람을 타락시키며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마귀들이 끼어들어 난장판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 성체기적의 진위를 분별하는 작업은 이러한 조건(條件)을 살피고 분석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번 성체기적의 기능은 첫째, 주님께서 당신의 몸인 성체를 거룩하게 받들어야 하며 성체성사에서 성체를 몸에 모신 신앙인답게 매순간 주님의 원의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충격적으로 제시하신 점, 둘째, 주님께서 율리아 자매를 선택하여 그녀의 혀 위에서 성체기적을 일으키심으로써 그녀에게 만인의 모범이 되도록 처신해야 한다고 독려하신 점, 셋째, 주님께서 율리아 자매를 통한 성체기적을 통해 교황청의 일부 성직자의 마음을 움직여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께 대해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하셨다는 점 등이다.

그 역기능은 첫째, 율리아 자매가 교황청에서 사적계시로 공적계시를 지배하고 압도하려고 책동하면서 미사를 중단시키는 주역으로 나서고 성체기적이라는 거룩한 충격을 속된 거동으로 흐린 점, 둘째, 광주대교구장을 이단으로 몰아 파문시켜달라고 하수인들을 시켜 교황청에 두 번이나 형사고소하는 반동(反動)을 저지르고 주님과 성모님의 메시지를 조작하는 폭거(暴擧)를 자행한 율리아 자매가 이반 디아스 추기경의 말이라면서 광주대교구장의 공지문과 교령을 짓밟는 행동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점, 셋째, 율리아 자매가 귀국 후 주님의 성체기적(聖體奇蹟) 자체에 초점을 둔 성물(聖物)이 아니라 자신(自身)을 부각시킨 홍보물(弘報物)을 제작해서 맹렬하게 전파함으로써 교계제도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 등이다.

율리아 자매는 확실히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주님의 보속의 도구로서 고통을 자청해서 받는 특별한 존재지만 대중 앞에는 고가의 화사한 한복을 입고 신데렐라처럼 등장하여 자신을 선전하며 은밀하게 잇속을 챙기는 여인, 경당과 성모동산에서 ‘사랑 덩어리’로 통하지만 봉사자들 앞에서는 전제 군주의 위세를 과시하며 막말로 꾸중하고 분노도 터뜨리는 여인, 때로는 천사와 성인성녀들의 옹위를 받으며 예언자로 행세하지만 수시로 마귀 떼의 집중 공격을 받아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여인―그가 율리아 자매다.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이 강한 곳으로 마귀 떼가 몰려든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특히 율리아 자매와 마귀의 관계는 매우 흥미 있는 탐구 대상이다. 마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교활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마귀는 율리아 자매에게 채찍을 들고 무자비하게 공격해 여러 차례 그녀를 죽이려 했다. 율리아 자매는 그런 마귀 떼의 횡포로 받은 상처를 그 때 그 때 사진으로 공개함으로써 자신이 주님과 성모님의 ‘가장 사랑하는 딸’로서 마귀들의 집중적인 보복을 받는 의인(義人)이란 이미지를 과시해왔다.

그러나 율리아 자매는 차원이 다른 마귀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緘口)하고 있다. 아니 그러한 마귀의 존재조차 그녀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별종의 마귀는 채찍 대신 당근을 들고, 때로는 성모님을 가장하고 나타나 율리아 자매의 귀에 대고 “애야, 너는 내가 영원히 사랑하는 딸이다”, “내가 너에게 물질적 축복도 주겠으니 부자 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 “음, 너는 뭐든지 잘 하고 있구나”, “내가 너를 이 엄마의 경지에 올라서게 했다”, “너를 비판하는 누구의 말도 듣지 마라”고 속삭인다. 심지어 율리아 자매가 주님과 성모님으로부터 받았다는 메시지 중에 마귀의 작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을 정도다.

마귀가 휘두르는 채찍은 그녀에게 심한 고통을 주지만 그녀로 하여금 만난을 이기고 자라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양약(良藥)의 효험을 발휘한다. 그러나 마귀가 그녀의 입에 넣어주는 당근은 정신을 마비시켜 마침내 그녀를 무너뜨리는 독약(毒藥)으로 작용한다. 주님, 성모님의 모습만 보면 깜빡 죽는 율리아 자매가 실은 이 당근의 마귀를 주님, 성모님으로 잘못 알고 그 포로가 되어 교만(驕慢)하고, 성직자들을 깔보며, 귀를 꽁꽁 막은 채 고립(孤立)과 자멸(自滅)의 길로 가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가슴 아픈 비극(悲劇)이 아닐 수 없다.

성모님은 2월 28일 교황청에서 주신 메시지를 통해 그날의 성체기적을 ‘마지막’이라고 표현하셨다. 이것은 넓은 의미로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는 성체기적의 대단원(大團圓)이란 의미다. 대단원은 마무리 직전의 절정이요, 결론의 시작을 암시한다. 이것은 “내가 시작한 일 내가 마무리 하겠다”는 주님의 메시지의 부연설명이며, “오메가를 잘 묵상하고 실천하여라”는 성모님 당신의 절절한 당부이기도 하다. 주님과 성모님의 원의는 끝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조그만 실수도 하지 말라는 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마지막’이란 말은 좁은 의미로는 성체기적의 도구로 쓰인 율리아 자매의 역할이 그날로 종료(終了)됐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역할을 마감한 사람은 공직에서는 뒷사람에게 역할을 물려주고 떠나야 하고, 무대에서는 막이 내리는 순간 그곳에서 내려와야 하며, 그라운드에서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벤치로 가야하고, 노래방에서는 마이크를 내려놓아야 한다. 분수를 아는 사람은 떠날 때 발버둥치지 않고 자신을 낮춘다.

이 ‘마지막’은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죽음은 새로운 삶의 출발이기도 하다. 따라서 착하고 멋있는 죽음은 빛나는 삶의 터전이요, 악하고 더러운 죽음은 어두운 삶의 대문이다. 죽음 앞에서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누구든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짓고 그것을 겸허하게 참회(懺悔)하지 않고 죽음의 문턱을 지날 때 구원받을 수 있을까? 참회야말로 죽음에서 삶으로 오르는 밧줄이다. 그것 없이 구원을 바라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성모님의 발현 초기에는 당신들의 은총을 알리는 최고 공헌자였지만 마귀에게 놀아난 후로는 인준의 최대 장애물로 전락한 율리아 자매 주변의 간신(奸臣)과 충견(忠犬)들이 주님께서 교황청에서 두 번 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풀어주신 특별한 은총(恩寵)을 높이 기리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는커녕 도구에 지나지 않은 율리아 자매를 주인공(主人公)으로 띄우는 홍보물을 만들어 ‘바티칸 소식’이라고 칭하며 엄청나게 뿌려대는 작태를 접한 교회 안팎의 지성인들은 율리아 자매를 우상화(偶像化), 교주화(敎主化), 신격화(神格化)하는 저들의 집요하고도 간특하며 말기적인 책동(策動)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오메가’는 끝이요 완성이다. 마지막 성체기적이 33번째로 끝났다는 사실은 인간으로서는 33살까지 사시고 십자가상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나라에 오르신 예수님을 묵상케 한다. 죽음 없이 부활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끝없이 겸손하며 마침내 자신을 죽임으로써만 위대한 부활을 맞을 수 있다. 율리아 자매와 그 추종자들이 진실로 회개(悔改)하여 아집과 독선과 교만을 씻어내고,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에 순명(順命)하면 인준(認准)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출처 : 야후 블로그 ‘작은영혼’ 2010.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