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종교, 이단 조심/안티-나주성모상(이단)

소위 바티칸 소식이라는 나주 이야기 감상법(4)

반찬이 2010. 5. 21. 17:30

소위 ‘바티칸 소식’ 감상법(4)

―‘오메가’의 의미를 묵상하며

이태호 로물로


신비하고 아름다운 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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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같이 찬란하고 달과 같이 아름다운 저 여인은 누구신가. 별과 같이 반짝이고 저녁 노을 위에 계신 저 여인은 누구신가. 성모여 우리 위해 빌으소서. 성모여 이 노래를 당신께 바칩니다."(성가 '성모님께 바치는 노래'에서)


성체기적(聖體奇蹟)은 하늘에서 성체가 내려오든, 율리아 자매가 영한 후 혀에서 살과 피로 변화하든, 성체에서 성혈로 변화하든, 성혈에서 성체로 변화하든 간에 당신의 몸인 성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시기 위해 주님이 내려주시는 무상의 은총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체기적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자주 성체조배를 함은 물론 성체기적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야 마땅하다.

1985년 성모님과 함께 전남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은 교황청에서 보속의 도구인 율리아 자매를 통해서 두 번이나 성체기적을 보여주셨다. 특히 2월 28일 주님께서 교황청 은퇴 외교관 숙소의 소성당에서 봉헌된 미사에서 율리아 자매가 입으로 영한 성체를 혀 위에서 살과 피로 변화하게 하신 성체기적에 대해 성모님은 메시지를 통해 “오늘 너(율리아 자매)를 통하여 성체의 기적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로구나. 걱정하지 말고 오메가를 잘 묵상하고 실천하여라”고 말씀하셨다고 율리아 자매는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교황청에서 두 번 째이자 마지막인 이 성체기적은 율리아 자매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가톨릭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관심을 집중해야 할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이어 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이르는 2대 교황의 시기에 주님께서 주신 이 지고한 은총에 대해 성모님이 '마지막'이라 표현하신만큼 뜻있는 신앙인들은 배수의 진을 치는 심경으로 주님을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게 흠숭하고, 생각과 말과 행위를 경건하고 경건하고 경건하게 갖추어야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2.28 성체기적과 그 이후에 일어난 일련의 현상들은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듯이 기능(機能)과 역기능(逆機能)을 낳았다. 성체기적의 본질(本質) 자체는 완전한 신(神)의 소관 사항이므로 인간이나 마귀가 조작할 수 없다. 하지만 성체기적과 관련되는 일련의 현상들에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의지를 오용 내지 남용하는 인간이나 진리를 가리고 사람을 타락시키며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마귀들이 끼어들어 난장판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 성체기적의 진위를 분별하는 작업은 이러한 조건(條件)을 살피고 분석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번 성체기적의 기능은 첫째, 주님께서 당신의 몸인 성체를 거룩하게 받들어야 하며 성체성사에서 성체를 몸에 모신 신앙인답게 매순간 주님의 원의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충격적으로 제시하신 점, 둘째, 주님께서 율리아 자매를 선택하여 그녀의 혀 위에서 성체기적을 일으키심으로써 그녀에게 만인의 모범이 되도록 처신해야 한다고 독려하신 점, 셋째, 주님께서 율리아 자매를 통한 성체기적을 통해 교황청의 일부 성직자의 마음을 움직여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께 대해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하셨다는 점 등이다.

그 역기능은 첫째, 율리아 자매가 교황청에서 사적계시로 공적계시를 지배하고 압도하려고 책동하면서 미사를 중단시키는 주역으로 나서고 성체기적이라는 거룩한 충격을 속된 거동으로 흐린 점, 둘째, 광주대교구장을 이단으로 몰아 파문시켜달라고 하수인들을 시켜 교황청에 두 번이나 형사고소하는 반동(反動)을 저지르고 주님과 성모님의 메시지를 조작하는 폭거(暴擧)를 자행한 율리아 자매가 이반 디아스 추기경의 말이라면서 광주대교구장의 공지문과 교령을 짓밟는 행동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점, 셋째, 율리아 자매가 귀국 후 주님의 성체기적(聖體奇蹟) 자체에 초점을 둔 성물(聖物)이 아니라 자신(自身)을 부각시킨 홍보물(弘報物)을 제작해서 맹렬하게 전파함으로써 교계제도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 등이다.

율리아 자매는 확실히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주님의 보속의 도구로서 고통을 자청해서 받는 특별한 존재지만 대중 앞에는 고가의 화사한 한복을 입고 신데렐라처럼 등장하여 자신을 선전하며 은밀하게 잇속을 챙기는 여인, 경당과 성모동산에서 ‘사랑 덩어리’로 통하지만 봉사자들 앞에서는 전제 군주의 위세를 과시하며 막말로 꾸중하고 분노도 터뜨리는 여인, 때로는 천사와 성인성녀들의 옹위를 받으며 예언자로 행세하지만 수시로 마귀 떼의 집중 공격을 받아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여인―그가 율리아 자매다.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이 강한 곳으로 마귀 떼가 몰려든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특히 율리아 자매와 마귀의 관계는 매우 흥미 있는 탐구 대상이다. 마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교활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마귀는 율리아 자매에게 채찍을 들고 무자비하게 공격해 여러 차례 그녀를 죽이려 했다. 율리아 자매는 그런 마귀 떼의 횡포로 받은 상처를 그 때 그 때 사진으로 공개함으로써 자신이 주님과 성모님의 ‘가장 사랑하는 딸’로서 마귀들의 집중적인 보복을 받는 의인(義人)이란 이미지를 과시해왔다.

그러나 율리아 자매는 차원이 다른 마귀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緘口)하고 있다. 아니 그러한 마귀의 존재조차 그녀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별종의 마귀는 채찍 대신 당근을 들고, 때로는 성모님을 가장하고 나타나 율리아 자매의 귀에 대고 “애야, 너는 내가 영원히 사랑하는 딸이다”, “내가 너에게 물질적 축복도 주겠으니 부자 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 “음, 너는 뭐든지 잘 하고 있구나”, “내가 너를 이 엄마의 경지에 올라서게 했다”, “너를 비판하는 누구의 말도 듣지 마라”고 속삭인다. 심지어 율리아 자매가 주님과 성모님으로부터 받았다는 메시지 중에 마귀의 작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을 정도다. 

마귀가 휘두르는 채찍은 그녀에게 심한 고통을 주지만 그녀로 하여금 만난을 이기고 자라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양약(良藥)의 효험을 발휘한다. 그러나 마귀가 그녀의 입에 넣어주는 당근은 정신을 마비시켜 마침내 그녀를 무너뜨리는 독약(毒藥)으로 작용한다. 주님, 성모님의 모습만 보면 깜빡 죽는 율리아 자매가 실은 이 당근의 마귀를 주님, 성모님으로 잘못 알고 그 포로가 되어 교만(驕慢)하고, 성직자들을 깔보며, 귀를 꽁꽁 막은 채 고립(孤立)과 자멸(自滅)의 길로 가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가슴 아픈 비극(悲劇)이 아닐 수 없다.

성모님은 2월 28일 교황청에서 주신 메시지를 통해 그날의 성체기적을 ‘마지막’이라고 표현하셨다. 이것은 넓은 의미로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는 성체기적의 대단원(大團圓)이란 의미다. 대단원은 마무리 직전의 절정이요, 결론의 시작을 암시한다. 이것은 “내가 시작한 일 내가 마무리 하겠다”는 주님의 메시지의 부연설명이며, “오메가를 잘 묵상하고 실천하여라”는 성모님 당신의 절절한 당부이기도 하다. 주님과 성모님의 원의는 끝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조그만 실수도 하지 말라는 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마지막’이란 말은 좁은 의미로는 성체기적의 도구로 쓰인 율리아 자매의 역할이 그날로 종료(終了)됐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역할을 마감한 사람은 공직에서는 뒷사람에게 역할을 물려주고 떠나야 하고, 무대에서는 막이 내리는 순간 그곳에서 내려와야 하며, 그라운드에서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벤치로 가야하고, 노래방에서는 마이크를 내려놓아야 한다. 분수를 아는 사람은 떠날 때 발버둥치지 않고 자신을 낮춘다.

이 ‘마지막’은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죽음은 새로운 삶의 출발이기도 하다. 따라서 착하고 멋있는 죽음은 빛나는 삶의 터전이요, 악하고 더러운 죽음은 어두운 삶의 대문이다. 죽음 앞에서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누구든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짓고 그것을 겸허하게 참회(懺悔)하지 않고 죽음의 문턱을 지날 때 구원받을 수 있을까? 참회야말로 죽음에서 삶으로 오르는 밧줄이다. 그것 없이 구원을 바라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성모님의 발현 초기에는 당신들의 은총을 알리는 최고 공헌자였지만 마귀에게 놀아난 후로는 인준의 최대 장애물로 전락한 율리아 자매 주변의 간신(奸臣)과 충견(忠犬)들이  주님께서 교황청에서 두 번 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풀어주신 특별한 은총(恩寵)을 높이 기리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는커녕 도구에 지나지 않은 율리아 자매를 주인공(主人公)으로 띄우는 홍보물을 만들어 ‘바티칸 소식’이라고 칭하며 엄청나게 뿌려대는 작태를 접한 교회 안팎의 지성인들은 율리아 자매를 우상화(偶像化), 교주화(敎主化), 신격화(神格化)하는 저들의 집요하고도 간특하며 말기적인 책동(策動)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오메가’는 끝이요 완성이다. 마지막 성체기적이 33번째로 끝났다는 사실은 인간으로서는 33살까지 사시고 십자가상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나라에 오르신 예수님을 묵상케 한다. 죽음 없이 부활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끝없이 겸손하며 마침내 자신을 죽임으로써만 위대한 부활을 맞을 수 있다. 율리아 자매와 그 추종자들이 진실로 회개(悔改)하여 아집과 독선과 교만을 씻어내고,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에 순명(順命)하면 인준(認准)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끝)

(출처 : 야후 블로그 ‘작은영혼’ 2010.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