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문화심리학

[스크랩] 문화와 상담

반찬이 2010. 12. 14. 11:01

문화와 상담


금명자 (한국청소년상담원)



사람의 삶에서 10대를 지나 20세가 가까워지면 내가 누구인지를 고민한다. 학문도 인생처럼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그 학문에 속해져 있는 사람들은 이 학문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상담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부터 ‘한국적 상담’, ‘상담의 토착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한국의 상담, 한국의 청소년상담에 대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경험적 자산도 누적되어 있다.

한국의 내담자들은 “상담자가 내 감정을 말하라고 하는데, 말하기 힘들었다(주로 인간중심적 접근을 한 상담에서).”, “상담자가 한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면서 나에 대해서 많이 알게는 되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아 답답했다(주로 정신역동적 접근을 한 상담에서).”, “나만 상담 받으면 무슨 소용 있나? 나도 중요하지만 내 가족이 알고 변해야 된다(자녀상담을 하러 왔다가 엄마가 상담을 한 경우).” 등등의 불평을 한다. 우리 내담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기 힘들어한다. 그러나 분명히 감정이 있으며 그것도 매우 감정적이다. 우리 내담자들은 자신에 대한 통찰을 해도 선생님이나 어른의 확인을 받고 싶어 하고 그래서 상담자의 확인을 요구한다. 우리 내담자들은 자신의 변화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의 인물도 함께 변해야 한다고 강력 요구한다. 이러한 특성은 감정을 말로 드러내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고, 상담자를 인생의 현자로 기대하기 때문이며, 집단주의 문화에 살기 때문이다. 감정은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말 대신 비언어적으로 표현하고, 상담자의 지시나 조언을 기대하며, 개인상담보다는 가족상담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에서의 상담에 미치는 문화의 영향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우리나라 내담자들은 상담시간에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상담자가 지시 해주기를 더 많이 기대한다. 금명자와 이장호(1991)는 우리나라 대학생 내담자들이 상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 요인들을 분류하였는데, 이러한 특성을 잘 드러내준다. 미국 대학생들은 자신이 내담자로서의 상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참여요인이 가장 우선한 요인이었지만 한국 내담자에게는 이 요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한국 대학생 내담자들은 상담자가 전문성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혹은 우월적으로 상담시간을 이끌기 기대하였지만 미국의 내담자들은 기대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청소년 내담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금명자(2002 a)는 청소년 내담자와 이들을 상담하는 청소년상담자들에게 상담과 상담자에 대한 기대를 확인하였다. 청소년 내담자는 상담자의 지시성, 전문성, 직면성, 구체성 등을 제일 강하게 기대하였지만, 상담자들은 상담자의 양육성, 솔직성, 신뢰성 등을 기대하였다. 청소년 내담자들이 기대하는 내용은 상담자가 전문적 주도성을 가지고 상담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고, 상담자들은 관계로서의 상담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상담을 해 본 청소년들은 해 보지 않은 청소년들에 비해 상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방하는 내담자 역할을 높게 기대한다는 결과는 상담시간에 행한 상담자의 구조화 노력을 알게 한다. 한편 청소년의 부모 역시 상담자의 전문성을 기대한다. 금명자와 양미진(2001)은 청소년과 부모들의 상담에 대한 기대를 확인하였는데, 역시 두 집단 모두 상담자의 전문성을 동일하게 가장 높게 기대하였다. 부모들이 전반적으로 청소년들에 비해 모든 기대영역에서 높은 기대를 하였으나 상담자의 전문성에서만은 두 집단간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청소년들이 부모보다 더 상담자에 대한 전문성을 높게 기대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처럼 청소년들은 상담자에 대한 높은 지시적 전문성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청소년 내담자와 상담자간의 기대 차이는 상담의 조기탈락 혹은 조기 종결과 연결될 수 있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미처 형성되기 전에 조급한 내담자들이 상담에 대해 실망하여 상담을 조용히 끝낸다. 그래서 상담 초기에 상담에 대한 구조화, 분명한 목표 설정과 설정에 따른 실현에 대한 노력의 가시화 등이 필요하다.

문제는 상담자들도 역시 한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상담교육에 의해서 서양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담자가 되려면 무조건 배우게 되는 정신분석, 인간중심적 접근, 행동주의적 접근, 인지적 접근 등은 모두 개인중심의 문화에서 싹터 자란 이론들이다. 이런 이론들에 의해 교육되고 훈련된 상담자들은 이러한 문화적 특성을 자신은 물론이고 내담자들에게 강요한다. 내담자들도 혼란스럽지만 사실은 상담자들도 현장에서 혼란을 겪는다.

상담자들도 문화에 대해 민감해야 하고 자신의 속에서부터 나오는 소리가 개인적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문화적 소산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표적 문화적 차이는 아마도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논의일 것이다. 동양은 집단주의 문화이고 서양은 개인주의적 문화에 기반하고 있으며, 여기에 수직적 문화냐 혹은 수평적 문화냐와 관련하여 또 다른 문화적 차이를 형성한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기브츠는 집단 문화이지만 수평성을 견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수직적 집단의 색채가 짙다. 그러나 근년의 몇 몇 연구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결코 수직적 집단주의에 속하지는 않는 것 같다. 금명자(2002 a)는 청소년상담자는 뚜렷한 수평적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으며, 청소년 내담자는 두개의 변인에 따른 네 가지 문화적 집단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보고하였다. 한편 중년의 교사들의 문화적 특성을 확인한 연구(금명자, 2002 b)에서는 높은 수직적 집단주의가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경험하는 우리 청소년들은 여전히 수직적 집단주의적 기운이 남아있다. 교실에 따돌림이 있으며, 내가 따돌림을 받지 않기 위해서 그 따돌림 현상에 동조하는 문화는 집단주의적 문화의 산물이다. 선후배관계를 이해하지 않고는 학교 폭력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수직적 문화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수원(1996)이 정리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특성을 보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발견하는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 그리고 상담실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의 특성을 문화적으로 더 잘 이해하게 된다.
1)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 측면으로 의사결정할 때 집단주의 사회의 사람은 집단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반면, 개인주의 사회의 사람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초점을 둔다.
2) 집단주의자들이 자기가 지닌 것을 타인과 나누며 타인과 또한 자신에게 그와 같이 행동해주기를 기대하는 반면, 개인주의자들은 남에게 신세지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에게 빌리려 하지도 않고 빌려주지도 않는다.
3) 집단주의자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집단으로부터 배척될 경우 이를 수치스럽게 여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체면이나 눈치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다. 반면 개인주의자들은 누구에게 인정받는 것이 사람의 목표가 아니므로 체면보다는 성취감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4) 집단주의자들은 인간관계에서 내외집단에 따라 차별을 두어 소속된 내집단에는 친밀하게 행동하지만 외집단에게는 배타적이다. 반면 개인주의자들은 내외집단에 따른 차별을 별로 두지 않고 공평함을 유지하고자 한다.
5)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윤리나 규범이 상황에 따라 규정되는 반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윤리나 규범이 보편적으로 정의된다.
6)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결속력이 강하여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어 서로 간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커 개인 생활의 침해도 잦다. 그러나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삶이 타인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서로의 영역을 분명히 한다.
7) 집단주의에서는 인간관계에 민감한 나머지 말을 아끼며 분위기에 따라 유보하는 것을 미덕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타협적이며 의례적인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에서는 대화의 내용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솔직하고 주장적이고 명료한 것이기를 강조한다.
8)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정서나 동기의 발현이 타인 중심적이어서 동정심이나 수치심 같은 정서가 주로 발달되었고, 동기도 대인관계 유지에 필요한 친애욕구와 친화욕구가 발달되었다. 그러나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호오(好惡)와 같은 개인적 감정이 발달되었고 동기도 성취동기와 같은 개인 지향적 동기가 발달되었다.
9)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화합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갈등해소 방법으로 상대의 의무나 책임에 호소한다. 그러나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갈등 해결을 통해 얻게 되는 이익을 일깨움으로써 협상과 같은 방법을 채택하고자 한다.
10) 추구되는 가치관에 있어서도 집단주의에서는 훌륭한 인격자를 이상적인 상으로 여기고, 화목, 인화, 의리, 겸손, 충절에 가치를 둔다. 그러나 개인주의에서는 뛰어난 능력자를 이상상으로 삼기 때문에 자조, 자율, 독립, 공정, 자유, 솔직에 가치를 둔다. 자질에 있어서도 집단주의에서는 성실, 인내, 노력, 절제 등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반면, 개인주의에서는 창의, 능력, 성취, 개성, 도전 등을 바람직한 것으로 삼는다. 내용을 일견해보면서 상담자 자신의 모습은 물론이고 내담자의 마음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제는 상담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보다 심각하게 숙고하고, 보다 다양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한국적 상담기법이 개발되길 기대해본다.

< 참고문헌 >

금명자(2002 a). 청소년 내담자와 상담자의 상담에 대한 기대 차이 및 문화적 특성과의 관계,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14, 3, 529-546.

금명자(2002 b). 중년교사의 문화적 특성과 상담에 대한 기대, 한국심리학회 연차학술발표대회 논문집, 617-627.

금명자, 양미진(2001). 청소년과 부모의 내외통제성에 따른 상담에 대한 기대 차이,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13, 3, 75-94.

금명자, 이장호(1991). 우리나라 대학생의 상담에 대한 기대, 학생연구, 26, 1, 1-18.

유성경, 유정이(2000). 집단주의-개인주의 성향과 상담에 대한 태도와의 관계,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12, 2, 55-68.

이수원(1996).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넘어서: 문화와 인지: ‘타인 이해의 연구를 중심으로’에 대한 논평, 한국심리학회 동계 심포지움: 심리학 연구의 통합적 탐색, 188-195.

출처 : 행복 바구니
글쓴이 : 황금보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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