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학회사례에 대하여
장성숙/ 가톨릭대학교
이번 학회사례의 내담자는 우리사회에서 최하급 계층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담자를 상담하면서 상담자가 시종일관 성의를 갖고 따듯하게 임했다는 사실이 돋보인다. 아마 내담자는 따듯한 관계라는 것을 맛보았으리라고 여긴다.
그런데 이번 사례의 내담자는 정말이지 상담하기가 매우 어려운 대상이다. 매춘을 하던 여성으로 기관의 권유에 따라 상담을 시작했지만, 사실 내담자에게는 상담을 받아야 할 뚜렷한 목적이 불분명하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담자가 몸을 팔아 쉽게 돈을 벌던 사람으로서 깨어나고자 하는 강한 의지나 성취에 대한 다부진 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으려면 현실적으로 최소한의 기댈 곳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근거로 발돋움을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상담할 경우, 상담자는 실생활적인 차원에서 내담자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색해 그것을 도모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번 사례에서 아쉽게 여기는 점을 논의하자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첫째, 진단 및 평가와 전략 간의 불일치가 크다. 상담자는 임상진단으로 내담자가 심한 우울 증세를 보이며 성(性)과 알코올에 의존하는 경계선적 특성을 나타내고 분노조절의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발생학적인 역동진단으로 내담자는 어머니가 자살하는 것을 목격했고 아버지로부터 심한 폭력을 당했으며 청소년기에 가출해 아이를 낳아 기르다 다시 남자와 헤어져 업소에서 성매매를 하는 등 그야말로 최하의 생활을 하며 지냈다는 파악을 했다. 그리고 현재 내담자는 치료진단 차원에서도 탈성매매를 위한 센터 이외에 도움을 받을 만한 지지기반이 없고 학력 또한 초등학교만 졸업해 지적 열등감이 심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렇게 열악한 평가를 받은 내담자를 대상으로 상담계획을 세울 때 상담자는 아주 낮은 단계의 상담목표와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에 적합한 상담접근을 채택해야 한다. 즉, 하나하나 코치해주는 식의 접근을 펼쳐 내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상담을 할 때 비로소 더 이상의 악화나 붕괴를 막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당면한 호소 문제를 간과했다. 내담자의 내방 경위는 타인에게 상처 주는 언행을 해 탈성매매를 위한 지원센터로부터 상담을 권유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담자의 문제는 대인관계에서 사람들이 무서움을 느낄 정도로 분노조절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는 내담자를 돕기 위해서는 내담자가 특히 어떤 상황에서, 또 어떤 심정에서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지 아주 치밀하게 살펴야 한다. 보조금으로 이루어지는 단기상담에서 내담자의 전반적인 분노를 다루는 식의 방만한 접근은 곤란하다. 그렇게 하다가는 정말이지 밑도 끝도 없는 상담이 되기 일쑤다. 그런데 상담자는 따듯한 지지나 공감을 통해 이완을 돕는 식이었지, 상담을 받으러 온 계기를 초점화시키지 않았다. 설사 당면한 호소 문제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고 한낱 표피적인 것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출발점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셋째, 과거의 상처보다 자신감 증진에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 내담자는 상담을 하는 동안에도 자립을 준비하기보다 이 남자 저 남자를 사귀면서 덕을 보려다 오히려 이용만 당하고 있다. 이런 암담한 일들이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EMDR 기법을 사용하며 이완훈련을 실시했다. 과거의 상처를 희석시켜주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내담자에게 시급한 것은 내담자의 당면한 문제 즉, 공격적인 언행, 반복되는 임신중절, 아무 남자나 만난다는 것, 허황된 꿈이나 꾸는 의존성 등이다. 취약한 내담자를 대상으로 하는 단기상담을 할 때는 당장 필요한 현재의 문제를 다루어야지 과거의 상처를 다루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다시 말해, 과거의 상처 때문에 현재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관점보다는 거꾸로, 현재의 생활이 제대로 안 되니까 과거의 상처에 집착한다는 관점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에서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면 과거의 상처를 덮어두는 것이 사람들의 경향이다. 사실, 왕년에 상처를 겪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넷째, 공감에는 장점뿐만 아니라 병폐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담자는 근래에 들어 외로운 나머지 두고 나온 아들에 대한 궁금증과 죄책감 그리고 그리움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상담자는 내담자가 아이의 소재를 알고 있는지 등등의 세세한 탐색을 하기보다 ‘많이 보고 싶겠다.’는 심정에 대한 공감을 해주었다. 공감이 그 자체로는 매우 좋은 것이지만, 자칫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내담자처럼 경솔하고 상태가 불안정 할 때는 상담자의 공감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타당하다고 인정하는 줄로 오인하고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한참 자라나는 아이에게 생모라는 자가 느닷없이 나타나 얼씬 거리면 득보다 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두고 나온 아들에 대한 궁금함이나 그리움을 표현할 때는 어미로서 갖게 되는 모성애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을 하되, 아이의 장래를 위해 함부로 모습을 내 비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일러줄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그 아이에게 정녕 죄책감을 느낀다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하루 빨리 당당하게 서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성장을 위한 동력으로 활용하는 지략도 필요하다.
다섯째, 상담자의 개입이 온정적이긴 하나 원론적이었다. 상담 초기에 내담자는 자기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담에 대한 흡족함을 표현하며 적극적이었다. 사실, 새로운 것은 다 경이롭게 마련이다. 그러나 10회기에 와서는 “이런 상담을 계속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선생님이 좀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하고 있다. 12회기에는 2주 만에 오면서도 30분이나 늦게 오고, 14회기에서는 “상담을 하면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이 치료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는 회의적인 말을 한다. 그리고 17회기에서는 2주 만에 나타나 차비가 없어 못 왔다고 하면서 도중하차를 해버리고 말았다. 무엇이든지 시간이 흐르거나 익숙해짐에 따라 초기에 보였던 열의가 식게 마련이지만, 이 사례에서는 초기의 만족감이 급감했다. 세상의 때가 많이 묻어있는 내담자가 상담자의 순진한 태도에 실망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자기를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상담자의 태도에 처음에는 감격했지만 상담자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보다 그냥 유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니까 상담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상담을 효율적으로 하고자 한다면 상담자는 무엇보다 내담자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내린 다음 그 평가에 준한 처치(treatment) 즉, 내담자의 상태에 걸 맞는 접근이나 기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학회사례는 내담자의 상태와 상담자가 실시한 처치 간의 합치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이번 내담자처럼 제반 여건이 열악한 사람에게는 과거의 상처가 해소되면 스스로 현재의 난관을 잘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너무나 순진하고도 비현실적인 태도다.
그렇다면 내담자에게 당장 필요한 구체적인 것은 무엇일까? 이 내담자에게는 무엇보다 기댈 곳 즉,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출발점을 찾아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특히 이 내담자는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담자는 그가 허황된 꿈을 쫒기보다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의지하며 살도록 준비시켜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과업을 위해 이 내담자에게는 우선적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 용기와 자존심을 갖도록 해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의 처지나 분수를 인정하게끔 하여 자기와 근사치한 사람을 만나도록 돕는 것이 가장 실질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보다 심리적 이완에 초점을 두었던 이번 사례에서의 접근방식은 이 내담자에게 너무 고급스러워 상담성과를 내기가 어려웠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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