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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간 존재의 이해 제2장 인간과 관계맺음의 주체-(1) 관계맺음과 주체의 성격

반찬이 2010. 1. 14. 11:16

2. 인간과 관계맺음의 주체

 

 

(1) 관계맺음과 주체의 성격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인간을 몸과 마음의 구조로 이해하여 왔다. 몸과 마음의 구조에서 몸은 개체를 구성하고 있는 신체와 연관되어 있고, 마음은 신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신활동과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의 몸과 마음은 통합되어 존재하면서 대사·감각·지각· 생각의 단계에 따라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로 인해 개인이나 집단에 따라 몸과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어 왔다. 즉 어떤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모두 존재한다고 이해해 온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몸과 마음 중에서 어느 하나만 존재한다고 이해해 왔다. 또한 몸과 마음이 모두 존재한다고 보는 경우에도 어떤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다고 이해해 온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분리가 불가능하다고 이해해 왔다.

 

  개인이나 집단에 따라 몸과 마음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간을 욕구, 생각 등과 같은 특정한 성격을 중심으로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생각 작용'을 중심으로 인간의 마음과 몸을 설명하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감각 작용' 또는 '지각 작용'을 중심으로 인간의 마음과 몸을 설명하려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단순히 대사와 감각 작용에 바탕하여 살아가는 갓 태어난 영아의 삶에서 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구조, 지각과 생각 작용을 온전하게 형성하여 살아가는 청년의 삶에서 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구조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몸과 마음의 전체 구조 또한 매우 모호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생물학 생리학 심리학 등의 발달에 힘입어 사람들은 인간의 몸과 마음의 구조를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장구한 진화의 과정을 거쳐 대사 감각 지각 생각 작용이 일어나는 분화된 통합체로 발전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인간은 다양한 성격의 주체가 상호 긴밀한 관계 속에서 영향을 미치는 통합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흔히 인간이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형태의 삶을 말한다. 이런 관계로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주체성은 관점이나 상황에 따라 내용과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면 인간을 목숨의 주체로 파악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인간을 대사의 주체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인간을 윤리의 주체로 파악하는 것은 일차로 인간을 생각하는 주체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인간에게 주체라는 동일한 낱말을 사용하더라도 맥락에 따라 뜻하는 내용에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인간은 성장과 발달의 과정에 몸에서 마음이 분화하여 지각과 생각의 주체를 형성하면서, '몸'에 대비되는 독자적인 '마음'이 자리한다. 이는 성장한 식물의 몸에서 꽃이 분화하여 독자적인 열매가 맺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관계로 몸에서 마음이 분화하기 이전에 인간은 오로지 몸의 상태로 존재한다. 즉,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모태에서 새로운 개체를 형성하는 단계에서 인간은 하나의 세포로 구성된 '몸'으로서 존재한다. 이러한 '몸'으로서 태아는 존재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러한 태아는 대사 작용에 바탕한 세포분열을 통해서 몸이 빠른 속도로 성장-발달하게 된다. 그런데 태아는 몸에서 일어나는 대사 작용이 어머니의 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로 호흡이나 소화 작용조차 하지 않고 살아간다. 이로 인해 태아는 대사의 주체로서도 극히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 있다.

 

  태아는 성장-발달의 과정을 통해서 대사 작용에서 분화되어 나온 감각 작용이 기능하기 시작하면서 자극에 대한 반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태아에서 불 수 있는 감각 작용은 어머니의 몸을 매개로 자극에 대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아직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 이유로 태아는 감각 작용에 기초하여 몸에서 어떠한 요구가 발생하더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다. 태아는 몸에서 마음의 씨앗이 발아하게 되지만 신경체계가 작동할 수 없기 때문에 미숙한 상태고 남아 있다. 태아는 몸이 성장-발달하는 과정을 중추신경체계를 형성하여 마음이 분화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여, 출생과 더불어 독자적인 생명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초를 완성해 나간다.

인간은 모태를 벗어나 세상에 나옴으로써 대사와 감각 작용이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완전한 하나의 몸으로 자립한다. 이런 관계로 갓 태어난 영아는 삶에 필요한 것을 대부분 어머니에게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사와 감각 작용에 기초하여 살아가는 독자적인 '몸'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영아는 대사 작용에서 발생하는 필요와 감각 작용에서 발생하는 요구를 좇아서 살아간다. 예를 들어 갓 태어난 영아일지라도 대사 작용의 과정에 포도당의 수치가 떨어지면 감각하는 몸에 기초하여 음식에 대한 요구를 울음으로 표출한다. 즉, 그들은 '배에 위산이 분비되어 불쾌한 자극이 가해지면 울음을 터뜨린다. 이러한 요구에 어머니가 부응해 줌으로써 영아는 관계맺음에 대한 경험적 자료를 가질 수 있다. 이처럼 영아는 감각 작용이 독자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태아의 단계에서 발아한 마음의 싹이 성장-발전하여 점차 지각하는 마음으로 분화해 나간다.

 

  영아는 감각 작용에서 발생하는 요구에 따른 관계맺음을 '사태'로서 경험하게 되면서 지각 작용의 단계로 들어선다. 즉, 영아는 어머니의 얼굴과 같은 일정한 속성을 갖는 대상에 대한 경험적 자료를 기억하고 활용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지각하고 대응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지각 작용은 몸에서 발생하는 느낌을 매개로 구체적 사물의 세계와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형태로 존재한다. 인간은 영아에서 유아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지각의 세계가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는 동시에 유기적으로 통합된다. 이러한 과정에 유아는 자신의 몸을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서 다른 사물로부터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유아에게 '나'는 일차적으로 '나의 몸'을 뜻하는 까닭에 '나의 몸'으로부터 '나의 마음'을 분리해서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다.

 

  유아는 다른 사물과 구분되는 '나의 몸'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의 몸'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지각하는 마음을 통해서 특정한 대상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에' 대한 욕구(need)를 갖는다. 예를 들면 유아는 배가 고프면 마음에 이해된 어머니를 통해서 필요한 음식을 섭취하려는 욕구를 갖는다. 이러한 욕구의 발생과 충족은 '어떤 것에 대한' 요구를 발생시키는 몸과 그것의 충족을 위해 관계를 구성하고 실현하는 마음의 작용이 통합적 방식으로 관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로써 유아는 욕구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관계를 이해하고 구성하여 활용할 수 있다. 그들은 기어다닐 수 있게 되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당기고, 만지고, 빨면서 맛과 느낌으로 대상을 탐색한다.

 

  유아는 지각 작용에서 얻어진 사태에 대한 경험에 기초하여 사물을 상징적으로 다룰 수 있는 언어를 습득하게 되면서 점차 생각 작용의 단계로 들어선다. 이로써 유아는 몸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는 구체적 사물의 세계와 상징적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유아는 언어의 세계로 진입함에 따라 다른 사람과 공유 가능한 의미 맥락을 형성해 나간다. 이때부터 의미 맥락으로 짜여진 마음이 구체적 실제적인 몸으로부터 구분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유아는 이러한 마음에 기초하여 '~에' 대한 욕구를 '~에' 대한 욕망(desire)'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즉, 유아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경우에도 '식사'라는 낱말이 의미를 갖게 됨으로써 이러한 낱말에 부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배고픔을 충족시키려 한다. 이로써 욕망의 발생과 충족은 지각하는 마음에 욕구를 발생시키는 근거인 '감각하는 몸'과, 의미 맥락을 전제로 욕구의 충족에 필요한 관계들을 구성하고 작용하는 '생각하는 마음'이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인간은 주체의 성격이 대사·감각·지각·생각으로 달라지는 데 따라 주체의 관계맺음에 대한 동기 또한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주체의 성격이 대사·감각·지각· 생각으로 달라지는 것에 따라 주체의 관계맺음에 대한 이유도 필요·요구·욕구·욕망으로 달라진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이 대사의 주체로서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생체 활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을 흡수하거나 배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소화가 된다', '호흡이 어렵다', '배설이 쉽다', '발한이 많다'에서 소화·호흡·배설·발한은 대사의 주체가 수행하는 작용을 말한다. 인간은 대사의 과정에 생체 활동에 필요한 물질의 평형 상태를 벗어나게 되면, 대사의 주체는 본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에' 대한 필요(necessity)를 발생시킨다. 예를 들면 사람이 대사의 과정에 땀을 흘려 혈액의 농도가 짙어져 체액이 평형 상태를 벗어나게 되면, 대사의 주체는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수분'에 대한 필요를 갖는다. 이러한 필요는 결핍된 물질을 공급함으로써 결합과 분리 같은 방식으로 충족되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필요성이 충족되는 과정은 대부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대사의 과정 가운데 일부가 감각이나 지각 작용을 통해 마음에 드러남으로써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관계맺음을 지향한다. 이처럼 대사의 과정이 마음을 통해서 밖으로 드러난 필요를 충동(drive-urge)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음식, 이성, 보온, 수면 등에 대한 강한 충동을 갖고 있다. 충동은 마음을 움직여 몸이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드는 동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까닭에 어떤 사람들은 충동을 생명을 유지시키는 원초적 힘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둘째, 인간이 감각의 주체로서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주어진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몸이 아프다', '눈이 부시다', '이가 쑤신다', '등이 가렵다', '다리가 저리다'에서 몸·눈·이·등·다리는 감각의 주체를 말한다.감각의 주체는 자극에 의해 안정 상태를 벗어나 흥분하게 되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에' 대한 요구(demand)가 발생한다. 이러한 요구는 원인이 된 자극을 제거하거나 차단함으로써 불안정한 상태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자극과 연관된 다양한 변수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를 해소하는 데 복잡한 성격을 띤다. 이때 감각의 주체에게 관계맺음에 대한 요구를 발생시키는 자극이 내부에서 발생할 수도 있고, 외부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즉, 인간은 장시간 식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내부 자극으로 공복감이 발생할 수도 있고, 갑자기 강력한 빛에 노출됨으로써 외부 자극으로 작열감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감각 작용의 단계에서는 지각이나 생각 작용이 관계하지 않기 때문에 자극을 유발하는 대상이 구체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존재한다. 자극에 대한 반응은 '어떤 것'에 대한 수동적 관계맺음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즉, 공복감이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배가 쓰리고, 작열감이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눈이 감긴다. 이때 배나 눈은 몸이기 때문에 자극을 느낄 수 있을 뿐, 자극을 유발하는 대상을 이해할 수 없다. 배가 쓰리고 눈이 감기는 것은 특정한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느낌에 따라 이루어지는 수동적 반응이다. 이 때문에 인간이 단순히 감각의 주체로서 대상과 관계를 맺게 되면 대상을 의식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대상의 의식은 마음이 개입하여 자극에 대한 반응의 대상을 '이것' '저것' '그것' 등으로 구체화함으로써 가능하다.

 

  셋째, 인간이 지각의 주체로써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감각 작용을 통해서 얻어진 경험적 자료를 활용하여 사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로써 인간은 감각 작용의 단계에서 발생한 '~에' 대한 느낌을 마음을 통해서 사태에 대한 관계를 이해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새로운 관계를 구성해서 능동적 실현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인간은 마음에 기초하여 사태를 이해하고 대응하려는 '~에' 대한 욕구를 갖는다. 이러한 욕구는 구체적 사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욕구의 발생과 소멸이 오로지 사태에 의존한다. 예를 들면 인간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지는 것은 사태에 따라 욕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관계맺음이 단순히 욕구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욕구의 발생과 소멸이 완결성을 지닌다. 화장실에 가서 배설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면 더 이상 욕구를 갖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인간이 단순히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완전한 충족이 가능하다. 그런데 욕구의 주체는 구체적 사태에 의존하여 욕구를 충족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태를 좇아서 대상과 일방적으로 관계를 맺으려는 성질을 갖는다. 욕구의 주체가 관계맺음을 달리하는 이유는 지각된 사태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사태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욕구의 주체를 움직일 수 있다. 즉, 어머니가 유아에게 과자를 보여줌으로써 음식에 대한 욕구를 유발하여 유아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아가 음식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는 어머니가 조성한 환경이 과자에 대한 욕구를 유발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넷째, 인간이 생각의 주체로서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지각작용을 통해서 얻어진 경험적 자료를 언어라는 상징체계에 바탕하여 관념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지각 작용의 단계에서 사태에 근거하여 발생한 '~에'에 대한 욕구를 관념의 전체적 맥락 속에서 추상적 방식으로 이해하고 실현하는 '~에' 대한 욕망으로 전환시킨다. 욕망은 구체적 관계를 벗어나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확대와 축소가 가능하다. 이로 인해 인간은 무한히 부풀려진 욕망에 노예처럼 끌려갈 수도 있고, 무한히 축소된 욕망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욕망은 '나'와 '너', 그리고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생각의 세계 속에서 문화의 전체적 맥락을 좇아서 구성되기 때문에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 까닭에 욕망의 충족은 맥락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호응하는 정도에 의존하게 되어 완전한 충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와 함께 욕망은 생각의 세계에 바탕하여 언제나 지금의 상태를 넘어선 더 나은 상태, 즉 미래에 대한 계획을 지향하기 때문에 초월적 성격을 갖는다. 욕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까닭에 인간이 미래에 대한 전망을 포기하는 순간까지 욕망은 계속 관계를 확대하여 나간다. 욕망은 확대된 시공 속에서 발생하는 '역사-문화적 필요(historical-cultural need)'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인간의 마음을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의 전체적인 계획으로 통합하는 욕망을 통해서 역사 속에 담겨진 모든 것을 주관하는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인간은 주인으로서 있음과 없음, 진실과 거짓, 옳음과 그름, 선함과 악함 등을 경계지어 구분하는 가운데 '나'와 세계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면서 '사물의 세계'와 구분되는 '나의 세계'를 자아로서 형성한다. 이런 까닭에 욕망은 언제나 ‘나’라는 주어(subject)를 갖는 문장의 형식으로 구성되고 표출된다. 인간이 ‘나’라는 주어를 생략하는 까닭은 욕망이 드러나는 것을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구성하는 모든 문장은 언제나 욕망을 끌고 다니는 관계로 문장에서 완전히 제거하려는 시도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이 마음에 바탕하여 능동적으로 관계맺음을 구성하고 실현하는 것을 지각과 생각 작용에서 형성된 욕구와 욕망에 따라서 이다, 감각 작용의 요구는 욕구나 욕망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몸을 통한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끝나기 때문에 마음의 실체로서 역할하지 못한다. 인간은 마음을 통해 요구를 욕구나 욕망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지각과 대응, 생각과 실천이 가능하다. 이로써 인간은 몸에서 분리된 마음으로 능동적으로 관계를 구성하고 실현할 수 있게 되어 ‘나의 몸’이 ‘나의 몸’과 관계를 맺도록 하고, ‘나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인간은 ‘나의 손’이 나의 ‘나의 얼굴’을 씻도록 할 수 있으며, ‘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을 꾸짖도록 할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인간은 마음을 욕구와 욕망의 통합체로 동일시하는 일이 많다.

 

 

  <욕심>

  인간은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욕구와 욕망의 형성과 실현을 '욕심(waning mind)'으로 통합하여 부른다. 욕심은 주체가 특정한 상태에 대한 관계맺음을 지향 ․ 계획 ․ 실현하고 있는‘동적 상태(dynamic state)'를 말한다. 욕심은 주체가 대상을 설정하는 방식에 따라 마음의 다양한 동적 상태들, 즉 호기심 ․ 경쟁심 ․ 반항심 ․ 질투심 ․ 시기심 ․ 존경심 ․ 경외심 ․ 자긍심 ․ 자만심 ․ 자립심 ․ 의타심 ․ 의존심 등을 유발한다. 이러한 상태들에 기초하여 생각의 주체는 소유욕 ․ 물질욕 ․ 명예욕 ․ 수명욕 ․ 출세욕 ․ 초월욕 등과 같은 욕심을 구체적 관계맺음으로 드러낸다. 이러 점에서 일반적으로 인간을 마음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욕심의 주체가 됨으로써 관계맺음에 대해 능동적으로 관여하게 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인간에게 대사․ 감각․ 지각․ 생각의 주체에 의한 필요 요구․ 욕구․ 욕망은 상호 영향을 미치는 관계에 있다. 예를 들면 대사의 과정에서 필요한 감각 작용을 통해 요구로서 변형되어 지각에 따른 욕구나 생각에 따른 욕망을 유발하는 일차적 원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어떤 사람이 일상적으로 커피를 마심으로써 카페인에 중독되어 있는 경우에, 대사의 과정에서 카페인의 농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카페인에 대한 필요가 발생하게 되고, 감각 작용을 통해 자극에 대한 반응방식으로‘어떤 것’에 대한 요구를 지각의 마음에 발생시킨다. 이러한 요구는 지각의 마음을 충동하여 능동적으로 사태를 이해하고 지향하는 욕구를 발생시키지만, 요구의 대상이 아‘어떤 것’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관계맺음을 이루지 못한다. 그가 지각 작용을 통해 사태를 파악하면서 어떤 것에 대한 요구가 커피’라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욕구인 것을 이해하게 되면, 생각 작용에 기초하여 그러한 대상에 대한 관념의 맥락을 구성하면서 욕구의 충족에 필요한 구체적 관념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욕망에 기초하여 커피를 끓여 마심으로써 대사의 작용에 의하여 발생한 카페인에 대한 필요를 해소시켜, 감각에 따른 요구와 지각에 따른 욕구를 충족시킨다.

 

  이렇게 볼 때, 대사 작용에서 감각 작용 ․ 지각 작용 ․ 생각작용에 이르는 모든 것이 몸과 마음의 전체적인 관계 속에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마음이 몸을 초월하여 관계를 구성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몸을 벗어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몸을 초월하여 관계를 구성할 때도 언제나 몸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만약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단순한 이분법으로 몸과 마음을 분리하여 근거를 달리하는 것처럼 설명한다면 문제가 많다. 이렇게 되면 인간이 몸에서 분리된 마음을 다시 이성과 감성으로 구분하여, 마음의 본질을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불합리한 사태가 빚어진다. 몸과 근거를 달리하는 마음에 몸에 근거한 감성이 본질로서 자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몸과 마음이 놓여 있는 상호의존적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출처 : 사색의 숲
글쓴이 : 심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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