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종말론과 구원론상의 문제점
종말론과 구원론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된다. 나주 메시지에서는 ‘이 시대의 메시아’인 율리아가 하느님의 징벌을 연기시켰다고 한다. 이는 신관과 종말론 그리고 구원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맞지 않다.
예수님과 성모께서는 불쌍한 죄인들을 회개시켜 구원하시려고 율리아를 어린 시절부터 미리 준비시켰다고 한다(1987.3.13). 그래서 율리아는 성모님과 예수님의 명을 받들어 세상 온갖 죄인들,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보속고통을 받고 있으며, 나아가 인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성모님의 고통까지도 대신하여 받고 있다고 한다. 율리아가 이 시대 우리의 구원을 책임진 메시아인 것이다. “네가 전하는 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영혼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너를 배척한 사람은 나를 배척하는 사람이며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배척하는 것이다.”(1995.6.18)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대한 징벌에 대해 미리 율리아와 상의하시고, 율리아 때문에 연기하셨다(1995.6.16)고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인간들의 회개와 사랑의 실천 그리고 율리아의 기도와 대속 고통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지금 징벌을 내려도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율리아가 “예” 라고 대답했다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멸망시켰을까? 이 메시지의 함의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멸망시키시기 전에 그 의도를 밝히고 인류를 대신하여 간청하는 간구를 들어주시어 그 계획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일은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이나(창세 18,16-32) 모세(탈출 32,7-14.30-35) 말고는 없었다. 따라서 율리아가 이들의 반열에 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대단한 교만이나 무지의 소치라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구세주가 아니었으며 그의 삶과 언행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가리키셨다. 성모님의 역사상 발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성모님은 결코 중심에 서고자 하신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율리아는 스스로 구세주의 자리를 취하는 결정적인 우를 범하고 말았다.
또한 ‘그 날과 그 시간은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이 아신다.’(마태 24,36)고 했다. 아버지만이 아신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인간의 타락 때문에 세상의 멸망을 앞당긴다는 말도 아니고, 또 의인들 때문에 연기한다는 말도 아니다. 그와 관계없이 하느님께서 때가 되면 하실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뜻에 따라 세상을 벌하시는 것이 아니다. 창조와 종말은 하느님의 일이다. 더군다나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의하면 종말은 징벌이 아니라 세상의 완성으로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이며, ... 그 시간은 하느님만이 알 수 있다.” 그런데 나주 메시지의 구원론과 종말론은 율리아 때문에 징벌을 연기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종말을 종말론적 의미로서의 완성이 아니라, 인류의 마지막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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