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기적에 대한 현상과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성체가 위에서 내려왔다는 것, 둘째, 미카엘 천사가 어느 감실에서 그리고 죄 중의 사제에게서 성체를 빼앗아 왔다는 것, 그리고 셋째, 율리아가 영한 성체가 입안에서 살과 피로 변했다는 것이다.
첫째, 교회는 미사 중 사제의 축성을 통해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실체변화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이 경우는 미사 밖에서 이루어진 일이니 ‘성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를 ‘성체’라고 공경하는 것은 오히려 ‘성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성모께서 미카엘 천사를 시켜 죄 중의 사제에게서 성체를 빼앗아 왔다는 주장은 교리상의 문제가 있다. 죄 중에 있는 사제가 집전하는 성사가 유효한가의 문제인데, 일반 교우들의 심정에서는 유효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기에 이런 메시지가 주장되고 유통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교회는 오랜 고뇌 끝에 성사의 사효성(事效性: ex opere operato)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성사는 그것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의로움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가톨릭 교리서?, 1128항) 이 교리는 7성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제정하셨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예수님의 도구이며, 진정한 제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사성제가 유효한 것은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흠이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미사성제의 진정한 제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힘입어’ 그러하다. 만일 성사의 사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매번 성사에 참여할 때마다 교우들은 그 성사의 유효성 때문에 번민하게 될 것이다. 결국 교회는 교우들의 영적 선익을 위하여 근본적인 차원에서 성사의 유효성의 근거를 인간에게 두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 두는 교리를 확인하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율리아는 ‘죄 많은 사제에게서 빼앗아 온 성체를’ 죄 없는 사제에게 넘겼다고 주장하였다. 율리아에게서 성체를 받은 그 사제가 죄가 없다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결국 이런 주장은 사제단을 분열시키고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 윤리적인 완벽함 위에 세우는 우를 범하게 할 뿐이다. 사도 바오로의 주장대로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행실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물론 ‘죄 많은 사제’에게서 성체를 빼앗았다는 주장은, 성체성사의 지고함을 상기시키며,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마땅히 죄에서 정화되어야 한다는 엄중한 꾸짖음으로 여겨져서, 충분히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그러나 이런 직설적인 꾸짖음은 대단히 인간적인 표현이며 성경의 예수님과 성모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죄 많은 사제’가 무심하게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또 얼마나 ‘죄 많은’ 교우들이 무심하게 성체를 받아 모시는가! 그래도 자비하신 하느님은 지금껏 죄 중에 성체를 영하는 교우에게서 성체를 빼앗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죄를 용서해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마태 26,28)를 성찬례에서 주신다. 하느님의 교육 방식은 인간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은 죄인이라 하여 그의 권리를 박탈하는 무자비한 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죄많은 여인(루카 7,37-50),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요한 8,3-11), 가출했다가 돌아온 아들(루카 15,20-21), 그리고 세리 자캐오(루카 19,1-10)에게 결코 죄를 묻지 않았고 오히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루카 7,48)라고 선언해주신 분이시다.
또한 율리아가 주장하는 대로 성모께서 미카엘 천사를 시켜 죄 중의 사제에게서 성체를 빼앗아 율리아에게 주고, 이를 다시 교황대사에게 주어 분배하도록 하셨다는 것은 율리아가 직무사제의 기능을 대신할 뿐 아니라, 교황대사보다 더한 위치에 서 있음을 주장하는 말로서 교회의 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인간적으로는 가상한 생각이지만 사랑이신 주님의 가르침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오히려 회개로 이끄는 긍정적인 죄의식이 아니라 절망으로 인도하는 부정적인 죄의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즉 스승을 배반한 유다가 부정적인 죄의식으로 인해 하느님을 무자비한 분으로 생각하고 나 같은 죄인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며 절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처럼, 조그마한 죄에도 크게 상심하고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만 생각하여 하느님을 멀리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율리아가 모신 성체가 입 안에서 살과 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도 앞 선 사례들처럼 의심의 여지가 있다. 같은 하나의 미사에서 여러 사람이 성체를 받아 모셨는데 유독 율리아가 모신 성체만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특정한 변화사건을 통해서 뭔가를 제시하려고 했다면 변화된 그 ‘살’을 보존하여 증거로 삼아야지 왜 먹어버렸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이는 하나의 사술(詐術)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진위여부를 떠나 신자들에게 성체성사 교리에 대해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사제가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를 축성함으로써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로 실체변화 하지만 여전히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성체성사 교리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76항. 1412항. 1413항.).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당신 살과 피를 직접 떼어서 주신 것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이 사라지고 그 외형이 다른 실체(살과 피)로 변한다면 그것을 성체라고 할 수 없다. 예수께서 그렇게 직접 살과 피로 주신다면 굳이 성체성사가 왜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이는 과거 교회역사에 있었다는 성체기적(예, 8세기 란치아노 성당의 성체기적)과 관계없이 성체성사 교리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이 교도권의 선언이다(참조; 제1차 공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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