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종교, 이단 조심/안티-나주성모상(이단)

나주 윤율리아 메시지가 가진 신학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1)

반찬이 2010. 5. 30. 22:56

① 마리아론의 문제점

율리아를 통해서 성모님께서 말씀을 하셨다고 주장하는 나주 메시지에는 마리아론적인 관점에서 문제가 많다.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 알고 있는 마리아와는 너무도 다른 마리아이기 때문이다.

  첫째, 마리아 중심인 예수님과 성모님의 관계

나주 메시지에서 예수님과 마리아의 관계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예수님이 아니라 마리아다. 이는 성경과 교리에서 가르치는 바와 상충된다. 예수님은 메시지를 주실 때마다 항상 어머니를 언급하고 있다. 어머니를 언급하지 않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거의 없다. 문제는 언제나 마리아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마리아의 대변인, 보조자, 마리아의 말과 행위를 미리 알려주거나 나중에 보증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멀지 않아 내가 내 어머니와 함께 너희 각 사람에게 갈 것이다... 그러니 어서 잠에서 깨어나 내 어머니를 통하여 나에게로 오너라.”(94.4.3) “한국의 남북 정상회담을 누가 주선했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바로 내 어머니 마리아다.”(2000.6.13) “아! 외롭고 슬프구나. 감실을 마련해달라고 내 어머니께서 그렇게도 간곡히 부탁을 하셨건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셨기에 대천사 미카엘을 시킨 내 어머니의 뜻에 따라 위격적이고 신격적인 나의 현존 그 자체인 성체를 통하여 내가 한국 나주에 온 것이다.”(2000.11.2)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속의 마리아는 철저하게 ‘제자됨’을 보여주셨다. 마리아는 성전에서 잃었던 어린 아들을 찾았을 때,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몰랐느냐’는 아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41-52 참조). 또한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을 가리키며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6-50) 라고 하셨다. 마리아는 어머니이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였다. 마리아는 듣고 간직하는 사람이었지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런데 나주 율리아의 메시지에서는 예수님이 성모 마리아를 두둔하는 변호인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주객이 전도되는 이런 모습은 신앙의 희화화에 지나지 않아 메시지의 상당 부분이 율리아의 상상력의 소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둘째, 존경받지 못해서 불평하시는 마리아

성경 속의 마리아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시고 세상의 아픔과 고통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런데 나주 율리아가 전하는 성모님은 스스로 존경받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시고 불평하신다. 이 부분도 율리아의 심리적 투사와 객관적인 메시지를 혼동케 하는 요소가 된다. “모든 이로부터 존경을 받아야할 내가 천대받고 버림받고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제 멋대로 함부로 들었다 놓았다 하며 나를 외면해 버리고 있으니 내 마음이 몹시 슬프다. 어서 나를 도와다오.”(1988.2.4.) “하늘의 여왕으로서 존경받아야 될 내가 지금 지상 자녀들의 분열과 혼란 때문에 많은 희생과 고통과 눈물로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도와다오.”(1990.10.4.) “내가 언제까지 이리저리로 옮겨 다녀야 된단 말이냐. 어서 서둘러 내 아들 예수의 대리자인 사제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는 내 집을 마련해다오.”(1997.8.15.)

  셋째, 나주 율리아의 성모님은 성경말씀이나 교회의 가르침보다도 나주 메시지를 인정받아 전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계시하시는 듯 하다. 성모께서 곳곳에서 눈물과 피눈물로 호소하는 것은 죄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나주 메시지가 인정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성모께서는 그 무엇보다도 나주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전파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아무리 좋은 글도 알리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어서 퍼뜨려라.”(1995.6.19) 심지어는 메시지 인준과 성모경당에 감실을 설치하고 미사를 거행할 수 있도록 ‘주교와 타협하라.’(1989.2.23)는 메시지까지 주셨다. 교황청에서 교황비서가 찾아왔을 때는 인준을 호소하면서도, “나의 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주님께서도 어쩔 수 없으신데 낸들 어쩌겠느냐? 사울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너희는 알지?” 라고 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은근히 협박까지 하셨다(1997.7.13). 이것이 과연 성모님의 메시지인가?

  이천여 년의 가톨릭 교회 역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는 다섯 가지다. 하나,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시다. 둘,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시다. 셋, 마리아는 원죄없이 잉태되셨다. 넷, 마리아는 승천하셨다. 다섯, 마리아는 구원의 중개자이시다. 교회가 이런 가르침을 통해 마리아를 공경하는 최종 목적은 구세주 예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마리아가 원죄없이 태어나고, 평생 동정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위한 깨끗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이다. 즉 예수님 때문에 그리 된 것이다. 마리아가 구원의 중개자라는 선언은 마리아가 직접 구원을 중개한다는 뜻이 아니다. 구원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에 마리아가 참여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마리아에 대한 교리는 모두 마리아가 중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며, 또한 예수님과의 관계 때문에 그런 교리가 선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주 메시지 속의 마리아는 여신(女神)의 위치에까지 올라가 있다. 이는 잘못된 성모신심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