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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혼입(混入)

반찬이 2010. 6. 7. 10:36

혼입이라는 개념은 심리연구법에 나오는 중요한 용어이다. 즉 모든 과학적 연구는 변인 사이의 인과적 관계를 실증적으로 밝혀내는 것이 목적인데, 인과성을 확증하기 위해 연구자는 독립변인을 보다 순수한 형태로 정제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자 의도와는 달리 제3의 요소가 독립변인 속에 함입되면 종속변인에 나타나는 결과치가 조작된 독립변인에 이한 것인지 아니면 혼입요소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되며 만약 독립변인 속에 다른 변인요소가 혼입되면 그 독립변인은 오염되었다 말하고 함께 연결된 종속변인의 결과치는 타당한 값으로 받아들어지지 못한다.

 

이같은 혼입의 문제는 많은 연구설계로 하여금 실패로 돌아가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예비 연구자는 그 개념을 분명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상담의 연구방법'(박영사)라는 책을 보면 연구의 '혼입'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예시가 나온다.

 

이 책을 보면 성경 다니엘서 1장에 언급된 당시 느브갓네살이 통치하는 바벨론에서 왕의 통치를 돕도록 하기 위해 뛰어난 인재를 유대청년 중에서 선발하는 이야기가 언급된다. 해당 이야기는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환관장이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기에 앞서 그들의 건강을 위해 얼마간 왕의 진미를 먹이려고 하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만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즉 이들은 굳이 왕의 진미(가령, 포도주와 음식..)가 아닌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겠다며 진미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환관장은 이들의 건강상의 문제를 염려하여 왕의 진미를 고집하였고 이때 다니엘은 한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즉, 열흘 동안 왕의 진미를 먹은 이들과 채식 식사를 한 무리의 얼굴을 서로 비교한 다음 그 결과대로 처리하길 환관장에게 부탁하였다. 결과는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이다.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그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상담의 연구방법 저자들은 다니엘의 사례를 통해 과학적 실험연구 설계의 핵심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서 위의 스토리는, 왕의 진미를 열흘 동안 먹었던 청년 집단과 채식과 물만 먹었던 다니엘과 세친구 집단을 각각 대조군과 실험군으로 놓고 얼굴의 빛과 용모의 아름다움,신체적 건강상태를 종속변인으로 설정한 매우 뛰어난 실험계획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위의 책을 읽고 있던 나는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다니엘과 세친구의 빛나는 얼굴과 생기가 단지 채식과 물에 의한 것일까? 물론 다니엘서 1장에 그들이 채식과 물 이외에 다른 것을 먹었다는 언급은 없다. 하지만 성서의 다른 곳에 위 실험과 관련된 참고할만한 내용이 있어서 소개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의 의와 희락과 화평이라'

 

만약 이같은 성경 구절이 담고 있는 의미가 옳은 것이라면 다니엘 시대에도 동일한 진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실험에서 다니엘과 세친구의 뛰어난 얼굴 빛과 용모의 특성은 음식이라는 처치가 아닌 또다른 요소가 '혼입'되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추측컨대 그것은 '성령 안에서의 의,희락,화평'일 것이다.) 물론 성령 안에서의 의,희락,화평이라는 요소가 얼굴 빛에 관련된 실재하는 요인이라 할지라도  조작적으로 정의하기가 퍽 어려운데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성령안에서'라는 용어와 그 성격의 추상성 때문에 그렇다.

 

아무튼 이와같은 혼입요소를 파악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시말해서 위의 추론이 맞다면 어쩌면 바벨론의 그 환관장은 채식과 물이야말로 얼굴 빛을 좋게 만드는 '유일한' 조건으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요인은 음식,얼굴빛 등 밖에 없으니까...

 

 얼마전 언급했던 한국사회의 비정상적인 교육열 관련 글에서 '올바른 교육열'과 '오도된 교육열'을 구분하는 변인 또는 척도를 정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했는데  필자가 보기에 해당 문제의 어려움은 위에 소개한 다니엘의 실험 사례에서 추리된 '혼입'의 문제 때문으로 생각된다. 다시말해서 얼굴 빛이라는 종속변인이 음식섭취라는 독립변인(혹은 처치변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가정할 수 있듯이, 학생의 높은 시험성적(=명문대입학=출세)라는 종속변인은 교과공부라는 독립변인에 의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표면적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교과와 그 이론' 밖에 없다. 우리는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다시말해 공교육과 사교육을 망라해 주로 이론적 교과공부를 한다. 그러나  다니엘의 실험에서 가정했던-의,희락,화평- 혼입요소가 실재하고 또 중요한 것이었다면, 학교공부에서도 유사한 종류의 혼입요소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일반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와 성서를 완전히 동일한 수준에서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으나 성서의 가치와 의미에 에 대한 성서의 언급: '모든 성격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와 유사한 가치가 학교의 교과에도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만약 위 가정이 맞다면, 요사이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교육열풍의 문제는 교과에 내재된 '혼입'요소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순히 교과 혹은 文字의 암기를 통해 얻게 되는 모종의 이익만을 추종하는 학부모들의 오해(?)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아닐까 싶다. 다시말해 교육을 향한 우리의 맹목적인 열성은, 그 옛날 바벨론의 다니엘 실험에서 얼굴이 빛나던 그 유대청년들의 조건을 단순히 '먹는 문제로만'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한 종류의 오해로 빚어진 문제는 아닐까?

 

 

끝으로, 앞서 소개한  바벨론 실험을 '오해의 입장'에서 전개한 픽션을 아래에 소개하면서 글을 맺을까 한다. 그리고 여기에 소개한 내용은 이번 학기에 수강한 남종호교수님의 '논문연구'와 지난 학기 들었던 통계 및 연구법'에 대한 일종의 수강소감인 셈이다. 두 분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하녀: "...공주님, 요사이 바벨론 제국  귀부인 사이에서 은밀히 유행하는 미용법이 있어 소개해 올리옵니다. 이  미용술은 왕궁 환관장의 실험으로 확증된 것이온데, 실험에 참여한 유대 청년들의 빛나는 용모가 그 미용술의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라 하옵니다.  미용술의 포인트는 궁의 포도주와 진미를 절식하고 오직 채식과 물만을 음용하는 매우 간단한 방법입니다.."

 

공주: "나도 그 눈부신 청년들을 보았어..이토록 단순한 방법이 그토록 놀라운 효과를 낸다니 참으로 믿기지 않아.."

 

하녀: 그 뿐만이 아니옵니다. 새로운 미용법의 비밀을 통해 이익을 보려는 몇몇 귀족들이 제국 산하 농장의 각종 농산물을 대량 매입하고, 티그리스과 유프라테스의 강물을 소포장 판매하려한다는 소문도 있사옵니다.."

 

공주: "야채와 물이 미용에 결정적 도움이 된다니..어서 어서 가져와봐요! 아 그리고 경제장관도 불러 줘. 바벨론 제국의 새로운 수종사업으로 제안하는거야.. 어때 나의 생각이?"

 

하녀: "놀라운 제안입니다. 하지만 보다 먼저 그 유대청년들과 대화를 나눠보시면 어떨까요? 과연 채식과 물밖에 없었는지...물과 채식이 결과의 절대적 조건이었는지 물어보시는 겁니다."

 

공주: " 그래..사려깊은 생각이야. 우선 그들을 만나봐야겠어"

출처 : 가톨릭대 상담심리 대학원 원우회
글쓴이 : 상담19기홍성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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