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이었습니다. 제가 가게를 하고 있어서 항상 12시 넘어서 들어오면 맞벌이를 하는 아내가 자고 있기를 바라지만 아내는 또 그녀 나름대로 남편 기다린다고 잘 자지 않고 tv를 보고 있거나 책을 보고 있습니다.
그날은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tv를 보고 있다 저를 맞이 하면서 살짝 미소를 날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가 기분이 좋은가 싶어 간큰 남자가 되어 "여보 나 배고프니까 먹을꺼 좀 챙겨주라. 샤워하고 올께 알아제" 말하고 샤워하고 나왔습니다.
같이 식탁에 앉아서 빵이랑 우유랑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아내가 대뜸 조금전에 본 tv프로그램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내용은 '간건강'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사뭇 진지하기도 하고 비감하기도 한것이 좀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아내는 B형간염보균자입니다. 아마 그놈의 바이러스가 아내랑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함께 생활해 왔지만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인 적도 없고 저 역시도 건강한 아내를 의심해 본 적이 별로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이것을 쉽게 볼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보험회사에서 아내의 보험가입을 거부 당할 때부터 였습니다.
쉽게 지치며 감기나 어디가 아파도 약물을 섭취하지 않고 이겨내며 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같은 것은 먹지 않으며 또한 술,담배도 하지 않는 아내이기에 좋은 간건강을 유지 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게다가 몇년전부터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기 시작하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전 나름대로 정상인으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인 줄 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참 무심했습니다.ㅜㅜ
식탁에서 아내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여보 이제 나 만성간염에다가 간경화초기래" 사실 간경화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잘 몰라서 제가 "정말 않 좋은거가? 많이 안좋나 지금" 라고 물었더니 " 간에 주름이 간건데 관리만 잘하면 괜찮아..근데 아까 TV보니까 30년을 간염으로 고생한 아주머니가 나왔는데 결국은 자식의 간을 이식받아서 회복되는걸 봤는데 그 아주머니의 마음을 알겠더라고. 나는 우리 애들 배에 흉터내면서 그렇게 못하겠던데 ㅋㅋ" 라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습니다.
그래서 "하여튼 자기는 참......걱정마라 내 간이고 콩팥이고 항상 자기를 위해서 건강히 잘 준비해 두고 있으니까 언제든 떼줄께 알았제. 글코 애들 배에 흉터 좀 나면 어떻노 그게 뭔 대수라고 그게 걱정이고." 그랬더니 또 아내는 "만약에 자기 새장가가면 좋겠네 자기는..내 보다 예쁜 여자 만나라 ㅎㅎ." "내는 이쁜여자 만나서 새 인연 맺고 싶은 마음 1%도 없으니까 그런 걱정하지 말고 우리 잘먹고 잘살자 알았제 ㅋㅋ" 라고 했습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그 시간 이후로 제 머리속에는 '간경화초기'라는 말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피검사 후 의사선생님으로부터 간수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날이 안좋아지는 것에 대해서 아내는 얼마나 속으로 그 아픔을 혼자서 삼켜야 했을지를 생각해보면 ' 바보멍청이 같은 남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통을 나눠고 아픔을 서로 보살펴야 했는데 정말 까마득하게 모르고 '만날 음식이 너무 싱겁다는 둥 설겆이 좀 쌓아두지 말라는 둥 하면서 짜증을 부렸던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저의 일상은 점심먹고 가게에 나갔다가 12시 넘어서 들어오기 때문에 오전시간은 잠을 자거나 게임을 했는데 이제 좀 변하려 합니다. 한동안 싱크대를 멀리 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며 그곳을 좋아해 보려 합니다. 사실 아내는 음식만드는게 취미(?)가 없습니다. 맛 내는데도 재주가 부족하고 새로운걸 해보려는 의지가 부족한걸 보면 취미(?)가 없는게 확실합니다. 뭐 사실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아내가 별로 관심없고 잘 못하는 요리를 제가 좋아하기 때문에 잘 하는 사람이 하면 그만입니다.
월요일엔 돼지김치찌게, 화요일엔 닭볶음탕, 수요일 오늘은 아침 일찍 수산시장에 가보니 홍합이랑 꽃게가 싱싱허니 날 드셔요 하기에 바로 사와서 홍합꽃게탕(?)을 끓였습니다. 무우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푹 우려내고 잘 씻은 홍합을 약간 데친 후 꽃게 한마리랑 홍합을 넣고 푹 끓였다가 청량고추랑 파를 총총 썰어서 넣어주고 다시 끓여주니 국물이 시원한 탕이 완성되었습니다. 저녁에 저는 가게에 있기에 퇴근하고 오는 아내와 아이들이 제가 끓인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참 기분이 좋아지는 일상 중의 하나입니다.
일요일 이후 '아내가 그렇게 건강하지 않구나'라는 인식이 머리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좋은 남편,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단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십일년을 별로 싸울 일 없이 아이들도 잘 자라고 무던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이번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항상 내 곁에 있을걸로 착각하지만 언제나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날 일요일 새벽 식탁에서 아내랑 마주앉아 약속했던 한가지 인 '올7월 여름휴가 땐 반드시 한라산을 우리가족 4명이서 손잡고 오르자'는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 지금이 저녁 7시 45분입니다. 집에 밥 먹었는지 전화해보니 애들이랑 밥먹고 있다고 합니다. 애들이 게 한마리를 가지고 서로 많이 먹겠다고 난리라 하네요 ㅎㅎ 두 마리를 넣었어야 하는데....... 매워도 맛있다고 홍합을 찾아먹는 걸 상상해보니 기분이 훈훈해집니다. 오늘 저에게 좋은 답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사랑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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