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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담자가 될 것인가?

반찬이 2010. 11. 6. 14:17

어떤 상담자가 될 것인가? 

 

이민식   심리학 박사(마음사랑상담센터 대표)

 

 

 

필자가 상담이라는 것을 처음 하기 시작한 지가 25년이 되어 간다. 그 기간 중의 삼분의 일은 공부하고 수련받는 시간이었고, 나의 직업적인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했던 시기였다. 그때도 그렇고, 나중에 직업적으로 상담자가 되어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도 내가 어떤 상담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점점 자신이 생긴다기보다 점점 더 조심스럽고 무엇이 한계인지를 더 잘 느껴가고 있다.

 

이 글을 의뢰받으면서 나 자신이 스스로 이런 글을 쓰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먼저 고민하고 겪어온 사람으로서 이 기회에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고 그것이 상담을 공부하고 일해보고자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필자는 상담자가 가져야 할 첫 번째 중요한 소양은 내담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실력이나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내담자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소심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좀 과격하게 얘기하자면, 만일 상담을 공부하는 분들 중에 내담자가 보여주는 어려움이나 문제를 열등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으로 이해하고 그를 건강하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 상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빨리 상담자의 길을 그만 두거나 자신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내담자를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그의 문제나 호소를 열등한 어떤 것으로 평가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내담자를 존중하기 어렵고 심지어 그를 보호하기도 어려워질 수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내담자를 막연한 동정심으로 대하는 태도 역시 가장 극복해야 할 태도이다. 동정이라는 것 자체가 상대를 열등한 존재로 평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남의 삶을 돕는 서비스직의 일들이 그런 면이 조금씩 있지만, 특히 상담이라는 일은 상담자 자신의 취약함이나 열등감, 해결되지 않은 나르시시즘적인 욕구들을 해결하려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내가 단지 상담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취약한 면을 다 드러내고 자신의 문제나 수치스러운 비밀을 보여주고, 도움을 달라고 호소하고, 말 한 마디로 타인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위치가 되는 것이다. 그런 관계에서는 내 자신이 뭔가 파워가 있고 사람과 인생에 대해 정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모든 상황에서 예외없이 완벽하게 내담자를 보호하고 존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상담자 자신이 내담자를 대하는 태도를 스스로 점검하고 진정으로 상대를 보호하고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매번 고쳐먹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그런 태도가 너무도 쉽게 흐트러져 버릴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태도는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공감하는 태도다. 이것은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담자를 어떤 문제로서 보지 않고 그 사람 자체로서, 그가 경험하는 것들을 그의 의미 자체로서 받아들이고 공감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심지어, 그가 보여주는 어려움이나 문제마저도 열등하고 버려야 할 무엇이 아니라 그 사람이 선택한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태도, 필자는 이런 태도와 관점이 한 사람을 진정으로 깊게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잘 되어야 내담자를 잘 이해하고 의미있는 치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담을 공부하다보면 나름대로 사람을 분석하는 지식과 능력이 생겼다는 자기도취에 빠질 수가 있다. 하다못해 혈액형이나 손금만으로도 무슨무슨 성격검사에 대한 얇은 지식만으로도 타인의 심리와 행동패턴을 주줄 맞출 수 있을 때 얼마나 뿌듯하던가? 그래서 상담을 좀 공부하다보면 어떤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이나 행동의 단면을 보고도 그 사람의 심리를 해석하고 설명하여 아는 척을 하는 데 열을 올리곤 한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그런 면 때문에 상담자가 친구로서는 가장 부담스럽고 좋지 않은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필자는 이론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야 말로 상담자가 지녀야 할 특별한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심리학자가 아니라 상담자에게 가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의 못브을 판단받지 않고, 쉽게 분석당하지 않고, 스스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공간과 여백을 얻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내담자에게 그런 마음의 공간과 연결의 끈을 제공할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상담자일 것이다.

그래서, 상담자에게는 어떤 지식이나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내담자의 경험 자체를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태도와 감각을 훈련하는 것이 필수다. 어찌보면 지식이나 도구들은 상담자의 취약함을 가려주는 창과 방패일런지도 모른다. 창과 방패를 잘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내공은 그런 것들이 없어도 서로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올바른 공부다. 특히 사물과 사람을 과학적인 마인드로 이해하고 사고하는 것은 꾸준히 훈련해야 할 중요한 능력이다. 상담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인지라 검증되지 않고 그럴 듯 해 보이는 관점과 도구들이 마구 범람할 수 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쓸모없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보여주는 문제나 어려움, 사람이 변화하는 원리 등에는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특정한 학파나 방법에 대해 추종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거싱 전문성이 아니다. 무슨 무슨 전문가 과정을 이수했다는 경력이 전문성이 아니다. 필자는 그런 과정들 속에는 정말 배울만한 귀한 것들도 많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그런 모든 과정들이 상담자 자신을 포장하고 권위를 높이는 어떤 것에 그치기 보다 좀더 본질에 다가가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한 지식이나 입장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보다, 진정으로 사람을 대하고 이해하는 사고방식, 인간존재에 대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자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이한 어떤 것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늘 열려있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냉청하게 바라보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한다면 고인 물이 되거나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 메마른 샘이 아니라, 늘 에너지가 흐르고 지혜가 넘치는 생동감 있는 상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상담자가 상담을 공부하고 일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상담을 공부하고 상담자로서 현장에서 활동하고 싶어 이 분야에 들어온 분들은 나름대로 사연과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이건 이 공부를 통해, 일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켜 가면서 좀 더 자기와 연결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서 보람과 의미를 얻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가톨릭상담심리학회 소식지 2010년 2호> pp.10-11